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끝내지 말라 (눅12:35~50)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는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여 신랑이 언제 오든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적게 준비한고로 신랑을 기다리다 그만 기름이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래 부랴부랴 다시 기름을 사러 갔는데 하필 그 사이에 신랑이 온고로 결국 혼인 잔치에 못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끝에 성경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마25:13).
오늘 본문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출타한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깨어 허리에 띠를 띠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결론도 동일합니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눅12:40).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우리 주인이신, 우리 신랑이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과 함께 들림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깨어 그날을 예비해야 합니다. 잠을 자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7~18).
제철소는 연중무휴 하루 24시간 풀가동합니다. 왜냐하면 불이 꺼지는 순간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쇳물이 파이프라인에서 굳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번 굳어 버린 파이프를 복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항상 가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연중무휴로 불이 밝혀져야 하고 뜨거워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입니다. 제철소의 불이 꺼지는 순간 제철소 존폐의 문제가 제기되듯이, 우리 삶 속에 성령이 소멸되는 순간 우리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영의 눈을 뜨고 보면 마귀와 악령과 귀신들이 우리를 죽이고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놈들의 최종목적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이간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못된 것들을 쫓을 수 있고, 그놈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무기 잃은 병사 꼴이 납니다. 당연히 백전백패하고, 그놈들에게 사로잡혀 종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던 구약시대를 지나고,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역사하시던 때를 지나 지금은 성령이 친히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시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했다면 지금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모든 심령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지금이 만인제사장 시대라 하는 것입니다. 고로 신앙생활의 성패는 성령과의 교제가 있느냐 없느냐,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느냐 입지 못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성령에 대해 침묵하며 사람들의 혼을 만족시키는 교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물은 많으나 정작 먹을 물이 없는 홍수의 때를 지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세례를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최대의 복은 주의 종을 잘 만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자연적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아닙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사마리아에도 빌립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으나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보니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령세례를 주었습니다. 또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갔을 때,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눈이 동그래지며 “성령이 뭡니까?”(행19:2)하고 되레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면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 곧 물세례만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주니 그들이 방언을 말하고 예언도 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말씀하셨고,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드신 빛은 우리의 육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고로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 역시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성령을 소멸하는 것은 빛을 잃어 영혼이 캄캄한 곳에 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캄캄한 곳에는 도적이 날뛰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귀신이 날뛰어 넘어져 다치고, 망하고, 꼬이고, 다 도적질 당하게 됩니다. 빛이 없으면 추워지고, 냉랭해지듯 첫사랑을 잃는 것, 다 성령이 소멸된 탓입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교회도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이 계속 활활 타오르면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교회도 번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아라”
(요20:2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삼서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는 말씀은 영혼이 우선적으로 잘되어야 만사가 형통하며 건강하다는 말씀인데, 영혼이 잘 되는 방법은 바로 성령의 충만함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소멸하지 않을까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떨어지면 전기에 꽂아 충전하듯, 성령 충만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습관적으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배터리를 잠깐 꽂아놓으면 잠깐 쓸 수 있지만, 완전충전하면 오래 쓸 수 있듯, 성령도 오래 기도하고, 깊이 기도하면 충만함을 잃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깊은 곳도 통달할 수 있게 됩니다.
핸드폰을 한번 충전하면 영원히 쓰나요? 자동차에 기름 한번 넣었다고 계속 타고 다닐 수 있나요? 아니지요? 자주 넣어줘야 하고, 멀리 갈 때는 계속 많이 넣어줘야 합니다. 그렇듯 성령을 받았다고 천국까지 갈 수는 없습니다. 이는 간당간당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와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계속 충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소멸하고 율법에 얽매인 갈라디아 교인들을 나무랍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처음보다 마지막이 좋아야 합니다. 육체로 시작했으나 성령으로 마치는 자는 복된 자이고,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끝나는 자는 더욱 복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치는 자는 불행한 자입니다. 사울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불행한 사람이었고, 다윗은 잘못을 깨닫고 즉시 회개하고 성령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구했던, 그래서 성령으로 마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시51:11).
성경은 육체로 마치는 자들에게 엄히 경고합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여러분, 제철소의 불이 꺼지면 이미 제철소가 아니듯, 자동차에 기름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고철에 불과하듯,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지 않으면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그러므로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 땅에서도 천국 생활하고, 주님이 짓고 계신 그 나라에도 넉넉히 들어갑시다. 할렐루야!
처음보다 끝이
좋은 사람이 되자
기름 없는 자동차는
고철덩이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