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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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나는 변화되기로 작정했다

988호 · 2019-02-03
아름다운 인생

지난 목회자 세미나 때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었다. 음향장비와 영상장비 세팅이 끝날 무렵 총회장 목사님께서 준비상황을 보시고자 오셨는데 장비가 세팅된 모습을 보시고,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목회자 한 사람이라도 변화 되는 게 중요하지.”라고 하시면서 세미나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장비들을 맨 뒤로 다시 세팅하라고 지시하셨다. 교단의 목회자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시는지 느껴졌다. 세미나 내내 교단의 목회자들이 변화되고자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변화해보리라 작정했다.

세미나 이 후 과연 내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문득 머릿속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예수님처럼 되길 원하셔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살자!”라는 2019년 슬로건을 우리 교단에, 아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니 더 가슴이 뛰었다.

새해를 맞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 속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살아봤더니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없다면 말씀하시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멘!

이은성 성도

To Be Succeeded

약한 나로 강하게

결혼 전, 남편 따라 주의 길을 들어서려니 하나님께 확답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 기도모임에서 간절히 묻고 또 물었다. “하나님, 전 몸도 맘도 연약합니다. 왜 그런 저를 택하셨나요?” 어느 날 밤, 기도시간이 끝날 때쯤 맘 깊숙한 곳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곧이어 목사님의 교육시간을 통해 확답을 주셨다. 지극히 작고 적은 유태인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그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고 일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소수 민족인 그들의 저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함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것이었다.

나의 연약함을 인해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모든 영광은 홀로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 하나님의 크신 뜻을 머리로는 알게 되었지만 나에게 체득되어지는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이전에는 맘먹고 결단하면 쉬이 됐었던 것들이 이젠 내 뜻대로 맞아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선하게 살아왔다고 여겼던 내 안에 그토록 누추한 것들이 많음을 보았고, 살 소망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 내게 왜 이러시나?’며 차라리 지금 아버지께 가고 싶다는 신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오히려 내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예수가 거하시기를,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기에 하나님의 심히 크신 능력을 보배로 담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그 보배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시인하고, 나의 능과 잘남을 비울 때에야 비로소 담기기에 우리 인생에 고난이라 불리는 가지치기도 필요하다.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우리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하신 주님.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시어 자녀 삼으신 것도, 각자에게 약한 부분과 고난 주셔서 주 뜻 알게 하시는 것도, 그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날로 단단케 하시는 것도 모두 다 주님의 은혜다. 우리 삶의 원동력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날로 강하고 깨끗하게 제련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삶이 되어지길 소망한다.

이국진 사모

joyful_jina@hanmail.net

소망의 언덕

청지기 인생

연말이면 교육부서는 성탄예배 준비로 아주 바쁩니다. 매일 팀원들과 모여 기도와 연습을 마치고 나면 새벽 1~2시가 넘기 일쑤였고, 혼자 남아 이것저것 고민하고 기도하다보면 새벽 3~4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들기도 하고, 밤을 꼬박 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12월에 한 교사가 제 건강을 생각하여 수영강습을 등록해주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거절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몇 차례나 권해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수영장을 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 날 몇 시에 잠이 들건 새벽에 알람이 울릴 때면 ‘아무개 선생님 생각해서라도 가야지’ 하면서 이불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1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하고 그대로 수영장을 향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것을 익히 경험했기에 서둘러 환복하고 풀장에 들어갔었죠. 강습생들과 줄 지어 레일을 따라 수영을 하던 중 깜빡 졸았던 모양입니다. “어푸푸…” 물을 한껏 먹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내 돈 내고 다녔으면 이렇게 안 한다.” 레일 중간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나온 첫마디였습니다.

한 교사가 귀한 물질로 섬긴 것이었기에 그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그 시간만큼은 내가 최선을 다해야만 그 교사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수영을 마치고 길을 나서는데 내 안의 성령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아! 그 교사가 지불한 대가를 참 귀히 여기는 구나. 그렇다면 너를 위해 내가 치른 대가는 얼마나 귀히 여기고 있니?”

순간 때때로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주님께 드린다고 자부했던 모습이 한 없이 초라하고 부끄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인생을 사망에서 당신의 피 값을 주고 속량하셨거늘 그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살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를 책망했습니다. 이제 그 날 경험했던 작은 일을 통해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는 2019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현승 전도사

coollee0817@naver.com

Good News

미국에 로데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기농법재배의 선구자였으며 자연식품 섭취를 권장하는 전도사였습니다. 통조림이나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같은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자연식을 섭취하라고 홍보하며 다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신문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내 나이가 지금 72세인데 교통사고와 같은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가 아니면 100세까지는 건강하게 거뜬히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TV 토크쇼에 나가서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는데 녹화가 끝나자마자 심장마비로 돌연사 하였다고 합니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식생활이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바람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고 풀잎 끝에 맺혀 있는 이슬과도 같은 짧은 인생입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길어야 100년 밖에 안 되는 이 땅의 삶에 정신을 빼앗겨서 영원한 세상의 삶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치우치지 않는 저울

의리

또 쫓겨나듯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벌써 6번째입니다. 이 작은 지역에서 이제 어머니를 받아줄 교회를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가족, 친척에게 핍박당하는 것도 모자라, 다니던 교회에서까지 배척당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눈에는 어머니가 그저 불쌍해보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어머니는 잦은 병치레로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옆집 권사님의 전도로 나가게 된 교회에서 성령을 받고 건강도 회복했지만, 아직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옆집 권사님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며 이초석 목사님의 말씀 테이프 하나를 전해주셨습니다. 테이프를 듣던 어머니께서는 전부 자신의 상황에 맞는 말씀이어서 신기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아버지의 인사발령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간 교회는 방언기도를 금지했습니다. 자연스레 기도와 멀어지게 되었고, 교회 나가기 전보다 더 심한 병이 찾아왔습니다. 갈급했던 어머니는 이초석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렸고, 이 분을 만나면 병을 고칠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장성기도원에 찾아갔습니다. 기도를 회복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초석 목사님을 통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이초석 목사님의 말씀 테이프와 비디오로 하루하루를 사셨습니다. 여름에는 현관문을 열고 지냈는데, 어찌나 오디오 볼륨을 높였던지 학교를 마치고 아파트 공동현관에 들어서면 계단에 목사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5층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아, 어머니가 집에 계시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지역에는 우리 교단의 지교회가 없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예배실황을 볼 수도 없던 때라 가까운 교회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도 어머니는 부지런히 이초석 목사님을 통해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고, 장성기도원에 아픈 성도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에서는 어머니가 잘못됐다고 비난했고, 결국 쫓겨나듯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6번째 교회에서 쫓겨났지만 어머니의 믿음과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왕복 4시간 거리의 광주예수중심교회까지 전도한 사람들을 승합차에 가득 태워 주일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약 10년 동안 여섯 교회에서 쫓겨나고, 기도할 곳조차 없어서 전도한 사람들을 이끌고 산 속에서 기도할 처지가 되었어도, 결코 단 한순간도 이초석 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알아주길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은혜 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도리였기에 하나님과 이초석 목사님께 의리를 지켰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지역에 우리교단의 지교회를 세우는데 어머니를 주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도사로 부름 받아 그토록 원하던 하나님의 일을 마음껏 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 요셉, 욥,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에스더 등, 하나님께서 자랑스럽게 여겼던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의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말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쥐꼬리만 한 문화적인 지식 앞에 팔 수 없다’고 외치시며, 목사 안수를 준 교단에서 제명당하기까지 하나님께 의리를 지켰던 총회장 목사님의 현재를 우리 모두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옳았습니다! 어머니를 다 이해하지 못해서 그저 불쌍하게만 바라보았던 어린 아들은 이제 자라서, 그 시절부터 이초석 목사님을 통해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나침반 삼아 어머니의 믿음을 이어가며 바랄 수 없는 것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의리를 지켜 믿음의 본이 되어주신 총회장 목사님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또 지금도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계실 성도님들께 위로와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정명관 성도

참된 깨달음

은혜의 새 아침!

사실 1월 1일이나 12월 31일이나 인위적인 설정임에도 새해가 되면 늘 새로운 변화를 열망하는 마음의 표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거 같습니다. 해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수십만 명이 모이는 것도 이런 기대감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2019년에 먼저 회복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것입니다. 개인도, 자녀도, 가정도, 사업도,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먼저 무장해야 합니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됩니까?’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가만히 있게 놔두지 않습니다. 예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은혜는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사용하게 합니다. 게으른 자들이 부지런해지거든요. 죽은 것들이 살아나고, 죄인이 의인이 되고, 교만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달라지게 합니다.

우리 기독교가 위대한 것은 언제든지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다’, ‘내가 살아온 것도 하나님 은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한 것도 하나님 은혜다’, 사도 바울이 사무치게 이렇게 외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은혜와 생활의 은혜와 사역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흉내낼 수 없는 고백들입니다. 과거에 포행자요, 핍박자요, 훼방자요, 죄인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문제 삼지 않고 세워주신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라는 것이지요. 그런 바울은 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충성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은혜’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은혜로 새아침을 여는 2019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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