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행4:12~31)
사도행전은 다른 말로, ‘성령행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을 통한 성령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사도행전이 28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성령은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사도행전은 진행형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사도들만이 아닌 성령을 받은 모든 자들이 다음 장을 써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친히 나셨습니다(요일5:1). 하나님의 자녀이면 당연히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나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성경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고 하셨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라고 하심으로, 성령을 받아야 확실한 하나님 자녀가 되고, 권세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넘기셨는데(마28:18), 그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당신의 권세를 이양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22:29).
그렇다면 하나님 자녀가 누릴 권세가 무엇일까요? 이는 마가복음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성령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오셨으니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명할 때 귀신이 떠나가고, 방언을 말하고, 원수를 진멸할 수 있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이 권세를 사용해서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한 것이고, 저 역시 이 능력으로 세계를 다니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권세를 가지고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행하고, 이보다 더 큰 표적도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요14:12). 이것이 절대 불가능할 일이 아닙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일진대,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기에 이것은 절대 교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당시 공간적인 제약을 받으셨지만,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멀리까지 가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더 큰 일도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하긴 귀신만 쫓아도 잘못되었다고 하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이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이요, 제사장이 지식을 버렸기에 그렇습니다(호4:6).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뉘게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고, 70인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받은 성령이나 제자들이 받은 성령이나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성령은 다른 성령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받은 성령이나 여러분이 받은 성령이나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권세가 없습니까? 왜 귀신을 대적하지 못하고 귀신에 눌려 가난하고, 병들고, 망하고 그럽니까? 이는 성령을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떠났다는 것을 의미함으로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살전5:19).
여러분, 돈의 가치를 알면 돈을 벌려고 밤잠 안 자며 일하고, 돈 벌 궁리만 합니다. 돈이 많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들 돈, 돈 그럽니다.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가치를 알게 된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아마도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함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처럼, 기도로 성령을 충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행하신 후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 또 새벽 미명에도 산에 올라 기도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기도할 처소를 찾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천원과 만원의 가치는 분명히 다릅니다. 만원과 백만 원의 가치는 더욱 다르지요. 돈의 액수가 크면 클수록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하루 한 시간 기도하는 사람과 하루 네 시간 기도하는 사람의 능력은 분명히 다릅니다. 제가 해외 집회를 나가면 하루 7시간 정도 기도하는데, 그래야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납니다. 귀신이 나가고 각색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예수님처럼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내쫓는 일은 밤이 맞도록 기도해야 가능합니다. 마가복음 9장에는 귀먹고 벙어리 된 귀신들린 아이를 제자들이 어찌하지 못하고 예수님 앞에 데려오자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 그 아이를 고치십니다. 이에 제자들이 ‘왜 자기들은 능히 귀신을 쫓지 못하느냐’고 질문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아무리 좋은 핸드폰이라도 배터리가 나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방전되면 전화할 수도, 모르는 것을 검색할 수도 없습니다. 동일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으면 우리는 그냥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으면 핸드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처럼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자녀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전화할 수 있습니다. 도와달라고, 고쳐달라고 말입니다. 전화번호요? 바로 예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바로 행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여러분, 옛날에는 유선전화였습니다. 꼭 전화기 앞에 가야 전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어디든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특정인뿐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으로 인해 누구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만인제사장 시대가 열렸습니다. 성령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전화를 걸면 하나님이 직접 받으셔서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돈이 지갑에만 있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돈은 쓸 때 그 가치가 나타나듯, 예수 이름도 사용할 때 그 가치가 나타납니다. 그러니 예수 이름을 마음껏 사용하세요.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세요. 장사가 안 됩니까? 병이 들었습니까? 물건이 안 팔립니까? 예수 이름으로 그것들을 명령하고, 귀신을 쫓아내세요. 예수 이름 앞에 복종하지 않을 것은 없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허름한 사람이 와도,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와도, 못 배운 사람이 와도, 노인이나 아이가 와도 그것을 보는 게 아니라 오직 돈만 보고 물건을 팝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학벌이나 미모, 재력이나 권력을 보지 않으시고, 오직 우리의 중심만 보십니다. 그 안에 믿음과 성령 충만함이 있을 때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기도를 습관화해서 늘 성령 충만함을 입으십시오. 분명 이 땅에서도 천국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배터리가 방전된
휴대폰은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