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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라(약1:20~25)

1004호 · 2019-05-26

100년 된 나무를 자르는 데는 10분도 채 안 걸립니다. 평생 공들인 탑을 무너트리는 것도 한 순간입니다.

층간소음을 참지 못해 윗집에 찾아가 몹쓸 짓을 한 사람들, 운전할 때 끼어들었다고 화가 나서 달려가 그 차를 들이박거나 앞질러 가로막다가 사고를 내는 사람들, 형제간에 혹은 부부간에, 더는 부모와 자식 간에 말다툼하다가 화를 못 참아 집에 불을 지르거나 상대를 죽이는 자들…. 다 공든 탑을 무너트린 것입니다. 그래 놓고 후회해봐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됩니다.

분노(忿怒), 다른 말로 ‘화’라는 것이 본시 이런 겁니다. 성경에는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27:4)라고 말씀하셨고,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29:22)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 샘플이 바로 가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5~8).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으나 자신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자 화가 나서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래서 평생 되는 꼴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일도 그렇습니다. 결국 다윗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가 비참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왜요?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진대, 그 하신 말씀인즉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5)고 하셨고,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찌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겔21:4~5)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공든 탑도 무너집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계속 공을 들이는 방법 외에 없습니다. 살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지요. 사람인데 평생 화내지 않고 살 수는 없지요. 그러나 화나는 중에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29:11)며 화가 날 때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지혜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자제력의 부재가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리기 때문입니다. 자제력 부재현상은 사고의 원인입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37:8).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를 통제하고 자제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기도원에 내려가 있을 때 보니까 옥토를 만드는 법이 있습디다. 먼저는 흙에서 돌을 골라내는 것이고, 돌이 너무 많다 싶으면 그 위에 좋은 흙을 많이 덮어버리니까 바로 옥토가 됩디다. 좋은 흙을 덮듯이 성령으로 나를 덮으면 내가 옥토가 됩니다. 성령의 열매가 바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맺힌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성품, 신성에 이른다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조차 맞받아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히12:2). 그래서 결국 승리하셨고,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들에게 분노하여 열두 영의 천사를 불러서(마26:53) 그들을 처단하고 십자가에서 보란 듯이 내려오셨더라면 우리의 구원은 무산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었으나(행9:1) 성령의 능력으로 옛사람이 벗어지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핍박과 환난과 모함에도 참고 이겨냈고, 항상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 한 그의 편지가 그의 변화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칼 나간다 총 나간다’ 할 정도로 화를 잘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니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자가 됩디다. 제 얼굴에서 사나움이 없어지고, 제 마음에 노가 사라집디다.

예수님의 본성은 온유함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그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도 하셨고(마5:5), 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란 따뜻할 온(溫), 부드러울 유(柔)입니다. 양지에 꽃이 먼저 피고, 부드러운 곳에 사람이 모여드는 것일진대 온유야말로 참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자주 가는 갈비탕집에 사람이 많이 오는 이유는 갈비를 오래 끓여서 부드럽기 때문이랍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다고 하셨으니(잠11:30),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에게 사람이 몰리는 법, 곧 온유한 자가 지혜로운 자가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지혜가 제일’이라고 말씀합니다(잠4:7). 지혜를 가르쳐드릴까요? 대화하다가, 어떤 일을 하다가 화가 나고, 이것이 다툼으로 발전될 소지가 있걸랑 그 자리를 피하세요. 성경은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17:14)고 하셨습니다. 괜히 순간 욱해서 살인하고, 불내고, 이혼하고, 사표 내봐야 나만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19)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 둘이 살아봐야 방축에서 물이 새서 다 쓸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지혜는 화를 잘 내는 자와는 애당초 동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같이 있다 보면 닮게 되거든요.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잠22:24~25).

여러분, 온유한 자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들도 성도들을 대할 때 온유함으로 대해야 하고, 권면할 때도 온유함으로 해야 합니다(딤후2:24~25). 또한 아내들도 그 행위를 보고 안 믿는 남편이 ‘나도 우리 마누라 믿는 예수를 믿어볼까?’라고 할 수 있게끔 온유함으로 가정을 이끌어야 합니다(벧전3:1~4). 그리고 혹시 분이 났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는 서로 화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틈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엡4:26~27).

내 인생은 내가 관리해야 합니다. 그것의 근본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잠4:23). 괜히 화내서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잘 나가다 사고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온유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19~20). 할렐루야!

온 천하를 다스리는 자보다

나를 다스리는 자가 더 위대하다

쉬이 분을 내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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