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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사랑은 관심이다

1003호 · 2019-05-19
오늘의 메시지

지난 11일, 예향 농아인 선교부와 축복 장애인 선교부 식구들이 김포에 있는 염상섭 장로의 볼펜 공장을 견학했다. 이날 염 장로는 이 장애우들을 맞이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공장 주변을 정리하고, 온 가족이 출동하여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이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염상섭 장로의 장애우 사랑은 남다르다. 이는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자녀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장애우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등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갖는다. 그런 염 장로는 즐겨하는 말이 이것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그렇다. 사랑은 관심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가 무엇이 필요한지, 그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형편은 지금 어떤지를 살피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의 친구요, 병든 자의 친구요, 소외되고 고립된 자들의 친구로 이 땅에 오셨다. 그들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크셨는지 마태복음 25장에는 ‘소자에게 한 것이 당신에게 한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염 장로에게 장애를 가진 아들이 더욱 특별한 것처럼, 하나님께 그들은 더욱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우리, 그 은혜를 안다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차별되고 따돌림 당하는 자들을 사랑함으로 조금이나마 갚아야 한다.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실질적이며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줘야 할 책임이 있다.

염상섭 장로처럼 우리도 주변을 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자. 예수님이 기뻐하시도록!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름, 그것은 사랑이다!

예수중심편집실

신앙논객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어떤 목사님이 책을 통해 들려주신 이야기다. 한 교인으로부터 자신의 설교가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 같다는 비판을 들었다는 것이다. ‘노변정담’은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서로 한가롭게 주고받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설교가 격의 없이 친밀감을 느끼며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같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만큼 설교에 무게감이나 권위가 떨어지고 감동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비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또 다른 한 교인으로부터 요즘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는다는 내용의 감사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매주 설교 때마다 웃기도 많이 웃고 눈물도 많이 흘리며 충만함 가운데 성전을 나서게 되더라는 내용이었다. 똑같은 설교를 들었는데 왜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가벼운 수다나 잡담 수준으로 듣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설교를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일까? 그 목사님은 설교는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도 달려 있지만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도 달려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설교(說敎)에는 반드시 말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전했어도, 듣는 사람에게 그 말씀을 ‘들을 귀’가 없다면 그 설교는 노변정담, 잔소리 내지는 궤변으로 들릴 뿐이다.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했을 때와 스데반이 공회에서 제사장들과 백성들 앞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을 때, 한쪽에서는 3천 명이 회개하며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갈고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였다. 그들 모두 동일하게 성령의 감동 따라 말씀을 전했지만, 그걸 듣는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가 달랐던 것이다.

누군가는 예배와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고 귀한 보화를 캐내어 기쁨으로 돌아가는데, 왜 나는 동일한 말씀을 듣는데도 허무하고 힘들고 강퍅하기만 한가? 그렇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를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집중하며 말씀을 듣는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는가? 특정 설교와 설교자에 대한 편식과 낯가림이 심하진 않은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신혁주 전도사

삶이 있는 이야기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는 것

언젠가 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 어릴 때 내게 주었던 꽃반지 기억하니?” 나는 단번에 어릴 적 플라스틱 꽃반지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너에게 돌려줄게.” 하시더니 꽃반지 하나를 내미셨다. 그 반지는 유난히 반짝였고, 반지에서 생화에서의 진한 향기가 퍼졌다. 반지엔 꼬리표가 달려있었는데, 내가 드렸던 반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적혀있었다. 난 깜짝 놀라 꿈에서 깨었다.

나는 청년 시절, 내가 가진 물질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린 경험이 있다. 부모님 말씀에 따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느라 직장을 옮겨 다녔고, 가는 곳마다 첫 열매와 십일조를 드리고, 수입의 70~80%는 저축해서 그 반은 또 하나님께 드렸다.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하나님은 그 예물을 잊지 않으시고 지금도 나를 축복하고 계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 속의 가격표는 흐려지고 향기를 뿜어내는 꽃만이 선명해졌다. 그것은 무엇인가 생동하는 것이었다.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다시 지난날을 곱씹어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할머니와 큰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나에게는 그 말이 순종의 동기가 되었다. 순종할 때면 마음이 뿌듯해졌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물질의 축복뿐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신 기쁨의 향기를 보여주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의 것들을 드리고 있을까? 사느라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삶의 고통으로 나를 연단하실 때 나를 버리고 오래 참는 것,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 진실된 회개로 돌이키는 것, 맡겨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들을 오직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해낼 때 비로소 장성한 자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는 것은 그를 기쁘게 할 생각만으로도 내게 먼저 기쁨이 임한다.

나는 기도한다. 삶의 모든 동기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이호은 사모

From Internet

어머니의 가르침

어느 시골의 총각 선생님이 출근길에 시냇물을 건너다 징검다리를 잘못 밟아 신발과 바지가 물에 흠뻑 젖고 말았다. 그는 이대로 출근할 수 없어 집으로 되돌아갔다.

때마침 고향에서 오신 어머니께서 집에 머물고 계셨다. 그가 어머니에게 되돌아온 이유를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밟았던 잘못 놓인 돌은 바로 놓고 왔니?”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존경받는 선생이 되겠니? 얼른 가서 돌부터 바로 놓고 오너라. 그러고 나서 옷을 갈아입도록 해라.”

당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야속했지만, 두고두고 어머니의 말씀이 그의 삶에 지침이 되었다고 합니다.

가정교육은 아이가 접하는 최초의 교육이며, 최고의 교육입니다.

jcc0115@naver.com

주 안에서의 삶

하나님의 장막 시리즈 (1)

하나님께서는 왜 이 땅을 만드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는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바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당신 나라를 세우고자 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장막(성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으며,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거하시는 장막(성전)이 어떻게 옮겨지고 있는지를 증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에 대한 이야기를 시리즈를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 땅을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로 채우시고 당신의 나라를 만드시어,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며 다스리시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세의 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는 청사진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동쪽 에덴동산에 당신의 거룩한 처소를 세우시고, 아담을 그곳에 두고, 그에게 그곳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창2:15). ‘다스리다’는 히브리어로 (야바드), ‘섬기다’ 혹은 ‘일하다’라는 뜻이며, ‘지키다’는 히브리어로 (샤마르), ‘관리하다’, ‘보전하다’, 혹은 ‘지키다’라는 뜻입니다. 즉, 성막시대의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일하며, 관리하고 잘 보전하였듯이, 아담에게 맡겨진 일은 바로 제사장의 사역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잘 관리하고,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또 아담과 하와는 땅을 경작했습니다(창2:5). 우리가 아마 천국에 가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아마 경작도 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나라 설립의 청사진이 잘 진행이 되었다면, 우리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지냈을 텐데, 그만 옛 뱀, 사단의 유혹으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짓고 그 거룩한 곳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땅의 흙으로부터 지어진 아담의 죄를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고 만물도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더욱 죄악이 퍼져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 땅의 삶이 이렇게 힘들고 악하냐고 한탄하며, 하나님께서 잘못 만드신 것이 아니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원인은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아름답게 만드시고 좋은 청사진을 가지고 계셨지만,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망가뜨리게 된 것입니다.

갈수록 악이 더욱 관영하여지자, 결국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모두 물로 씻어버리시고, 믿음의 사람 노아와 그의 가족을 통하여 세상을 다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모든 악한 자들과 악한 짐승들은 죽었을지 몰라도, 사람의 악한 속성은 바뀌지를 않았습니다. 비록 의인 노아를 통하여 새로 인간 세상이 세워지지만, 선악과를 먹은 아담으로부터 모든 후손들의 핏속에는 여전히 악이 존재하여 이 땅에는 악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구는 다시 늘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바벨탑을 세워 하늘까지 닿고자 하는 교만의 극치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듯이, 알곡이 다칠까 봐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놔두신다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결국 마지막 추수 때까지 인간 세상을 내버려 두시고,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어떤 계획을 펼쳐가실지 구약은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리즈에 계속 하나님의 장막을 어떻게 세워 가시는지를 보겠습니다.

권문선 목사

울림있는 삶

임계점을 넘어

제법 큰 농지를 경작하시던 부모님은 동트기 전 늘 농경지로 향하셨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등교하는 날이 많았다. 덕분에 어려서부터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 큰 음식점에 취직했다. 그러나 요리할 기회는 없었고, 설거지와 보조로 십수 년을 보냈다. 그러나 늘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다.

그런 어느 날 마침내 기회가 왔다. 과음으로 지각이 잦던 주방장은 오픈 시간에 맞춰 요리를 만드느라 다급해했고, 나는 그의 주변을 맴돌며 돕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요리가 손에 익던 어느 날, 대표이사가 주방장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얼마나 기다리던 말인데…. 그러나 그 자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 근무하던 음식점은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붐볐고, 하루 천여 명이 넘게 예약이 잡히는 유명한 곳이어서 남자 주방장도 일을 벅차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렵게 다가온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바닥의 삶을 면치 못할 것을 잘 알기에 필사적으로 전력투구했다. 어릴 적 이미 습관이 된 부지런함을 발동시켜 두 시간 앞당겨 출근했고, 강한 정신력으로 대용량의 각종 조리와 무거운 식자재들, 승진 후의 위계질서 정립 등등을 해결하고 이겨냈다. 온몸의 근육과 뼈마디는 부서지는 듯 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으나 매 순간 주님을 부르며 힘을 공급받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읊조리며 기나긴 인내심의 꾸준함 속에서 나는 당당한 주방장으로 변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맡겨진 일 외에는 하지 않고, 조금 힘든 일이 닥치면 ‘나는 여자라서’, ‘나는 연약해서’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능력에도 임계점은 있다. 임계점을 넘을 때 물이 끓는 것처럼, 능력의 임계점을 넘을 때 내 안에 잠재된 능력이 분출되는 것이다. 인생에 쉴 새 없이 다가오는 거센 파도, 그것을 이겨낼 때 유능한 해군이 된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추성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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