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이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라 (벧전4:7~11)
여러분, 생각은 마치 임신(姙娠)과 같습니다. 처음 아이를 갖게 되면 여아(女兒)인지, 남아(男兒)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점차 엄마 뱃속에서 자라면 눈이 생기고 손도 생기게 됩니다. 요즈음은 초음파로 다 확인이 됩디다. 그리고 마침내 열 달 후면 완전한 생명체가 되어 이 땅에 여아·남아로 태어납니다. 생각이란 것이 이런 것입니다. 생각은 씨와 같기 때문에 처음에는 보이지 않으나 점차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비형상인 생각이 점차 현실로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상화된 모든 것들은 모두 비형상인 생각에서 비롯됩니다(히11:3).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부모를 닮듯 결과는 늘 ‘생각한 대로’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의 열매를 거두고,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의 열매를 맺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나는 못해’, ‘나는 안 돼’라는 생각을 했는데 ‘성공’이라는 자식을 낳았다고 말하는 것은 철저한 모순입니다. 그것은 마치 김 씨랑 결혼했는데, 이 씨를 낳았다고 하는 것처럼 어불성설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결과를 몰고 다닙니다. 생각이 운명을 좌지우지합니다. 성경은 이 말을 아주 간단하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결과라”(렘6:19).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이렇게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육신의 일을 생각하면 육신을 일을 좇게 되어 마침내 사망이란 결과를 몰고 오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 영의 일을 좇게 되어 생명과 평안이라는 결과를 몰고 온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했는데 영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여기에 다른 말을 대입해봅시다. ‘안 된다’는 생각은 실패를 낳고 결국 인생이 사망에 이르나, ‘할 수 있다, 나는 된다’는 생각은 성공을 낳고 마침내 평안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공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선악과만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라고 생각만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나요? 낙원을 상실하고 사망의 종노릇하는 인류 재앙을 낳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생각이란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소리의 속도가 대략 초당 300,000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각으로 지구 한 바퀴 도는 거? 우주공간을 왔다 갔다 하는 거? 그거 금방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제 심각하게 나를 돌아다보아야 합니다. ‘왜 나는 늘 안 될까?’, ‘왜 나는 늘 실패할까?’ 경기가 나빠서? 여건이 나빠서? No! 원인은 늘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문제입니다. 나무에 열매가 안 맺힌다고, 잎이 자꾸 마른다고 물만 주는 자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뿌리를 살펴야지요. 근원을 살펴야 한다는 겁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 주면 더욱 썩게 될 뿐입니다. 뿌리요, 근원인 우리의 생각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이 풀리고, 내 운명이 바뀝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여러분, 생각을 바꾸는 것은 진짜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습니다. 학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미모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바꾸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그게 왜 못하느냐? 현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못 배우고, 가진 것도 없고, 건강하지도 못하고, 재수도 더럽게 없는 나를 보니까 생각을 못 바꾸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들으시면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듣고 생각을 바꾸세요. 지금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그 생각의 자식이 나와 고달프게 됩니다. 생각이 형상화되기 전에 얼른 생각을 바꾸십시오.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의 사건이지요. 그때 마리아는 자신을 봤습니다. ‘아니,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지?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생각해서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자신의 생각을 천사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왜 너는 믿음이 없냐?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을 어찌 낳겠냐?’ 이렇게 타박한 게 아니라 “네 친척 중 엘리사벳이 있지? 그도 늙었는데 6개월 전에 아이를 가졌단다. 누가 하셨는지 아니? 바로 하나님이시지. 너도 같단다. 너도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단다.”(눅1:35~37)라고 생각을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전까지 안 된다던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생각을 바꾸어 예수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알아차리셨습니까? 나는 안 되지만 하나님에겐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람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눅18:27). 내 생각은 부정적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늘 초긍정이십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겁니다. 어떻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됩니다. 그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으면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나의 형편이나 처지와 관계없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 길은 우리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기 때문’입니다(사55:8~9). 비유가 합당할지 모르지만 돼지 내장을 양의 내장으로 바꾸면 절대 ‘꿀꿀’거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면 절대 ‘안 된다’, ‘못한다’라고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사람 안에는 늘 두 마리 짐승이 살고 있습니다. 부정이라는 놈과 긍정이라는 놈입니다. 이 두 놈 중 어느 놈이 더 세냐면 먹이를 많이 준 놈이 더 셉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부정이란 놈에게 먹이를 많이 줘왔습니다. 그래서 늘 부정이 긍정을 이겼습니다. 그 부정이란 놈이 우리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지금까지 배운 대로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면 자연적으로 긍정이란 놈에게만 먹이를 주게 됩니다. 부정이란 놈이 굻어죽게 합니다. 그러면 긍정의 말이 나오고, 긍정의 열매를 얻게 되어 만사가 형통하게 되고, 만물이 내 앞에서 노래를 발하게 되고, 늘 가시나무만 나던 인생에 늘 푸른 잣나무가 나고, 질려 대신 화석류가 나게 될 것입니다(사55:12~13).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를 ‘빛이 있으라, 물과 물이 나뉘라.’ 하시며 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말 이전에 생각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볼 때 외모나 학력이나 문벌을 보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떨지 다 알 수 있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이건 못합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말이 이렇다는 건 생각도 그렇다는 거거든요. 자신의 말이 어떤지 점검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막5:28)는 생각 때문에 나음을 받았던 겁니다. 중풍병자인 친구를 ‘살리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지붕을 뚫어 예수님 곁으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발하게 되었고(막2), 고아인 에스더가 사촌오빠로 인해 생각을 바꿔 왕후가 되었던 것입니다.
생각은 자동차의 핸들과 같습니다. 운전하는 자가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차가 가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후진하면 뒤로 가듯 여러분의 인생은 생각대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일랑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안 된다’는 생각 대신 ‘된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할렐루야!
생각대로 살 것인가
사는 대로 생각할 것인가
도토리 씨 안에는
참나무가 들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