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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그만

1023호 · 2019-10-06
신앙논객

시청집회 준비에 한창이던 때, 한 선임 교역자로부터 나와 내 부서 아이들이 처신을 잘못했다는 오해를 받았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일이었지만 일단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이 억울했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수고한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부당하게 여겨지는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사자들로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오해했던 교역자와 대화를 통해 오해는 풀었지만, 이미 상해버린 기분과 찝찝한 마음은 이후로도 며칠간 이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억울한 일이 생기면 잘 참지 못하고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는데, 주의 종이 된 이후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실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게 며칠 마음고생을 하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은 누구나 오해할 권리가 있다!’는 목사님 말씀을 떠올리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질문했다.

“하나님, 그러면 우리의 억울함은 어떡하고요? 그들이 오해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줘도 그냥 내버려두란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그 질문을 하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애굽에서 끌어냈다고 오해받았던 모세,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부터 나사렛 이단의 괴수요,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요, 신성모독자라고 오해받았던 예수님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런 깨달음이 왔다. “사람은 얼마든지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오해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모세도 하나님 앞으로 그 문제를 가져갔고, 예수님도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지 않으시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던 게 아닐까. 그러고 나니 작은 일에 억울해하며 오해를 풀려고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그만인 것을. 하나님이 다 신원해주시고 갚아주실 것을.

“왜 목사님은 우리 교회가 이단이 아니라고 단에서 말씀을 안 해주시나요?” 한 친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글쎄, 그걸 일일이 해명 변명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어차피 오해할 사람들은 오해한다. 목사님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며 지금까지 당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억울해할 것 없다. 우리의 열매가 우리를 증명할 테니까.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생명의 말씀

하나님께 감정노동 하는가?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아들의 유치원 시절 재롱잔치 때의 일이다. 드디어 아들 순서다. 여태까지 연습해온 것으로 봐서는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서 밝게 웃고 춤추는 것이 당연한데, 무슨 문제일까? 아들은 웃지도, 움직이지도, 춤을 추지도 않고 맨 끝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 각각 양손의 검지와 중지손가락을 교차하여 걸고 서서 마치 ‘재롱잔치 보이콧’을 선언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너무나도 황당한 재롱잔치가 끝나고 이유를 긴급히 물었다. 기상천외한 대답을 한다. ‘사람들 앞에서 기쁘지도 않은데 왜 억지로 웃으면서 춤을 춰야 해요?’ 굳이 해석하자면, 감정노동 하기 싫다는 거다. 너무나 당황스러웠으나 더 이상 질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들의 감정을 받아들여주기로 했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한때의 걱정과는 달리 지금 그 아들의 ‘지정의(知情意)’는 너무나도 건강하게 잘 자라나고 있으며, 반에서 리더역할도 잘 감당한다.

본의 아니게 감정노동을 유지하며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가 참 많다. 억압되어 있다. 감정의 유연함과 건강함이 필요하다. 전 인격이 건강해지려면 너무 심각하게만 살지 말고, 웃을 수도 있어야 하고 동시에 울 수도 있어야 한다. 요셉의 묵은 감정은 언제 치유되었는가? 자기를 팔아넘긴 형들과의 재회 당시, 주변인과 바로 궁정에 다 들릴 정도로 대성통곡한 후였다. 이 감정을 숨기고 있을 때까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는 최상의 고백이 나오지 못했다(창45:1~5).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과 상처를 친히 체휼하셔서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다 가지고 나아오라 하신다(마11:28). 맹인 바디매오처럼 울부짖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까지 태연한 척, 아무 일 없는 척, 외식하며 감정노동 하지 말고 부족한 모습 그대로 어린아이처럼 울며 나아가자!

‘어려서 울지 않으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몸이 운다!’는 말이 있다. 감정을 억누르고 살면, 나이 들어 육체의 병으로 온다는 말이리라.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감정의 건강함이 회복되어야 하겠다.

송직화 목사

주안에서의 삶

하나님의 장막 시리즈 Ⅳ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하시는 곳을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에 세우시고자 했던 계획이 아담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하여 어그러졌지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계획을 계속적으로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심으로 인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나라와 이 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시며, 죄로 인하여 모두 지옥으로 갈 인간들을 구원하는 길을 여십니다. 죄의 값은 사망임으로(창2:17, 롬6:23)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는 사망의 사슬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성령)을 주시어 우리를 영적으로 태어나게 하시었고,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중생)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의 기초는 예수님이며, 그 집이 지어지는 재료는 금, 은,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믿음의 헌신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의 공적은 나중에 불로 시험하여 그 세운 공적이 남아 있으면 상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3:9~16). 온 정성을 다하여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뜻을 섬긴다면, 그 사람은 금이나 은과 같이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재료로 이루어진 성전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신실하고 성숙한 크리스천들을 볼 때, 그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바로 그들 안에는 그와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의 영적인 모습과 삶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성전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각 믿는 사람의 마음 안에 거하게 될 뿐 아니라, 그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도 하나님은 거하십니다. 즉 이제 하나님의 성전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성전으로서 교회의 모퉁이 돌은 예수님이시고, 그 위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는 것입니다(엡2:21~22).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엡3:19), 그곳이 하나님의 참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니시며 그곳에 임재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어 그곳을 거니실 때 바로 그 교회가, 소그룹이, 혹은 가정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건물이 아무리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단지 건물일 뿐이지 하나님의 성전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체육관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든, 가게에 모여서 기도하든, 가정에 모여서 구역예배를 드리든, 그 어느 곳도 주님의 임재로 인하여 참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교회로 바뀌었고, 모든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믿는 모든 교회들이 예수님의 한 몸으로 연합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함으로 더욱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감으로, 하나님의 태초의 계획이 이루어져가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장막(성전)은 전 세계로 확장되어 결국 전 세계가 하나님의 왕국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아직 사단의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고, 아직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가르침, 사단의 역사와 공격으로 하나님 왕국의 계획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태초의 계획을 이루실 것인지 계속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권문선 선교사

참된 깨달음

복된 언약! 참된 나라!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는 본래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만, 지금은 별 뜻 없이 애국심만 자극하는 전쟁구호가 된 듯합니다. 하나님이 미국에 주신 가장 큰 복은 부와 세계지배력이 아닙니다. ‘영적인 복’, 즉 복음을 전할 자유, 교회의 영적 성장과 심령의 부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이 나라를 복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먼저 회개하고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각기’ 회개하지 않으면 국가도, 교회도, 개인도 절실한 부흥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회개할 대상은 첫사랑을 잃고 영적인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있는 하나님의 사람들(계2:4)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대한민국이 받을 복을 결정하므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나라에 복을 주십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하면 나라 전체가 절망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변화가 먼저입니다. 지금까지 정치 전략과 법령 시행으로 국가적 부흥이 일어난 예는 없습니다. 참된 회복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때 일어났습니다.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이교도의 도시 전체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회개했을 때(욘3:4~10), 조지 휫필드의 통렬한 설교를 듣고 회개했을 때 일어났지요. 참된 부흥과 회복은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 꿇을 때(대하7:14) 강력하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구원 받도록(딤전2:4) 기도해야 합니다.

10월 1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있었던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통해 회복과 부흥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 국가와 민족이 복된 언약을 통해 참된 복을 소유하길 소망합니다.

김정옥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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