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敎權)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특별했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임금과 스승과 부모의 은혜는 다 같다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까지 말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사회적 풍토조성을 위하여 1963년 5월 26일에 처음으로 스승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고 사은행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63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자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1973년 서정쇄신의 일환으로 사은행사를 제한하는 바람에 폐지되었다가 1982년부터 부활되어 지금까지 시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교사들 사이에서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권이 형편없이 바닥에 추락한 마당에 스승의 날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학생의 인권이 교권보다 위에 있다 보니 사랑의 매가 폭력으로 치부되고, 공경의 표시로 마음을 담아 드리던 선물이나 촌지가 뇌물로 취급되는 현실입니다.
학교나 군대와 같이 교육이나 훈련을 위해서 집단생활을 할 때는 자유가 어느 정도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격이나 인권을 주장하며 체벌이나 벌칙조항을 다 빼버리고 나니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내 아이가 귀하다면 강하게 길러야 하고, 어릴 때에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선생님을 폭행하고, 아이의 역성을 들어주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투철한 국가관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부터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일본인들이 자녀들을 키울 때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迷惑すゐな(메이와쿠스루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대중식당에서 다른 식탁에 피해를 끼쳐도 주의를 주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를 혼이라도 내면 싸울 듯이 달려들면서 “왜 우리 아이 기를 죽이느냐?”며 항변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키운 아이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도 못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되고 맙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에 맡겼으면 선생님께 부모의 권한을 넘겨 드려야 합니다. 대를 이을 귀한 자식일수록 회초리를 마다하지 않고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이야기들 하는데 그렇게 중차대한 일을 맡아서 감당하는 선생님들의 교권이 추락한 마당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나의 교육관은 어떤지 다시 생각해보고, 우리 모두 스승을 스승으로 대접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