내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 다 다른 존재 이유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토록 예수님이 계시는 천국을 사모하면서도 이 땅에서 좀 더 오래 지체해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70이 넘은 나이에 기도원 호텔 공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지구를 150바퀴 이상 돈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예수, 예수의 이름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 예수 이름이 복음(福音),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에 대해 기록한 책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그런데 요즘 교회는 예수는 온데간데없고, 학설과 문화적인 지식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빛을 잃은 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시끄러운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라는 이름이 무엇이길래 믿음의 선친들이 그 이름 때문에 능욕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이름을 지켰을까요? 예수의 이름이 무엇이길래 사도행전 4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붙잡혀 재판을 받을 때 제사장들과 사두개인이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4:18)고 했을까요?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마1:21). 나실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라는 이름은 그냥 작명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요17:11),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요5:43). 그래서 만물이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9~10).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요14:26). 이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이름도 ‘예수’라는 것을 뜻합니다. 정리를 하자면 ‘아버지의 이름=아들의 이름=성령의 이름=예수’라는 것입니다. 곧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인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예수 이름이 위대하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 앉은뱅이를 만나게 됩니다. 앉은뱅이가 그들에게 무언가 얻기를 구하자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며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입니다.
시도행전 4장에 보면 대제사장과 그의 문중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를 잡아들여 ‘뉘 이름으로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는 것이냐’고 묻자 베드로는 당당히 대답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7~10).
제가 귀신을 쫓고,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등, 각색 병을 고치는 것은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말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목회 초창기에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너는 못 쫓아’ 그랬습니다. 순간 움찔했지만 저는 “그래, 나는 못 쫓아. 그러나 너 예수 알아?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사람 몸에서 나가!” 했더니 바로 귀신이 나가고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예수의 이름으로 비를 멈췄고, 예수의 이름으로 태양을 구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죽은 자를 4명이나 살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 이름을 증거하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이 예수의 이름과 그의 능력을 전하는 일 때문에 핍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환난의 바람은 교계는 물론이고 집안에서까지 불어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왜냐? 그것이 제가 이 땅에 살아야 하는, 존재하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듯이 저도 모든 것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이 천국 열쇠입니다(마16:19). 예수 이름 앞에 안 되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예수 이름은 당좌수표와 같습니다. 당좌수표에 사인만 하면 은행에서 수표에 쓴 만큼 현금을 내어주듯, 예수 이름으로 구하고 명할 때 무엇이든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재벌이 산중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산중에 있는 집을 발견하여 가보니 노인네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노인네 집에서 하루 묵은 그 재벌은 당좌수표에 1억이라고 써서 노인에게 주며 은행에 가면 돈을 준다고 하고 떠났습니다. 일년 쯤 후에 다시 그 집을 찾은 재벌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주고간 당좌수표가 문풍지에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좌수표가 뭔지 모르니까 노인이 거기에 밥풀을 붙여 구멍을 막은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모르는 자들이 이와 같은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벙어리 된 귀신을 쫓지 못해 민망한 얼굴로 예수님께 ‘왜 우리는 못 쫓은 겁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총알이 아무리 좋아도 총구를 매일 청소해놓지 않으면 총알이 나가지 않아 사나운 짐승 앞에서 도망가야 하고, 또는 그것에 물려 다치고 죽을 수밖에 없듯이, 능력의 예수 이름이라도 기도하지 않고는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구나 축구선수들이 매일 공을 휘두르고, 차는 것은 실력이 녹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연습에 게으르면 1군에서 2군으로, 2군에서 3군으로 추방되고 맙니다. 그래서 1군에 있는 선수들이 더욱 열심히 연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했습니다(살전5:19).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잃는 것이며, 예수의 이름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않는 방법은 오직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120문도가 마가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했지 않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이 임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도 계속 기도하지 않으면 배터리가 방전되는 것과 같이 성령이 소멸됩니다. 그래서 야구나 축구선수가 매일 공을 치고 차듯이 매일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만물을 명령하여 형통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에 생명이 있고, 소망이 있고, 지혜가 있고, 건강이 있고, 부귀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예수의 이름을 전하려고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20)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여러분도 이제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여러분에게도 예수 이름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의 권능을 눈으로 보여주며 그 이름을 전파합시다. 그러나 내가 불이 붙지 않으면 결단코 남에게 불을 붙일 수 없음을 알고 우리가 먼저 기도하여 첫사랑을 회복합시다. 할렐루야!
존재 이유를 아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다
사명에
부도내는 자가 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