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는 마패가 생명이다 (요14:8~27)
조선시대에 암행어사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왕이 직접 임명한 자가 왕명을 받고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관직입니다. 왕이 직접 민정을 펼 수 없으니까 암행어사가 왕의 이름을 가지고 나가 치정하는 일종의 왕의 대리제도였습니다. 그들은 역마(驛馬)와 역졸(驛卒)들을 이용할 때 마패를 보여 왕의 대리자임을 증명했고, 각 고을의 수령들의 비위(非違)와 탐오(貪汚) 등을 밝혀내 잘못이 드러나면 그들의 죄질에 따라 형을 집행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암행어사 중 기억하는 인물은 아마도 박문수일 것입니다. 많은 암행어사 중에서 유독 박문수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서민들의 애환을 해결하고, 억울한 민중 편에 서서 많은 일을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계급에 짓눌리고 폭정에 시달리는 조선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 발휘했기에 그의 명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문수가 지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마을 수령들이 나와 맞았을까요? 아닙니다. 인간 박문수는 아무 힘도, 권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문수가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민심을 살피려 할 때 애매한 오해도 받고, ‘해결해 줄 것 아니면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소리도 숱하게 들었던 것입니다. 인간 박문수로는 전혀 그들의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민심을 살피고 나서 마패를 꺼내 들었을 때 비로소 그 앞에 그동안 악행을 일삼던 수령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그의 처분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역졸들이 ‘암행어사 출도야!’ 하고 외치면 마을 전체가 들썩거렸던 것입니다. 마패가 왕의 권세를 부여받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진멸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일3:8). 마귀는 곧 사단이요, 곧 뱀으로(계20:2), 공중 권세를 잡고 있으며(엡2:2), 어두움의 주관자(엡6:12)로 그의 졸개인 불신자의 사후의 영, 귀신을 투입하여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망하게 하고, 싸우게 하고, 거짓말하게 합니다. 그래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의 2/3를 귀신을 쫓는 일에 매진하셨고,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13:32)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내가 가면 성령을 보내줄 것이니, 성령을 받은 후에 세상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왕인 내 이름으로 마패를 줄 테니 이제는 너희가 세상으로 가서 내가 한 것처럼 악한 것들을 진멸하며 나보다 더 큰 일도 해다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데, 그에 따른 권세가 주어집니다(요1:12). 그 권세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16:17~18).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이 곧 마패인 것입니다. 그래서 암행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꺼내 들면 탐관오리들이 그 앞에 벌벌 떨듯, 우리가 예수 이름을 꺼내 들면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들이 벌벌 떨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박문수를 보고 탐관오리들이 떠는 것이 아니라 마패를 보고 떠는 것입니다. 동일합니다. 우리를 보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이름’을 보고 마귀와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곧 예수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다(행4:17~18).
목회 초에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안 나가고 되레 제게 겁을 줬습니다. “이초석, 너는 못 쫓아.” 그러는 겁니다. 솔직히 그때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제 속의 성령이 제 입술을 주장했습니다. “그래, 나는 못 쫓아. 그런데 너 예수 알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이 더러운 귀신아 나가!” 그랬더니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럼요, 이초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마패,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능력으로 제가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난하고 병들어 지내고 있겠습니까? 바로 마패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마패를 잘 간직하라고 하셨건만, 곧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고 하셨건만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니면 ‘설마 이 마패를 내놓는다고 저 악한 놈들이 무서워 떨겠어?’ 하며 두려워서 내밀지 못하기 때문에 탐관오리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것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활개를 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패에는 왕의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 앞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땅 아래 것들이 복종하게 되어있습니다. 병이 들었습니까? 귀신의 장난입니다. 마패를 내어놓으세요.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고 안수하신 것처럼 예수 이름으로 쫓으세요. 감기도(마8:15), 불치병도, 정신병도 다 귀신의 장난이니 쫓아버리세요(막1:34). 사업이 안 됩니까? 일이 잘 안 됩니까?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 때 예수님이 ‘잠잠하라’고 꾸짖으신 것처럼 예수 이름으로 꾸짖으며 명령하세요. 풍랑에게 명령을 하셨다는 것은 그것을 일으키게 하는 영적 존재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총을 줬으면 쏴야지요. 총알이 장전된 성능 좋은 총을 들고도 사나운 짐승이 달려드는데 쏘지 못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자가 또 어디 있을까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로마 병정의 창에 찔리고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의 죄와 병과 고난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그가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로 하여금 부요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고후8:9). 그러므로 우리는 아플 권리도, 가난해야 할 권리도, 불행할 권리도 없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면, 마패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악한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내어 쫓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임할 수 있습니다(마12:28).
암행어사에게 마패가 생명이듯,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 충만함이 생명입니다. 마패를 잃지 않는 법, 성령 충만함을 잃지 않는 법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막9:29). 제가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는 이유이며, 밤늦게까지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마패를 잃어버리는 순간 귀신들의 밥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동트기 전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하셨고(막1:35),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후에도 저녁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눅5:16). 그러니 우리가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마치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라며 놀랍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계심과 지금도 역사하심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대해 설파하시기 전에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저 역시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먼저 저와 함께 하신 성령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그것을 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고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요4:48). 세상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고, 그 주장에 우리가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패,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귀신을 명령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안수하여 이 땅에서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알립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할렐루야!
청각적인 감동보다
시각적인 감동이 크다
불이 꺼진 집은
도적들의 표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