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 말고 너 자신이나 점검해라(눅19:12~27)
지난해 갓 대학생이 되어 부푼 꿈을 가지고 첫 행사인 오리엔테이션에 갔다가 투숙한 리조트의 지붕이 무너지는 바람에 열 명의 어린 학생들이 아깝게 세상을 등진 일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눈이 갑자기 많이 와서 그랬나요? No. 비만 조금 오면 하수구가 막히고 물이 역류되어 도로가 물바다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천재(天災)일까요? 아닙니다. 다 인재(人災)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대자연의 천재(天災)가 아니라 충분히 노력하면 예방 가능했던 인재(人災)였습니다. 원인은 점검부재입니다.
점검부재현상은 사고의 원인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자동차가 고장이 나 서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차가 낡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미리미리 점검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국민건강공단에서 제공하는 국민건강검진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2년마다 검진을 받을 수 있는데, 거의 무료입니다. 2년마다 건강검진만 잘 받아도 큰 병은 미리 막을 수 있다고 국가에서 광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나중에 하지’ 합니다. 그러다가 자동차가 전복되고, 그러다가 도로에 물이 넘치고, 그러다가 암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불쌍한 인생이 누구인 줄 압니까? 그것은 수리형 인생을 사는 자입니다. 소 잃고서야 외양간을 고치고, 죽은 다음에 병원 문을 두드리는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왜 그렇게 삽니까? 미리미리 점검을 하지. 늘 뒤통수 맞은 후에, 일이 터진 후에 수리하느라 허둥대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느라 애쓰고 낭비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야 후에 몇 달이 걸려서 수리하면 된다지만, 신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점검을 하지 않아서 신앙이 녹슬고, 신앙이 무너지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다행히 회개하여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으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대로 세상을 등지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성경은 신앙의 점검지침표입니다. 성경을 거울삼아 늘 우리를 조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내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살피고, 성경의 인물 중 신앙을 잘 점검한 자의 삶과 점검하지 못해서 신앙에 녹이 슨 사람의 삶을 비교 분석하여 내 신앙을 튼튼히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거울을 보면 내 머리가 헝클어졌는지,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었는지 알 수 있듯이 성경 말씀을 통해 내 신앙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5). 신앙을 살피지 않아 첫사랑을 잃으면 하나님이 촛대를 옮겨버려 금세와 내세에 암흑 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깃불이 나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요? 하나님이 촛대를 옮겨 인생에 어둠이 오면 삶이 넘어지고 다치고 도둑이 들끓게 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도 보이지 않고 수렁 같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예전에는 기도했는데 지금은 기도하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교회 가는 것이 행복했는데, 지금은 안 가면 조장이 전화하고 심방 오니까 억지로 갑니까? 찬송하는 것이 예전처럼 기쁘지 않습니까?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봉사하던 손을 놓고 싶습니까? 문제가 심각합니다. 빨리 점검하고 진단하여 처방해야 합니다.
배나 비행기가 운항할 때 목적지를 향해 방향타를 정하고 그대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처음 지정해놓은 방향타대로만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해놓은 방향으로 가더라도 바람이나 기류, 파도에 의해 방향이 틀어지기 때문에 중간 중간 항로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고 있지만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을 자주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보라는 뜻입니다.
왜 사람들은 고장 날 줄 알면서, 사고 날 줄 알면서 점검하지 않을까요? 게을러서입니다.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내일하지 뭐’, 이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깨우치려고 게으른 자와 부지런한 자를 비교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을러서 얻을 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절대 놀고먹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그들이 시간이 많아서 일을 잘할 것 같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게으름이 몸에 젖어서 일을 시키면 세월아 네월아 합니다.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내 이빨에 초를 부음 같고, 눈에 연기를 뿜는 것과 같아 자충수를 두는 격이기에 저는 반드시 바쁘게 일하는 자를 택해 일을 시킵니다(잠10:26).
누가복음 12장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12:35~36)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외출한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등을 들고 사방을 살피며 기다리는 종처럼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거듭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마24:42)고 말씀합니다. 이는 늘 성령 충만함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 도적이 들어오지 않게 늘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내 인생의 도둑놈이기 때문입니다. 게을러서 기도 못하고, 게을러서 교회 못가니까요. 게을러서 공부하지 못하고, 게을러서 운동도 못하고, 게을러서 빨래도 못하니까요. 그래서 이 게으름이란 놈은 성공을 도적질하고, 건강을 도적질하고, 화평을 도적질하는 나쁜 놈으로 인생의 암적 존재요, 성공의 최대 적입니다.
여러분, 점검은 부지런함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을 떨쳐버리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아들딸을 점검해야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내 건강을 살펴야 무병미락장수 합니다. 부지런히 기업과 직원을 살펴야 부도나지 않고 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교회와 성도를 살펴야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국가를 살펴야 국가가 도탄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봉사하며 내 영혼을 살펴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점검을 할까요? 관심이 있는 자입니다. 관심은 살리는 것이요, 무관심은 죽이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기도원에 닭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기도원 뒤편 닭장에 올라가보니까 제 눈에 닭 숫자가 적어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기도원 직원들이 잘 모릅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닭장이 열린 줄 모르고 개를 풀어놨다가 개가 닭 18마리를 물어 죽인 사건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관심이 있어야 살피는 겁니다. 예수님은 백 마리 양을 데리고 가다 한 마리가 이탈한 것까지 아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관심=사랑’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사랑해야 살피는 겁니다. 직장을 사랑하면 허튼 불이 켜졌나 살피게 되고요. 영혼을 사랑해야 성도를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영은 관리요, 관리는 점검입니다. 그런데 나 하나 경영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세계를 경영하겠고, 나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자가 기업인들 관리하겠습니까(잠25:28)? 경영의 첫걸음은 부지런함에 있습니다. 이제라도 게으름을 떨치고 부지런을 떨어봅시다. 할렐루야!
수리형 삶이 되지 말고
점검형 삶이 돼야 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