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98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성인군자는 마음을 다스리는 자다

984호 · 2019-01-06

2018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화두(話頭)는 ‘혈기 내면 개망신당하고 망한다.’입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8년, 유독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서 수치를 당하고 패가망신(敗家亡身)은 물론, 선대가 애써서 일궈놓은 기업이 존폐의 위기까지 갔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는 성경 말씀이 그들에게 응한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도 지켜주는 자가 있고, 집도 지켜주는 자가 있고, 가족도 지켜주는 자가 있습니다. 기업도, 생업 터도 지켜주는 자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잠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망의 근원 역시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이기기 힘든 순간적인 감정은 ‘분노’입니다.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성경은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27: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수(漲水)란 강물이 불어서 넘쳐나는 물을 말합니다. 홍수가 났을 때 급류 보셨지요? 그것들은 인정사정 안 봐줍니다. 집이며, 자동차며,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다 쓸어가 버립니다. 남는 게 없다는 겁니다. 순간의 분노가 그동안 가꿔놓은 것들, 애쓰고 힘써 일궈놓은 것들, 공들여놓은 것들을 일순간 앗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입니다. 살인하게 된 원인은 바로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입니다(창4:5~8).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자 화가 나서 동생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동생 아벨은 일찍 세상을 떠난 억울함은 있지만 하나님이 그를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분노하여 살인한 가인은 어찌 되었습니까? 간신히 생명표를 얻어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 되는 꼴이 없이 유리방황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창4:11~12).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칭송하며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잃고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다윗을 쫓다 결국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비명횡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는 자들에게 일찍이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찌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겔21:4~5). 그리고 아울러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고 말씀하심으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위대한 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성인군자야.’라고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제어할 줄 알고 다스릴 줄 아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성인(聖人)의 성(聖)은 성스러울 성, 존경받을 성입니다. 이 글자의 모양새를 보면 귀 이(耳)에 입 구(口)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귀로 듣고 나중에 말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있을 때 버럭 화를 내지 않고 충분히 듣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듣는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요, 이는 인내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의 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조차 맞받아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음을 배워야 합니다. 큰 인물이 되려면, 지도자라면 이렇듯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사도인 바울도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어려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고 탄식하지 않았습니까? ‘아이고, 죽겠다.’ 이런 겁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혈기왕성한 자였습니다. 그 혈기를 빼기까지 40년이나 광야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천하에 온유한 자라는 칭함을 받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을 가던 중, 순간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모세는 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하여 그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고 맙니다. 그 결과로 모세는 그렇게도 그리고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맙니다(신34:1~5).

모세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왜 어려운가 하면, 내 안에 나 아닌 다른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0~21). 나 아닌 내가 내 안에 있어 마음의 풍랑을 일게 하는 것입니다. 그 놈이 바로 더러운 귀신입니다. 가인의 분노를 주장한 영물(靈物)이 있었고, 화를 내는 배후에 악한 세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분노를 삭이는 방법은 다름 아닌 오직 성령 충만 밖에는 없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온유’요, ‘오래 참음’이기 때문입니다(갈5:22~23).

사도 바울은 예수를 뵙기 전에는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었으나(행9:1) 성령이 임하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핍박과 환난과 모함에도 참고 이겨냈고, 항상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 한 그의 편지가 그의 변화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니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자가 됩디다. 제 얼굴에서 사나움이 없어지고, 제 마음에 노가 사라집디다.

여러분, 마음을 다스림은 오래 참음을 뜻하는 것이고, 이는 인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내(忍耐)는 참을 인(忍)과 견딜 내(耐)로 이뤄졌는데, 참을 인(忍)자는 칼 도(刀)와 마음 심(心)으로, 입에 칼을 무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입에 칼을 무는 각오로 참아내는 것입니다. 상사가 뭐라 한다고 버럭 해서 사표 던지고 나오지 말고 인내해보세요. 사표 던져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아내와 싸웠다고 ‘이혼하자’ 그러지 말고 인내해보세요. 나중 ‘잘 참았다’ 할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말 안 듣는다고 화내고 때리지 마세요. 바로 구속됩니다.

자동차에 액셀러레이터가 있는가 하면 브레이크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길에는 반드시 마음을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고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2019년에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그러면 참게 됩니다. 또한 성령 충만함을 입어 대해(大海) 같이 큰마음으로 살아봅시다. 찔려도 표 내지 않는 솜 같은 마음으로 살아봅시다. 그래서 범이 날개를 다는 복을 받읍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할렐루야!

온 천하를 다스리는 자보다

나를 다스리는 자가 더 위대하다

쉬이 분을 내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984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교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