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남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만 하라(갈6:1~7)
여러분, 진리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것입니다. 70평생에 콩 심었는데 팥이 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감나무에서 사과 따는 걸 못 봤고, 장미나무에서 국화가 맺힌 것을 못 봤습니다. 성경에는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6:44). 맞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갈6:7).
그렇다면 질문 드리겠습니다. 저주를 심으면 무엇이 날까요? 미움을 심으면 무엇이 날까요? 말하나마나 저주가 나고 미움이 납니다. 사울이 그 샘플입니다. 사울에게 악신이 임했을 때 다윗이 수금을 타 악신을 쫓아주었습니다. 또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과 이스라엘 민족을 얕잡아 볼 때 다윗이 물맷돌을 들고 나가 골리앗을 물리쳐주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머리털을 뽑아서 신발을 삼아줘도 모자랄 판인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되레 다윗을 시기하여 저주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가 다윗에게 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저주가 오히려 자신과 자녀들에게 임해 사울은 세 아들들과 함께 칼에 죽임을 당했고, 그 시신마저 베임을 당했습니다.
옛말에 ‘남을 저주하려면 무덤을 두 개 파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것도 파야한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109:17~18).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한 하만도 결국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한 장대에 자신이 달렸지 않습니까(에7)?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셈입니다. 또한 히스기야와 여호와 하나님을 저주하고 놀리던 산헤립도 18만 5천명의 군대가 전멸하고, 자신도 그 몸에서 난 자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대하32)?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심으면 무엇이 날까요? 사랑을 심고, 선을 심으면 어떤 열매가 열릴까요? 답은 이미 다 아실 것입니다. 당연히 축복이 나고, 사랑과 선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행해야 할지도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 절대! 남을 저주하지 맙시다. 그저 축복만 합시다. 성경은 절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롬12:17).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하셨고(롬12:21),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마5:44).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롬12:20).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심은 대로 거두는 진리를 안다면 억지로라도 좋게 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이단의 괴수로 모함했을 때도, 제가 안수한 목사가 배신하고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저를 저주하며 떠났을 때도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들이 잘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왜 감정이 없겠습니까만 하나님이 그러라고 하시니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제 잔이 넘치게 하셨고, 반면 그들은 비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케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4~19).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 의해 애굽 땅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는 했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길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그런 그 앞에 그의 형제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럴 때면 대개는 자신의 지난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며 ‘원수 같은 놈들…’ 하며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를 부드득 갈며 ‘이 날을 기다렸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보고 떨 때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창45:5).
스데반도 그랬습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회당에 있던 자들이 거짓증인을 세워 그를 공회에 세우게 됩니다. 그가 거기서도 복음을 전파하니 무리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함께 달려들어 성 밖으로 스데반을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그 때 스데반이 부르짖어 한 말이 이것입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그분은 당장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권세가 있으신 분이었지만, 일개 로마병정에 잡혀 십자가에서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열매가 이 세상에 주렁주렁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산울림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 ‘사랑해’라고 외치면 저 멀리서 ‘사랑해~ 사랑해~’ 하고 여러 번 울려옵니다. 그러나 ‘미워’라고 외치면 ‘미워~ 미워~ 미워~’ 하고 돌아옵니다. 성경에 산울림 법칙에 관한 말씀이 실제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지금 당신 가족에게,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습니까? 그건 당신이 미움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씨 하나를 심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자라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 이 말입니다.
아내를 미워했습니까? 남편이 돈 못 번다고 ‘나가 죽어라’고 저주했습니까? 자식에게, 부모에게, 며느리에게도 그랬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잘못 뿌린 것은 뽑아버리고 이제라도 사랑한다고, 축복한다고 뿌리십시오. 여러분,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겁니다. 저주하면 내 저주가 인생에 쌓이고, 축복하면 축복이 내 인생에 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무조건 축복하는 겁니다. 상사가 사사건건 나를 힘들게 해도 축복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 인생에 축복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상사를 치워주실 것이고, 내가 승진되게 하실 것입니다. 못된 이웃이 있습니까? 그래도 무조건 축복하는 겁니다. 미국에 사는 성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옆집에 사는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부딪쳤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나쁜 놈들’ 하면서 저주를 하니까 믿음 좋은 아내가 ‘그러지 말고 축복하세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왜 그런 나쁜 말을 하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먼저 찾아가 화해를 하고, 축복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그 집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들 녀석이 결혼하게 되어 호텔에서 상견례를 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바로 옆집에 살던 부부의 여식이었다고 합니다. 그 집은 서부 쪽으로 이사해서 아주 성공했는데, 그 집 무남독녀가 바로 며느리 감이 된 겁니다. 두 부부는 집에 돌아와 ‘그 때 화해하길 얼마나 잘했나, 저주했더라면 어찌 되었겠느냐.’며 하나님께 감사했답니다. 그럼요, 좋은 후일을 보고 싶으면 남을 저주하지 말고, 남을 비판하지 말고, 남을 정죄하지도 맙시다. 원수라도 사랑하고, 축복하고, 좋은 것을 주면 사랑이, 축복이, 좋은 것이 흔들어 눌러 넘치게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부터, 지금 당장 아내에게, 남편에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자녀에게도 ‘축복한다’고 하세요. 부모님께도 아낌없이 ‘축복합니다.’ 라고 하세요. 직장 동료나 이웃에게도, 그리고 이웃나라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합시다. 그래야 내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나라에 축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을 선으로 갚아라
남을 저주하려면
무덤을 두 개 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