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행20:24)
제 인생은 예수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 저는 청년사업가로 잘 나가고 있었고, 정치에 대한 야망도 있었으며, 육영사업까지 병행하고 있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던, 나름대로 완벽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국산 자동차가 새로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갈아탔고, 그 당시 흔치 않았던 명품으로 스타일을 내곤 했습니다. ‘이사장’ 하며 따르던 친구들도 많았고, 술통을 지고는 못가도 퍼마시며 삶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난 뒤 저의 인생은 완전히 180도 달라졌습니다. 엄청난 재산을 무 자르듯 잘라내며 예수를 전했고,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뒤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의 연속된 삶을 살았습니다. 가족도, 그렇게 따르던 친구도 다 떠났을 뿐더러 교계로부터도 분리되는 등,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저는 완전히 망한 자였습니다. 어쩌다 살던 동네가 그리워 가보면 행여 돈 빌리러 왔나 싶어 친구도, 안면 있던 동네 분들도 외면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누비던 그 시절이 그립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마음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이 너무 너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물 없는 사막의 길을 걸었고, 눈 덮인 사막을 지나왔지만 저는 당당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행복한 노예다!”라고.
행복한 노예가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십니까? 이스라엘 규례에는 같은 민족으로 종이 된 경우에 종 된 자가 만 6년이 지나고 7년이 되거나 혹은 안식년이나 희년이 오면 주인이 종을 해방시켜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종이 주인을 사랑하여 자유하지 않겠노라고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가서 공인을 받고,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어 그 종이 영영히 상전을 섬기도록 했습니다(출21:5~6). 상전을 사랑하므로 스스로 종이 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나의 주인이신, 나의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사랑하므로 스스로 종으로 매인 바 되었고, 그분의 종으로 사는 것을 영광스럽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기에 눈물 나도록 행복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도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의 사울(바울)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정말 대단한 가문과 학식을 자랑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자랑거리였던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3:8~9). ‘내가 그를 위하여’, 즉 예수님을 위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고난의 길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는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는 자가 되었고, 이단의 괴수라 지목되어 마치 만물의 찌끼처럼 되었으며, 더욱이 미말에 죽이기로 작정된 자였으니 그는 불행한 자이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며 행복에 겨워 환호했습니다. 되레 예수님을 만나기 전을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딤전1:13)라고 회상하며, 13서신을 통해 그의 감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모세의 삶도 그 자체로 황홀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40년간의 광야 생활이었지만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고, 매번 하나님의 영광 속에 사는 삶이니 그 삶을 무엇에 비기겠습니까?
여러분, 인생이 강건해야 7, 80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이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그저 속절없이 신속히 날아갈 뿐입니다(시90:10). 마치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베임을 당하는 풀과 같습니다(시90:5~6). 그렇다면 인생이 허무한 것이냐? 아닙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예수와 함께 사는 자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그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이요, 가장 멋있는 사람은 그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은 ‘인생이 뭘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인생의 끝은 무엇일까?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고뇌하고 그것 때문에 방황하던 시절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고행을 하기도 합디다. 그러나 인생은 인생을 만들고 허락하신 분을 위해서 살아야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중심으로 사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자인 것입니다.
목숨을 내어주고도 아깝지 않은 일을 만난 자가 있다면 행복하겠지요? 확실한 삶의 목적을 정한 자니까요. 그 대상이 예수라면요? 사도 바울의 멋진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바울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또 다니엘이나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위험에 던졌을 때 불행을 느낀 것이 아니라 참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아시죠?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을 위해서 자신들의 삶을 전부 드린 자였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그들은 억지로나 어쩔 수 없이 바울을 섬긴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바울을 섬겼고, 섬김으로 행복했던 자들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저를 위해 눈이라도 빼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각 부서에서 충성되이 일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나와 같은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종은 주님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풍족하게 하고, 주의 종을 위해 헌신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저에게 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풍족합니다. 다만 여러분이 복을 받기 원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7~19).
여러분, 에서처럼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귀한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것들에 연연하여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면 안 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소금물을 켜는 것과 같아서 먹을수록 더욱 갈증을 초래할 뿐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분과 동행하고, 그분을 위해 살고, 그분을 위해 목숨마저도 버릴 수 있는 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을 소유하게 될 것이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여 결혼하면 서로에게 구속됩니다. 그러나 사랑하기에 그 구속을 기뻐하고 묶임에 행복을 느끼듯,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멍에를 매고, 착고에 채워짐이 오히려 행복의 요건이 됩니다. 그런데 그 착고가 구속처럼 느껴집니까? 그 멍에가 무겁습니까? 그래서 벗어버리고 싶습니까?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벗어 던지기 전에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3~4).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러분! 끝까지 잘 갑시다. 삶의 목적이 흔들리지 말고, 세상 것에 눈멀지 말고 끝까지 예수를 위한, 예수에 의한 삶을 삽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이것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할렐루야!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사랑하기에 구속되는 것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