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뿌리를 내리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는 현대 토목 건축물의 7대 불가사의로 불린다. 본시 금문교는 차고 거센 조류와 안개가 많은 날씨, 수면 아래의 지형이 복잡하여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2000년 된 ‘레드우드’라는 나무의 뿌리에서 지혜를 얻어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고 한다.
첫째, 다른 나무보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둘째, 잔뿌리가 많으며, 그 잔뿌리가 습기 있는 곳을 찾아 수분을 공급해준다. 셋째, 뿌리가 큰 바위를 감고 있어서 폭풍이 불어 나무가 흔들릴 때도 반석을 휘감은 뿌리 때문에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문교를 시공한 설계자 역시 반석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위에 교각의 지주를 세우고 서로를 연결하여 다리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목사님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지 불가능은 없다’고 늘 교훈하시고, 또 우리가 못하는 것은 안하기 때문이라고도 말씀하신다. 이제 우리도 2000년 전에 오신 반석이신 예수께 깊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그분의 도우심을 입어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불어도 견딜 수 있을 것이고, 뿌리가 있으니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기적과 같은 역사가 있으리라.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를 믿는 믿음 가운데 산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위로 열매를 맺는 역사를 반드시 이루게 될 것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의 5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상카라(Thomas Sankara)는 생전에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렸다. 그는 19세 때 공군에 입대하여 공수부대 장교가 되었고, 주변국과의 국경분쟁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전쟁영웅이 된다. 정치권의 심각한 부정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여성, 황폐해지는 자연환경에 처한 조국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던 그는 다방면으로 해결 방법을 강구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먼저 프랑스 식민지배의 잔재인 이전의 국명을 현재의 국명으로 개명하고 국가와 국기까지 모두 새롭게 바꾼다. 그러면서 그는 조국의 경제를 일으키려는 계획을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행정구역을 새롭게 나누고 각 구역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여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관리하게 했고, 과중한 인두세를 과감히 폐지하고 토지 재분배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여 도로, 상하수도 같은 사회 기반시설들을 구축했고, 90%가 넘는 문맹을 치유하기 위해 여러 학교를 설립했다. 일부다처제와 여성 할례의식을 금하는 한편, 여성을 고위공무원직에 대거 임명하는 등 여성 인권을 신장시켰다. 그리고 피임을 장려하고 아동을 위한 예방접종도 대대적으로 시행했으며 에이즈의 실체를 아프리카 최초로 정부 차원에서 인정하기도 했다. 마을마다 병원을 세워 근대적인 의료체계를 확립하려 했고, 사막화가 계속 진행되는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재녹화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의 개혁정책들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어 집권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될 정도로 경제가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보는 주변국의 독재자들에게 위협적으로 비쳤고, 결국 그들에게 포섭된 동료의 손에 암살당한다. 그를 죽이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그의 동료는 그간 실행되었던 모든 개혁정책들을 모조리 이전으로 되돌렸고,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세계 최빈국으로 추락하고 만다.
국가든 기업이든 교회든 개인이든 누구를 만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사례다. 항상 기도와 선교로 깨어 있기를 힘쓰고, 오직 예수님의 방법대로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는 교회와 지도자를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행복은 셀프다
시간이 없다며 쩔쩔매는 이에게 물었다. 왜 그리 바쁘게 사냐고? 그의 대답은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을 다한다고 하였다. 많은 건물과 돈을 갖고도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냐고? 그의 대답 역시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권력을 갖고도 만족 못하는 정치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큰 권력이 필요하냐고? 그의 대답 역시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나이 지긋하신 철학자에게 물었다. 행복이 뭐냐고? 그의 대답은 그걸 알기 위해서 평생 공부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회장에게 물었다. 행복이 뭐냐고? 그의 대답은 ‘그걸 위해서 평생 돈을 벌었지만 아직도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추운 거리에서 적선을 기다리는 걸인을 만났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 생각되어 폐일언하고 물었다. 행복이 뭐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늘 저녁 먹을 끼니와 잠잘 곳만 있으면 행복한 것 아니냐고!
그렇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도 않고, 미래에 있지도 않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훔쳐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행복하기 위해서 나의 행복관을 바꿔야 할 때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가장 적은 사람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만족이다. 욕망이 아니라 욕망의 욕구를 잠재우는 평정심이 행복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누리며 감사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걸 탐내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다. 즉 ‘행복은 셀프다.’ 행복의 씨앗을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멋진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돼라. 멋진 사람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따뜻한 사람은 마음을 데워준다. 잘난 사람보다는 진실한 사람이 돼라. 잘난 사람은 피하고 싶지만 진실한 사람은 곁에 두고 싶다. 대단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돼라. 대단한 사람은 부담을 주지만 좋은 사람은 행복을 준다. 우리 모두 오늘도, 내일도 행복했으면 한다.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자신과 비교해야 할 사람
하버드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학 중에 하나입니다. 그곳의 학생들은 이미 수많은 경쟁자를 이긴 소수지요. 그 정도면 실력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굉장히 넘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곳에 있는 학생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비참함을 느낀다지요. 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그 이유를 ‘상대적 박탈감’에서 찾습니다.
이공계를 전공하는 하버드의 하위 1/3학생들의 SAT 수학 점수는 하트윅 대학교의 상위 1/3보다도 높습니다. 점수로만 보면 하버드의 하위권이 하트윅의 상위권보다 더 우수하지요. 그러나 하트윅의 상위권 학생들은 압도적으로 원하는 학위를 받아 엔지니어나 생물학자가 되는 반면, 그들보다 SAT 점수가 더 높은 하버드의 하위권 학생들은 대다수가 전공을 포기하고 타 전공으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만약 하버드의 하위권 학생들이 자신을 전 세계 학생들과 비교한다면, 자신이 상위 1% 안에 드는 똑똑한 사람인 걸 알고 자신감이 넘쳤을 겁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옆자리에 앉은 하버드의 상위권 학생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좌절하고 낙담하고 그로인해 전공마저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비교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저는 비교를 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극히 싫어합니다. 하지만 제가 제 자신과 비교를 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과거의 제 자신’입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비교해보면서 제 자신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 혹은 안 좋아진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보곤 합니다. 예전의 저는 말의 실수가 종종 있었습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든지, 가깝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심하게 얘기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또 자존심이 세서 그렇게 실수하고 나서는 먼저 사과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제 기분보다는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면서 말의 실수를 많이 줄였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사과 또한 먼저 하고요. 이건 과거와 비교할 때 제 스스로를 칭찬하는 부분입니다.
반대로 예전에 비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습니다. 예전엔 괴로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방으로 들어가 벽을 보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는데, 요새는 골치 아픈 문제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기도를 합니다. 과거의 저와 비교하면, 현재를 점검하고 반성하게 되며 저를 일으켜 세워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만약 하버드의 하위권 학생들이 자신을 옆자리에 앉은 상위권 학생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비교했더라면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똑똑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비교해야 할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입니다. 얼마나 더 실력이 좋아졌는지, 얼마나 형편이 나아졌는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이제는 타인이 아닌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보는 건 어떨까요.
신은혜 성도
dopal0203@naver.com
수필가 윤세영의 글에서 읽은 재미난 에피소드입니다. 정년퇴임을 한 교수가 방송 출연을 요청받고 방송국에 갔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수위에게 물어보려고 갔는데 질문을 하기도 전에 경비 아저씨가 먼저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퇴직해서 소속이 없어진 교수는 당황한 나머지 “저, 집에서 왔는데요.”라고 대답해서 한바탕 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격이 호탕하고 대찬 다른 교수님도 동일한 경우를 당했는데 그분은 당당하게 “여보시오, 어디서 왔냐고 묻지 말고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보시오. 나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왔소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마침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제자가 멀리서 보고 달려와 모시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역시 우리 교수님 말씀은 다 철학적이에요. 우리 인생도 어디서 왔느냐보다는 어디로 갈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어요.”
복음성가 가사처럼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발걸음 무겁게….’ 모든 인생은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복락의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의 세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지옥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우리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엄마에게
사랑하는 우리 엄마, 낙원으로 가신 지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그곳 생활은 좋으시죠? 주님과 또 천사들과 함께 하며, 말 그대로 낙원 생활이시겠죠?
저희들은 잘 살아가고 있어요. 물론 하늘에서 보시면서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느라 더 잘 아시겠지만요. 사실은 엄마가 그렇게 떠나시고 많이 힘들었어요. 학생이었던 제가 지금은 아이 둘 있는 어엿한 가장이 되었는데도, 문득문득 엄마가 생각이 나네요. 특히 종종 ‘엄마가 아직도 이곳에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 더 그런 것 같아요.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날들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있네요.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 후회라면, 가장 큰 슬픔은 그리움인 것 같아요. 다시 만날 거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이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가장 큰 행복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어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이 계신 천국으로 부르시고 영원히 함께하시려는 거겠죠?
엄마가 떠나신 후 이 세상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는 단 한 가지는 관계뿐이라는 것을요. 하나님과의 관계, 또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삶의 유한한 시간을 그 관계들에 얼마큼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예배,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시간을 최대한 가지려 노력하고, 또 제 삶 속 소중한 이들과 좋은 대화와 만남을 통해 따뜻한 시간을 많이 보내려 하고 있어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전도도 잘해야 하는데 늘 마음만 앞서 조금 더 분발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시간을 엄마에게는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려 오네요.
사랑해요, 우리 엄마. 훗날 낙원에서 볼 날을 그리며….
박찬영 집사
post.naver.com/imsofriendly
어머니의 사랑
이번 주는 지난 설 연휴의 여파로 꽤나 길게 느껴집니다. 구정에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느라 다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탓이겠지요. 반면 가족들의 몇 마디 말에 상처를 받는다고 고향에 가지 않고 개별적으로 흩어져서 노는 나홀로족이 많아진 요즈음의 연휴 분위기는 안타깝습니다. 결혼, 취업, 자녀, 승진 등의 여러 가지 주제들로 한마디씩 하는 가족들의 말에 속상할 때도 많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자기 자녀들이 최고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똑똑하고 잘난 내 아이가 왜 결혼도, 취업도 안하고 있을까?’ 싶은 마음에 질타의 형태로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특목고에 입학할 때의 일입니다.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500만 원 정도의 입학금은 진로를 결정하는데 많은 고민이 되는 돈이었습니다. 저는 합격하고도 차라리 용산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히려 돈 때문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해줄 테니 일단 특목고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학교의 수준이 높으면 그만큼 높은 수준의 친구들과 만나고 그만한 수준의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특목고에 진학하여 소위 있는 집 자녀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 친구들은 의사, 판사, 변호사 등 사회 각층의 리더가 되어 제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집이 무척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그것이 특별히 기억이 나지 않는 건 그만큼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리 없어도 여유 있는 사람이 되라며 친구들과 놀 때도 위축되지 말라고 용돈을 늘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서 점심도 걸러 가면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속상했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여유 있는 제 성격은 그때 많이 형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항상 정확한 조언을 해주시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 감사합니다. 가끔은 티격태격 싸우는 일도 많고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감사한 건 어릴 때부터 예수를 알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모님에 대해선 ‘할말하않’ 해야 할 듯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할 말은 많지만 너무 많아서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백번을 태어나도 지금의 부모님의 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그 뜻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화 성도
realdialo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