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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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택

1027호 · 2019-11-03
아름다운 인생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후에 내가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할 것인가, 내 생각대로 할 것인가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고민조차 하지 않던 일들이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평생 선택하며 산다. 어떤 광고 문구처럼 그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기에 선택하는 일은 언제나 신중하다. ‘그레이스 하우스’라는 영상제작회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일들을 주문받는데, 가끔 이상한 단체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곳에서 제작의뢰가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돈이 많고 적음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거절한다. 그러면 순간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항상 예수님이 더 좋은 것으로, 더 넉넉하게 채워주시고 보상해주시고 위로하심을 느낀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이나 아벳느고의 고백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언제나 예수님의 뜻에 반(反)하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먼저 생각하고 백문백답, 천문천답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외치시며 언제나 신앙의 본이 되어주시는 총회장 목사님의 신앙을 본받고 싶다. 주님이 내 편이 되어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주님의 편에 서는 삶을 살려고 애쓴다.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한다.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돈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언제나 주님과 세상 사이에서 선택할 때 망설임 없이 주님을 택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더 나아가서 태초부터 나를 택하시고 자녀 삼아주신 사랑에 보답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해달라고!

오늘도 나의 최고의 선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은성

소망의 언덕

고대하고 고대합니다

지난주 수요예배 기도시간에 하나님께서 이시대 목사님을 통해 성령의 불기둥으로 임재하신 역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지난 시청집회를 위한 40일 작정기도부터 집회를 마칠 때까지 충성되게 달려온 우리 예수중심교단 산하의 모든 자들을 위로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달려가야 할 길이 여전히 있음을 보여주시며 독려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예배시간에 본 ‘2003년 기도원 호텔공사’ 영상은 온몸을 전율케 하였고, 마치 느헤미야 시대에 들어가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숨소리를 현장에서 느끼는 것만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의 앞선 어르신들이 순종하면서 기쁨으로 가셨던 그 길을 우리 세대에 한 번 더 허락해주심에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교회의 어르신들에게 다시금 감사의 마음이 깊어졌습니다. 2003년 저는 군복무 중에 휴가를 나와 단지 며칠 동안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신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건축 봉사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보다는 군복무 기간에 공사가 있었음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부끄러운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족하고 연약한 제가 하나님의 은혜와 교단 목사님들과 수많은 믿음의 선친들의 희생으로 양육되어 이제는 성전건축이 얼마나 귀하며 깨끗하고 두려운 심령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예수중심 믿음의 2세대들이 귀한 영상을 보며 더욱 각성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분명 시간은 흘러 제2호텔이 완공되고 봉헌예배가 드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명소가 된 예수중심기도원에 와서 주님을 만나고 첫사랑을 회복하는 역사가 계속될 것입니다. 얼마나 하늘의 상이 많이 쌓일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마구 뜁니다. 우리 모두 주께서 칭찬하실 그날을 사모하며 지금부터 기도로 동참합시다.

목사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전 제가 예수중심교회 전도사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또 부족한 저를 이 교단의 일원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이현승 전도사

내가 매일 기쁘게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가정을 만들자

오랜 시간 학원 일을 하면서 사춘기 아이들과 부모들의 갈등을 참 많이 보고 살았다. 요즈음의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지지고 볶을까’ 생각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내 주변에는 신생아부터 30개월 내외의 귀염둥이들의 부모가 꽤 많아졌다. 사랑만 받던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며 ‘껌딱지’처럼 들러붙는 아이들로 인해 난감해하는 일도 아주 흔하게 본다. 엄마가 없으면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러다가 크면 엄마 꼴도 보기 싫다고 하겠지.’라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엄마 ‘껌딱지’로 살던 아이들이 커서 독립된 자아를 찾기 시작하게 되면, 부모님들이 그 사실을 존중해줘야 하는데 여전히 ‘껌딱지’로 여기니 갈등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하게 다른 이야기. 나를 비롯해 내 또래들은 모두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살아왔기에 독립을 했음에도 여전히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맴돌고 있다. 냉장고에는 양가 어머님들이 해주신 반찬이 가득하고, 양가 부모님의 신용카드로 장을 보고, 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을 나간다.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들은 기꺼이 자식들의 고단함과 번거로움을 함께 나누어주신다. 부모님들의 배려는 금방 습관이 되고, 달콤하고 편리한 습관 속에서 이제 막 초보 부모가 된 우리들은 또 이렇게 부모님 품속의 자녀로 눌러 앉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한 일인지 생각해보고 싶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창2:24). 이 구절은 아담과 하와가 가정을 이루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든 가정의 모습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이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어야 완전한 가정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부모를 떠나지 못하게 된다면,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부모님들과 끝없는 갈등을 일으켰던 것처럼 또 그런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라도, 우리 부모님과 우리세대, 우리세대와 우리 자녀세대가 아름다운 화합을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부모를 떠나’ 이 세상으로 우리 스스로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전훈지 집사

ppjee@hanmail.net

Good News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천국은 동화 속에 나오는 가상세계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광대한 우주가 순간적인 대폭발 ‘빅뱅(Big bang)’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허무맹랑한 가설에 불과합니다. 진화론이나 빅뱅이론보다 창조론이 더 이성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원인이 없이는 결과가 도출될 수 없으며, 진화론이나 빅뱅이론으로는 질량불변의 법칙과 엔트로피증가법칙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명성은 얻었지만 영적으로는 소경이요, 무지한 자임을 자인하였습니다. 전년도에 이 땅의 삶을 마감하였는데 죽은 뒤에야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체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학문으로도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죽은 뒤에 돌아갈 곳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과 고통이 없는 곳입니다. 반면에 지옥은 물 한 방울의 자비도 없는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 고통을 받는 영벌의 세계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기에 죽은 뒤에는 선택할 기회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구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복락의 천국이요, 믿지 않으면 영벌의 지옥입니다. 지금 선택해야 합니다.

상화평 목사

생활속의 잠언

잘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고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장성 기도원 동산에 올라가 눈물로 애통하며 주님께 살려달라고 몇 날밤을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내가 잘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셨다. 내가 잘하는 것은 공부였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대학교 재학시절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시작했던 학원 일은 지금 거의 삼십 년이 되어간다. 몇 년 전, 운영의 어려움이 있었을 때에 다른 일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목사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 우물파기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눈에 이상이 생겨 글자 읽기가 어려워졌고, 수업시간을 줄여야 할 즈음 이십여 년 만에 해외 나들이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떠난 선교지인 말레이시아를 여러 번 드나들면서 그 나라의 교육환경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방학이면 라이브 잉글리시의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학생들과 캠프를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11월 레베카유학센터라는 말레이시아 전문유학원을 학원의 귀퉁이에서 시작했다. 간판도 없고 직원도 한 명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일거리가 생기고, 지난 세월 평생의 업이었던 영어강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늘 평생의 모토로 생각하는 ‘평소 잘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주신 새로운 일을 신명나게 하면서 글로벌 CEO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주님께 배운 소중한 것이 있다. 한동안 내 의지로 많은 일을 해보겠다고 밤마다 기도로 주님께 보채며 달라고만 했던 강청의 기도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선 기도응답을 해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을 때 왜 달라고 보챈 일거리의 절반만을 주셨는지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내가 가진 능력을 미리 헤아리셨고, 결코 할 수 없는 양의 일거리는 허락하지 않으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잘하고 잘할 수 있는 적정량만큼의 일을 주님께선 미리 알고 계셨다. 그 이후로 기도하는 습관을 바꾸기로 했다. 바디매오가 주님을 불렀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향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미리 헤아려 아시는 주님 앞에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지나온 평생을 돌아보면 단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고 함께해주셨던 주님이셨고, 모든 것들을 미리 정확하게 기획하고 설계하고 계신 그분의 능력 앞에 감사를 드린다. 나의 의지를 뛰어넘는 주님의 다스림을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 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내왔던 사십년 광야생활의 시간보다 더하지 않은 지금이라도 소중한 당신의 뜻을 알게 되었으니 또한 감사할 일이다.

주님께 순종한 베드로가 153마리의 물고기를 선물로 받은 것처럼, 날마다 독한 집념의 고집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노라고 고백하는 삶 가운데서 베드로가 받은 선물 같은 축복을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평생 소중한 인생의 지도자로 광야생활을 인도하여주신 우리 목사님의 교훈과 가르침 덕분에 어디를 가더라도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는 지혜를 선물 받았노라고 자랑하며 살아간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 삶을 기획하시는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 지금의 곤고함도 기쁨으로 참아낼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직 감사로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오자유 집사

신앙에세이

마음은 원이로되…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물으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마치 아이가 기특할 때 “우리 아들 뭐해줄까? 아빠가 다 해줄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빠! 저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게 문제집을 사주세요!”라고 말하는 요즘 아이들이 있을 진 모르겠지만, 솔로몬은 또 하나님의 눈에 기특하게도 백성을 잘 이끌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다. 어릴 적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혹시 하나님이 내 꿈에도 나타나셔서 물으시면 나도 지혜를 구해야지.’라고 되뇌었다.

요즘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내에게 말한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였다면, 나는 체력을 구하리라고. 정말 꿈에 나타나시면, “하나님! 제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주세요!” 할 것 같다. 어린 아들 둘을 키우다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일용할 양식뿐만 아니라 일용할 커피도 늘 필요하다.

퇴근 후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애들과 놀아주다 아내와 함께 애들을 씻기고 재운 후 집안일을 좀 하고 나면, 하루의 체력이 바닥난다. 바로 자기엔 아쉬워서 졸린 눈을 버티며 좀 널브러져 있다가 자기 전 잠깐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잠에 든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며 점점 더 강하게 드는 생각은 ‘체력이 달리지만 않는다면 참 할 수 있는 게 많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아지긴 하겠지만 여섯 살 터울인 둘째가 언제 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첫째에 힘이 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내와 함께 집 근처 헬스장에 등록하여 어떻게든 잠시라도 운동을 하려 한다. 몸이 지치니 영적인 생활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베드로가 자꾸 잠에 들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제는 이렇게 들린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체력이 달리는구나!’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막14:38).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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