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배의 복을 받으려면 한 눈 팔지 마라
‘인생은 B와 D 사이에 있는 C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 삶은 출생(Birth)과 사망(Death) 사이의 선택(Choice)으로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선택만 잘했다고 인생이 성공할까요? 아닙니다. 선택된 것에 집중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마19:30)는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루는 비결은 바로 ‘집중’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과 삼시에, 그리고 육시와 구시, 심지어 십일시에 들어와 일한 사람도 일을 마치고 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아침부터 일한 자가 주인에게 불평을 합니다. “쟤들은 늦게 왔지 않느냐? 그런데 왜 같은 돈을 주느냐?”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했고, 주었는데 무슨 말이 많은가? 저 사람의 품삯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니 참견마라.”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아침에 일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공치는 겁니다. 공치는 줄 알고 상심해 있었는데 삼시에 불러주니, 더욱이 육시와 구시에, 심지어 십일시에도 불러주니 일꾼들이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래서 일을 정말 열심히 했을 겁니다. 일에 집중하고 몰두했을 테니 아침에 들어온 자만큼, 아니 그 이상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돈을 아끼지 않고 동일하게 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도 어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최고가 되려면 일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들 합니다. 하나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방울도 계속 같은 자리에 집중적으로 떨어지면 바위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말이니 사업이든, 공부든, 정치든, 기술이든 한 눈 팔지 않고 그것에 집중하면 성공 못할 게 없다는 겁니다.
왜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는지 압니까? 이것저것 간섭하고, 이 소리 저 소리 다 듣고, 이것 조금하다 저것 조금하다 그랬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선택한 것에 집중, 올인(All-in) 했습니다. 귀는 막고, 눈만 뜨고 그것에 몰두한 사람들입니다. 자고로 개는 짖어야 하는 것이고, 비평가는 비평해야 하고, 평론가는 평론해야 하는 것인데, 그 소리 다 들으면 어찌 집중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열두 가지 재주 가진 놈 끼니 간 데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사막에서도 집중적으로 깊게 파보세요. 어디서든 물이 나오는 겁니다. 파다 말다 하니까 건수만 나오다 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이 파는 우물마다 다 샘이 터진 것은 집중적으로 깊이 우물을 팠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올 때까지 우물 파는 것에 집중했기에 그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4장에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씨를 길 가에 뿌려서 새들이 쪼아 먹어버렸고, 어떤 사람은 돌짝밭에 뿌려 바로 말라 죽었고, 어떤 사람은 가시떨기에 뿌렸다고 합니다. 길 가에 뿌린 자는 대충 씨를 뿌린 자요, 후자는 환난이나 핍박, 이 소리 저 소리에 넘어진 자요, 가시떨기에 뿌린 자는 세상의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흔들린 자니, 그들의 공통점은 다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거둘 것은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선택한 것에 집중하십시오. 몰두하십시오. 대충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십시오. 햇볕에 돋보기를 대고 오래 있으면 검은색종이에 불이 붙습니다. 아무리 아름드리나무라도 한 곳을 집중해서 도끼질하면 언젠가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성공하고 싶습니까? 어떤 분야에 일인자가 되고 싶습니까? 집중하십시오. 될 때까지, 이룰 때까지!
신앙에 성공하는 것도 집중력에 달려 있습니다.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잡다한 생각 없이 예배에 집중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요4:24),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은 집중된 기도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마6:7).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고 한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자들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더는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4:26). 이들을 다 원수처럼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연을 끊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더욱 주님께만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누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가 잠깐 가족과 인사를 나누겠다고 예수님께 고하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고 매몰차게 말씀하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에도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9:60)고 하셨습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대업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종은 세상 것이나 가정 일에 마음을 나누지 말고 오직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에 전무하라는 메시지도 내포되어 있습니다(행6:4).
주를 따라 가는 길이 ‘좁은 길’(마7:13)이라고 말씀하신 것 역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보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 너른 길, 평안한 길이 있어 늘 우리를 유혹하고, 흔들리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해야 그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이는 경주자는 오직 경주에 주의를 집중할 것을 강조한 것으로, 그는 오직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히12:1)만을 바라보고 경주하겠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주실 상을 위해서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 집중시키고 천국을 향하여 전진하면 사도 바울처럼 당당히 면류관과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저는 8월에 있을 베트남 집회를 기점으로 동남아시아 선교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제 마음 속에는 온통 이 꿈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이 일에 집중하면 반드시 남미를 복음화 했던 것처럼, 구소련지역을 복음화 했던 것처럼, 동남아시아 일대를 복음화 할 수 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여러분 앞에 두셨습니다(신30:15). 이것은 당신 마음에 달렸습니다. 무엇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4)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중(集中)이란 마음과 생각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 표현으로 하자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가정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영혼이 잘 되고 싶다면 그것에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욥8:7). 할렐루야!
열두 가지 재주 가진 놈이
끼니가 간 곳 없는 법이다
세계와 싸워 이기려면
먼저 너와 싸워 이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