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
2018년 9월 18일 수도권 교역자세미나 (본부 강의실)
9월 18일, 이태원에 위치한 교회 본부 강의실에서 서울, 인천 및 경기지역의 목회자들을 위한 총회장 목사님의 교육이 있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전도에 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4:4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전1:17)고 말했다. 우리는 전도의 사명을 부여받은 자들이다. 이 목적이 우리의 삶을 이끌 때 피곤치 않고 신바람이 난다. 나는 오늘 영혼구원을 위한 목회자의 행동지침을 말하려고 한다.
첫째, 자기 합리화를 버려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의 무능함이나 나태함, 거짓, 죄악을 변명으로 일관하며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이 속아줘야지! 고름이 살이 되지 않더라. 나쁜 타성을 잘라내고 대신 노력과 열정을 소유해야 성장, 발전할 수 있다(눈이 실족하면 눈을 빼야 하지 않으셨느냐?).
둘째, 혁신(革新)이란 뜻은 잘못된 관행, 습관, 사고방식,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이는 국가, 단체, 교회, 사회의 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는데 뭘 어쩌란 말이야?’ 하는 자세, 잘라버려라. 이는 자기를 퇴보시키고 매장시키는 길일뿐이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세상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다면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자신만이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누가 혁신을 두려워했는가?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예수의 개혁의 외침을 눈 부릅뜨고 반대하며 죽이지 않았느냐? 오늘날 교회, 사회 기득권 세력이 고착된 사고로 일관하고 있으니 교회나 사회가 낙후되고 있는 것 아닌가. 나보다 나은 자, 지금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배척하지 말고 받아들여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배척하는 자는 나 자신을 퇴보시키고 상대를 적으로 만들 뿐이다.
셋째, 진화 속에 평등은 없다. 이는 만고의 진리다. 앞으로 더욱 극심한 양극화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역사적 증거요, 성경도 증거 하지 않느냐.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고,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줬다. 그것이 공평하고 공정한 하나님의 법이다. 그러니 더욱 뛰고 달리고 변화를 두려워 말고 대처하라.
넷째,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대처한 자만 살아남는다. 이는 역사적으로나 동물의 세계를 봐도 입증되지 않는가. 적응하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요즘 고령화 사회와 젊은이의 초스피드 생각에 대처하지 못하는 교회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다섯 째, 지나친 설득은 자신의 이론과 주장을 상대로 하여금 부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리와 복음은 장엄한 선포이기 때문에 지나친 부연설명은 금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올무에 걸릴 수가 있고, 상대를 적으로 만들 수 있다. 마귀와 귀신은 그것을 노린다. 또한 위트는 허용되나 농담은 안 된다. 왜냐면 주의 종이 농담하면 ‘어? 그거 농담이구나.’ 하고 신뢰를 잃게 되는 오류를 낳게 된다.
여섯 째, 기회와 기적, 축복, 지혜의 친구는 준비한 자라 말하더라. 행운 역시 물어보니 실력 있는 자 편에 선다 하더라. 실력은 준비한 자의 자신감이다. 늘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하고, 상대의 마음의 정보를 입수하며 운동함으로 육체도 정비해야 한다(체력이 영력이다).
일곱 째, 성공은 선택과 집중에 있다. 주의 종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행6:4). 또한 양 떼를 돌보는데 집중해야 한다(잠27:23). 유혹이란 집중력이 떨어질 때 나는 사고다. 유혹을 이기는 것이 인격의 척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덟 째, 맛없는 스프가 뜨겁기만 하면 누가 먹겠는가? 설교, 능력, 지식, 인격도 못 갖춘 자가 화만 내고 막말이나 하는 그런 목자들에게 누가 가겠냐. 야단만 치는 무식한 아빠보다 사랑과 이해로 보듬어주는 엄마 같은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특별히 사람에게 인기 있는 주의 종은 아침 안개 같은 존재다. 하나님께 인기가 있어야 한다. 존경을 받는 자는 상대를 감동시키며 말 뿐이 아니라 분명한 업적이 결과로 나타나는 자다.
아홉 째,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살리는 것이 명의다. 외모를 보지 말고, 빈부귀천, 죄인, 의인을 가리지 말고 살리는 것이 명의다. 명의는 진맥 후에 일침으로 다스리듯 주의 종들은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그 영혼을 살리는 영적 명의가 돼야 한다.
열 번째, 사람을 얻어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꿀을 얻겠다면서 벌통을 발로 차면 되겠느냐? 배운 자나 능력 있는 자일수록 감정을 건드리지 말고 감동을 시켜야 목숨을 걸고 돕는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목숨까지 거는 것이다.
열한 번째, 이타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내가 먼저 성장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과일을 많이 맺는 나무를 생각해라. 아래위로 무제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이기주의 같지만 결국 과일을 많이 맺어 남에게 주지 않느냐? 이기주의를 주창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주려면 내가 먼저 힘이 있고 능력과 지식과 건강, 부귀가 있어야 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불이 붙어야 남에게 불을 붙일 수 있다.
열두 번째,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려면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라.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얻을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자들을 보라. 다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여 성취한 자들이 아닌가. 하나님은 그런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런 자들을 도우시고, 그런 자를 찾고 계신다.
열세 번째, 스마트 시대의 장점을 이용해야 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교구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다. 주소입력, 사진입력, 영상통화로 얼마든지 심방이 가능하다. 이것 역시 변화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부흥보다 영혼구원이 목적이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리라’(마6:33). 이 뜻을 알아야 한다. 이는 먹고 입고 마시는 것, 필요한 모든 것 다 준다는 뜻이다. 그러니 정신적 나태함을 버리고 변화를 두려워 말고 능력 받아서 전도하는 기쁨으로 살아보자.”
교육 후 맛있는 햄버거로 교제도 겸한 귀한 교육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