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매주 왕복 세 시간 가량을 도로에서 보내야한다. 건강할 때는 세 시간이라는 시간이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피곤한 날이면 주일에 세 시간 이상을 도로 위에서 견디면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힘에 겨울 때가 많았다. 차선이라 생각하고 인터넷으로 주일예배를 드리다보니 참으로 편했다. 그러나 가끔씩 스마트폰을 통하여 영상 예배를 드리다 보면 ‘그래도 주일날 주님의 전으로 나가야 하는데….’라는 막연한 자책감이 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이면 사업상 또는 여행으로 서울을 비우는 시간이 잦아졌고, 때로는 육체의 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다보니 충분히 교회를 나갈 수 있음에도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는 했다. 기도를 할 때마다 주일 교회에 출석을 하라는 성령의 말씀을 들었고, 영상예배를 드릴 때마다 들려오는 목사님의 메시지에서도 주일은 빠지지 말라는 말씀을 여러 번 접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용감하게 사업상 출장이라는 명목을 대면서 해외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발 한 달 전부터 주님께서는 성경말씀과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주일예배의 중요성을 시시때때로 알려주셨건만 ‘그곳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옳지 않은 길로 나아갈 때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지켜주셨던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손등 위에 빨간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 어떠랴?’라는 마음으로 5시간 비행을 마친 후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다리에도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온 몸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밤에는 극심한 내출혈까지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님, 지팡이로 나를 툭툭 치시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셨는데, 끝내 나의 뜻대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막대기로 드디어 나를 치시는군요.’라는 생각이 스치듯이 들었다. 한국에서 연락을 받은 의사 선생님의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와 가족들의 걱정과 염려를 뒤로하고 고통의 밤을 회개기도를 하면서 날을 새웠다. 타국에서의 기도와 회개로 나는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귀국길에서 심중에 들려온 성경 말씀이 시편 23편 말씀이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는도다.”
주님은 나를 죽이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셨다. 나로 하여금 올바른 신앙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것이 참 목적이셨다. 그 이후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교회 출석을 못하는 경우에는 집 앞 교회에라도 나가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 교회 영상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 더 견고하고 튼튼해진 주님의 양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의 지팡이로 인해 주님이 주신 푸른 초장 위를 건강하게 거닐고 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진실로 감사드리며 필요에 따라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오자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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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없는 동행
두 사람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같은 방향으로 가고는 있으나 그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방향만 같을 뿐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나님과의 동행, 주님과의 동행이라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그분의 뜻 아래 나를 인도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분과의 대화가 없다면, 나는 과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방향만 같은 발걸음일 뿐일까?
대화가 없는 동행은 동행이 아니다. 방향이 같더라도 서로에게 어색한 발걸음일 뿐, 결국 속도의 차이를 두고 싶게 된다. 반면, 대화가 있는 동행은, 특히 그 대화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끊임없고,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위로 받을 수 있는 대화라면 정말 행복한 동행일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 예수님의 은혜로 이제는 그 대화가 꼭 특정한 형식일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형편에 따라 또는 기도의 목적에 따라 말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될 수도 있고, 방언이나 글, 찬양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속삭임이나 울음, 한숨 섞인 탄식이 될 수도 있다. 형태는 다르더라도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전하는 것. 서로의 마음이 닿을 때 거기서 교감과 공감이, 사랑이 나오기 때문이다.
날씨가 화창할 때 하나님께 말한다. 오늘처럼 좋은 날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비가 내려 하늘이 어두울 땐 오늘은 왠지 기분이 꿀꿀한데 하나님 기분은 어떠시냐고 묻는다. 길을 걷다가,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가,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도 문득문득 하나님께 말을 건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을 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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