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와 나
쇠똥구리의 생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쇠똥을 굴리는 일에 열일 한다. 경단을 빚어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부리나케 찾은 것이 소 똥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잠시 쉴 틈 없이 똥을 찾고 곧장 경단을 빚어 또 어디론가 굴려 가는데 앞발을 땅에 대고 뒷발로 굴려가니 앞도 보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땅만 보고 무턱대고 뒤로 가는 삶. 낭떠러지가 있다면 떨어질 것이고 천적이 기다리고 있다면 잡혀 먹히는 삶. 그리고 알 낳고 또 경단 굴리고 잠시의 틈도 없이. 우리네 삶은 뭐 다른가 싶어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먹을 것, 입을 것 찾아 분주한 우리네 삶. 쇠똥구리와 무엇 다를까?
그러니 어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겠으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어찌 깨끗하다고 하겠는가? 비록 달이라도 하나님에게는 밝은 것이 아니며, 별들마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청명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욥25:4~6)?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마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사41:14).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롬8: 30).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우리네 삶에 주님이 함께 하시니 벌레 같은 나를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구속하여 주시니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만 믿고 의지합니다.’ 아멘!
이광주 전도사
leekjlkj@naver.com
하나님과 인자 (빌립보서 2:5~8)
하나님의 아들이 왜 인자가 되셨는가? 흑암은 무엇이며 인간은 왜 그의 모양인가?
하나님 아버지는 품속의 아들을 사랑하사 그를 위해 우편보좌를 지으셨고(히1:2,8),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 됨을 취하지 않고 자기를 낮추되 종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되어 죽기까지 순종하고 하늘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하셨으니(빌2:5~11), 인자의 출생과 죽음과 부활의 처소로서 우주를 만들고, 이 우주 안에 주의 뜻을 이루려고 출생과 죽음이 있는 인간을 만드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지만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 하는 위계를 인정하시고 겸억하여 자기를 한없이 낮추고 아버지를 높이신 자신을 인자라 하셨다(요14:28).
보좌의 기초는 의요, 의는 하나님이 가장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는 인자의 마음이니, 곧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출생을 맛보고 고난을 겪다가 마침내 죽기까지 순종하며 섬기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시89:14, 빌2:5~8).
하나님의 아들은 인자로서 가장 낮은 곳으로 물과 같이 임하시기 위하여 인자가 출생하실 그릇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범죄 한 이후에는 부득불 피 흘리는 직분으로 기름부음 받아 오시게 되었다(히10:5~18). 그래서 예수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이 진리를 성령이 증거 하신다 했다(요일5:5~8). 그러므로 인간은 인자되시는 이의 도구로 지음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모름지기 인간은 예수로만 살도록 조직되었다(요15:4~7).
예수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한 것은, 예수는 인자가 되려 했지만 아버지는 그리스도가 되게 하여 죽임 당하도록 보내셨음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물로 임하셔서 인자가 되심으로써 아버지를 지극히 높이고자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겸손이다. 마귀는 교만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벧전5:5~6). 인간이 우상처럼 여기는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지식은 거만하게 하고 능력은 자만하게 한다. 이를 통틀어 오만이라 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하나님의 아들을 인자라고 믿고 인자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어야 참 신앙이다. 이슬람교도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천주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라 하여 예수를 마리아의 품에 둔다. 인자를 알고 믿으므로 하나님 아들의 권세가 있고, 세상 신들을 다스릴 권능이 따른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5:5).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의 길을 택하심은 아버지를 향하신 아들의 참 마음이니 우리 영혼 또한 인자의 겸손과 순종의 영감을 가짐으로 하나님을 모신 보좌로 기능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인자는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으시고(히2:9) 출생과 죽음을 맛보셨으니, 우주는 그가 출생하고 죽음과 부활할 영적기능을 위함이요, 사람을 자기의 모양으로 만드심은 그에게서 출생하려 하심이니 만물이 주로 말미암는다
(롬11:36). 그러므로 인생은 겸손하신 인자의 첩경이라(미5:2), 출생을 기뻐하며 축복을 받아 마땅하다(창3:15~16).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인자의 마음 때문에 인생이 지음을 받았으니 폐일언하고 인생은(롬5:14) 하나님과 주님 앞에서 더욱 겸손함이 마땅하다(벧전5:5~6). 마귀는 스스로 속아 교만이 그의 속성이 되었다. 마귀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거역했고 이 땅에 임하신 인자를 시험함으로써 스스로 망하고 말았다(눅10:17~20). 겸손한 자가 마귀를 이김은 빛이 어두움을 이기고 생명이 사망을 이김과 같다. 마귀의 속성을 그대로 행하는 불신앙과 귀신들은 마귀와 함께 영원한 형벌에 던져질 것이지만, 인자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그를 영접하고 따르는 자들은 첫째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요(계20:4~6),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인자와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할 것이다(계22:1~5).
박덕규 목사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것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다. 항상 내 것보다 타인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내가 가지지 못했는데 타인은 가지고 있는 것만 보이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나 다 비슷하다.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내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만, 남의 것이 늘 커 보이니 마음을 다잡고 감사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바로 아이를 가져서 지금은 13개월 공주님의 엄마가 된 친구였다. 한 사람은 사회생활로, 다른 한 사람은 육아로 서로 바빠서 매번 만나자는 연락만 하다가 어찌어찌 짬을 내어 만나게 되었다. 친구네 집 앞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로 바쁜 가운데에서도 때마다 짬을 내어 여행을 다니고, 업무 차 제주도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내 일과를 듣던 친구는 문득 부럽다는 말을 하며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놀러가자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며 또 다시 하하호호 웃다가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 친구의 아이가 커가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학생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인 졸업논문이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먹고 사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졸업논문은 계속 차순위로 밀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졸업논문을 준비하던 친구가 졸업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진심으로 함께 축하하며 기뻐했는데, 문득 그 친구의 졸업이 너무 부러웠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를 보면 아이가 부럽고, 논문 통과한 친구를 보면 졸업이 부럽고…. 친구들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고 말았다. 괜스레 조급해지는 마음에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면서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인 양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가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마음을 추슬러 기도를 하는데, 왜 감사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로마서 12장의 말씀을 되짚어 읽어보았다.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가정의 축복과 직업의 축복을 받았다. 공부와 일에 매진해도 한없이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고, 졸업이 급해 생활비를 쪼개가며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다. 온 나라가 불경기이고 사업장 앞의 대형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이 되어 주변 학원들이 다 문을 닫지만, 내가 운영하는 학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번성하고 있다. 내가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감사하지 못했는지, 왜 감사하지 못해서 가족들을 괴롭게 했는지 후회스러웠다.
이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에게 주어진 분복에 감사하며 내 길을 즐겁게 가야겠다.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 가장 합당한 나의 모습이라 믿는다.
전훈지 집사
ppjee@hanmail.net
만약에 악보에 쉼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부르고 있는 노래를 숨이 차서 제대로 부를 수가 없을 것이며, 연주자들도 체력이 고갈되어 마침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우매한 인생들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쉼표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을 향하여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쉬지 않고 날개 짓을 하며 죽음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쁘고 분주합니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 아무리 힘차게 달려가더라도 하나님께서 부르면 가야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바쁜 일에 쫓겨서 중요한 일을 놓치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안락한 노후를 기대하여 열심히 달려가지만 ‘고생이 끝나면 죽는다.’는 선친들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자입니다. 노후를 준비하는 일보다 사후의 영원한 세상을 준비하는 자가 참으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우리 인생 길어야 100년이지만 죽은 뒤의 세상은 끝이 없는 영원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세상에는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오면 참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에 쉼표를 찍어주시고 아름다운 찬송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
50세의 A씨는 수개월간 지속되는 소화불량과 복부팽만, 트림의 증상이 있어 내시경 검사를 받고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위축성 위염이란 위염이 반복되어 염증이 점막층 깊은 부위까지 침범하여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위선이 파괴되고, 위벽이 하얗게 얇아지며 소화가 잘 안 되는 질환이다.
장상피화생은 위축성 위염이 악화되면서 정상적인 위장점막세포 대신 비정상적으로 소장이나 대장점막세포로 대체된 것이다. 소화액을 분비하는 샘이 없어지고, 색깔도 회백색으로 바뀌며 작은 돌기가 생기기도 한다. 두 가지 모두 헬리코박터균과 관련이 깊다. 오랜 기간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어 있으면 위장 점막이 만성적 염증을 일으키고 이것이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의 과정을 거쳐 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을 걱정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이것이 꼭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우선 위암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질환이 아니다. 병원에서 위암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적어도 수년 전부터 이미 암은 시작된 것이다.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은 모두 위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소견이 있지만 이는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나타날 수 있는 노화 과정의 하나이기도 하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에서 위축성 위염을 거쳐 장상피화생까지 진행되려면 수십 년이 소요된다.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은 내시경을 통해 의사가 눈으로 진단한다. 비관적인 의사는 흔적만 보여도 암을 일으키는 소견이 있다며 겁을 주는 반면, 낙관적인 의사는 그 정도는 그 연령대의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말해줄 것이다. 이처럼 의사의 주관이 상당 부분 관여한다.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을 지니고 있으면 없는 사람보다 위암 발생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장상피화생의 경우 위암발생률이 10배나 높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일단 장상피화생은 30대의 10%, 70대 이상인 경우 40%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한 소견이다. 조사에 의하면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이 있는 사람은 많아야 50명중 1명꼴로 위암이 생긴다. 그러나 이들 소견이 있음에도 50명 가운데 49명은 위암 없이 여생을 산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1명도 내시경을 통해 일찍 발견하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Dr. 조희경 집사
pearl9230@naver.com
메모의 비밀
모든 국민을 남과 여, 집주인과 세입자, 이렇게 두 분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르게 구분할 수 있는 한 방법이 있는데, 이는 바로 메모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늘 메모를 하지만, 메모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메모를 하지 않는다. 왜 사람마다 이런 차이가 생길까?
메모는 기록이고 자신의 기억을 돕기 위해 짤막하게 글로 남기는 행위이다. 그럼 왜 기억을 돕기 위해 메모를 할까? 메모를 한다는 의미는 이 메모를 나중에 필요시 다시 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본다는 의미는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바로 ‘나는 이 메모를 통해, 이 기록의 행위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면의 의지 표출이 담겨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본인 스스로가 성장하고 발전하고자 애쓰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메모를 하게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세미나에 참석할 때나 같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늘 하고, 하지 않는 사람은 늘 하지 않는다. 물론 메모의 필요성에 대해,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했거나 자신의 기억력에 자신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메모를 시작해야 한다. 종이 노트든 핸드폰 메모 어플이든 기록할 수 있는 아무 것이라도 좋다. 기록의 행위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떠올리게 되고, 내 생각을 정리할 힘을 얻으며,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는, 차곡차곡 쌓이는 데이터 확보의 도구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시작해보자. 목사님 말씀처럼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무서운 것은 메모하는 사람은 메모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모모한 잉크가 낫다. 이제 펜을 들자.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