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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신앙과 삶의 개혁을 이루자(롬9:1~24)

955호 · 2018-06-17

6월 1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출마자들이 하나같이 외쳤던 구호는 ‘이대로는 안 된다.’, ‘바꿔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뽑아주면 좋은 세상, 좋은 나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개혁이나 혁신을 주장한 것입니다. 제발 당선자들이 자신들의 선거공약을 잘 이행해서 아름다운 세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개혁(改革)이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관행, 잘못된 환경, 잘못된 습관을 깨는 것입니다. 이는 혁신(革新)이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혁신이 뭡니까? 가죽을 벗기는 변화입니다. 대변혁입니다. 묵은 풍속, 잘못된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 옆 사택에서 생활하던 목사님 내외가 어느 날 대판 싸웠습니다. 목사님은 홧김에 옆에 있던 놋요강을 밖으로 던졌습니다. 마침 그 놋요강은 교회를 두루 살피던 한 대장장이 장로의 눈에 뜨였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의 생신이 되어 사택에 온 장로는 목사님께 보자기에 싼 놋그릇을 내놓았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너무 귀한 것을 보고 반색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장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얼마 전 이 근처에서 놋요강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련해서 이렇게 밥그릇, 국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이 말에 목사님 내외는 낯이 붉어졌답니다. 이것이 개혁이요, 혁신입니다.

500년 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이뤘습니다. 당시 유럽은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지만 신앙은 땅에 떨어지고 오직 겉모습과 형식의 신앙만 남아 있었습니다. 1517년 루터가 분연히 일어나서 종교개혁의 불을 점화시켰습니다. 루터의 가슴에 개혁의 불을 당긴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베드로 사원을 짓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그 방편으로 교회가 면죄부를 판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면죄부를 사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하여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는 종교개혁을 실행했습니다. 그는 면죄부가 옳지 않다는 뜻으로, 면죄부에 관한 95개 조항에 대한 질의서를 1517년 10월 31일 비텐부르크 정문에 계시합니다. 여기에서 개혁의 불길이 온 유럽을 덮게 되었습니다. 이 개혁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오늘의 기독교는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딱 한 번 ‘개혁’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9:9~10).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의해 제사제도가 있었습니다. 제사는 회막이나 성전에서 드려졌습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으며, 성소에는 등대와 상, 진설병이 놓여있고, 지성소에는 향로와 언약궤가 있습니다. 성소에서는 필요에 따라 제사장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으나 지성소에는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약의 제사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서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불완전한 규례들과 의식들로는 우리의 더러운 죄를 온전히 사할 수 없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보내사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도록 개혁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그 하나님은 우리도 개혁하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잘못된 습관을 잘라버리고 새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살다보면 어느덧 세상풍조를 따라가고 세상에 휩싸여 살게 됩니다. 오죽하면 대 사도인 바울도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1~24)라고 한탄을 했겠습니까?

여러분, 새 사람을 입으려면 옛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이 지녔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새사람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애벌레가 고치를 버려야 나비로 변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개혁이나 혁신이 가죽을 송두리째 벗겨내는 아픔이 있듯, 애벌레가 고치를 벗기 위해 애쓰고 힘쓰듯 옛사람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기에 애써야 합니다. 그래도 썩어져가는 구습을 버려야 함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47). 이러한 결단이 있어야 개혁을 할 수 있습니다.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등, 과거의 인습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새사람이 됩니다.

이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가능합니다. 옛 성품을 죽이고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는 길은 인격수양으로 되는 게 아니라 오직 성령충만을 입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이룰 수 있고,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요3:7). 그러면 산 위의 동네가 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개혁입니다.

여러분,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의 대상이 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버림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이 개혁을 하겠다고 미국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들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세계로부터 격리되고 무너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의 삼성이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라는 마음으로 개혁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닙니까?

개혁해야 합니다. 혁신운동이 내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을 잘라내고, 부정적이고 나태한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잘못된 습관이 당신을 실패자로, 낙오자로 만들 것이고, 당신의 미지근한 신앙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토하게 만들 것입니다.

개혁은 입에 칼을 물고하는 것입니다.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지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실행합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할렐루야!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의 대상이 된다

환자에겐 위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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