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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호 목차 › 객원컬럼

기억하라

1023호 · 2019-10-06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아담에게 맡기시며 한 가지 당부를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아담에게는 무한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딱 하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절대 먹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이 금지령은 하나님과 아담을 잇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아마 이 명령조차 없었다면 아담은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인식조차 못한 채 마음대로 살아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금지령이 있었기에 그 명령을 기억하고 그 명령을 지키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니, 이것이 곧 아담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나님 스스로도 기억하겠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노아와 아들들에게 하신 무지개 언약(창9:8~1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출2:24), 이 약속을 기억하시어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돌아보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끊임없이 나를 기억하라고 강조하신다. 신명기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가득하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 그냥 지키라는 명령이 아니다. 기억하여 지키라 하신다. 곧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과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다. 목사님께서 일기를 쓰라고 강조하시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억하기 위함이다. 내 삶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지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하면 은혜를 잊고 방종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엄청난 이적의 역사를 망각하자 그들의 삶이 어찌 되었던가?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인들에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거울로 삼으라고 강조하지 않던가(고전10:1~12)? 그들이 어떻게 광야에서 멸망해갔는지 기억하고 이를 거울삼으라는, 곧 역사인식을 가지라는 당부이다.

역사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흥망성쇠를 겪었는지 기억하여 우리의 역사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함 아닌가?

기억하지 못하는 삶은 이미 사는 게 아니다. 기억상실이 무서운 질병으로 현대인들에게 다가오는 현실만 보아도 그렇다. 기억하고 지키며 반성하고 돌이키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 아니 온 인류에게 정말 값진 일이다.

‘기억하옵소서’, ‘추억하옵소서’, 히스기야, 느헤미야의 기도다. ‘나를 기억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억된 삶을 사는 것, 이보다 더 복된 삶이 있을까?

Henry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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