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950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작은 일에 충성하라

950호 · 2018-05-13
오늘의 메세지

시카고 근교의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찬드라 세카르 박사는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겨울 방학동안 물리학 특강을 부탁받고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 측에서 등록 인원이 두 명 밖에 없어서 강의를 취소해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박사는 두 명도 상관없으니 강의를 하겠다고 하여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도 빠짐없이 강의를 했다. 강의를 받은 중국계 미국인 리정다오와 양전닝 두 사람은 195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상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는 찬드라 세카르 박사님의 열정적인 강의 덕분이었습니다.” 고작 두 명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박사의 결과이다.

“큰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 답은 이렇다.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간단한 진리이지만 위인들은 모두 이 원칙을 지켰다. 목동으로서 충성했던 다윗은 훗날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25년, 야곱은 20년, 요셉은 13년의 세월을 인내로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우리 목사님도 한사람을 놓고 온 열정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시더니 33년 만에 전국과 전 세계 70개국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나가고 계시지 않는가. 그리고 9차에 걸친 평화통일 기도성회는 4·27 남북 정상들의 만남을 통해 종전 선언과 함께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평화통일의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이것은 진정 작은 것에 충성하는 우리 교단과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다(마25:21).

이렇게 삶의 위대함은 언제나 작은 일에서 출발한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큰 그림

전 세계로 생중계된 남북 두 정상의 극적인 만남은 그 자체로 흥분과 감동이었다. 이는 평화통일을 향한 순항의 메시지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와 주변 열강들의 통치권자들을 향한 기도가 절실한 때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권세자들을 세우신, 최상위의 권세자이신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권세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롬13:1). 통치권자들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딤전2:1~2). 하나님께선 그 분의 은혜로 역사와 세상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추시는 빛! 다 거두지 아니하시고 타락한 세상에 남겨두신 ‘일반 은총’이 있기에, 법질서, 정부, 권세가 유지된다. 인과관계의 상식이 적용되는 일반 은총의 세상에서는 악인들도 잠시 형통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그 은총을 거두시면 종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특별 은총’이다. 멸망 받아 마땅한 진노의 자녀들을 극적으로 구속하신 새로운 변수, 예수 그리스도!! 이 구원하는 은총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었다. 특별 은총의 세계는 세속적 가치가 전복되고, 역설적 진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죽어야 살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말이다. 전 세계 유일무이한 분단국가로서의 긴장, 상처, 희생은 있었으나, 이로 인해 남한 땅은 뜨겁게 기도하는 영적 민족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의 기도가 결실을 맺어, 그 특별한 은총이 북녘 땅에 임할 때이다.

우리 민족은 20세기 초, 전 세계 영적 부흥운동의 물꼬를 튼 주인공이었다. 원산 부흥운동(1903), 평양 대부흥운동(1907), 백만인 구령운동(1909)으로 이어지는 영적 대부흥 운동의 자부심이 있는 민족이다. 하나님은 역사에 등장했던 탐욕의 제국들을 모조리 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 열강 속의 작은 민족 하나를 선택하셨고 결국 그 뜻을 성취하셨다. 북녘 땅의 영혼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멈추지 않는 그 열정, 그 큰 그림이 이 한반도 땅에도 다시 한 번 속히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기도한다.

송직화 목사

jesus_allinall@hanmail.net

청춘, 아름다운 그 이름

꼰대의 배려

예전 저희 팀에 대학을 막 졸업한 아이가 인턴으로 들어왔습니다. 저 역시 취업난을 겪었던 세대인지라 그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저만의 방식으로 신경을 써주곤 했습니다. 하루는 대표님과의 저녁식사가 잡혔는데 문득 저의 인턴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늘 윗분들과의 자리가 불편하고 곤욕스러웠습니다. 추억과 무용담이 오가는 자리에서 갓 들어온 저는 그 대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모르는 내용에 맞장구칠 넉살도 없어서 어색하게 겉돌 뿐이었습니다. 저희 팀 인턴에게는 그런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분명 우리만 아는, 우리에게만 재미있는 얘기들이 오갈 테니. 그래서 그녀에게 억지로 회식에 갈 필요 없다고,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건 제가 인턴이었을 때 선배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회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녀의 직속 사수였던 저의 동료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식에 참석하라고 했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동료지만 그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화도 조금 났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그 동료가 인턴 친구를 억지로 회식 자리에 가게 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턴일 때 취업이 간절해서 대표님이나 윗분들에게 얼굴도장이라도 찍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같은 팀 선배들은 그를 회식에 데려가지 않았고 그게 속상했다고요. 그래서 자기 밑에 들어온 인턴에게는 작은 기회일지라도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대표님과 함께하는 회식에 꼭 참석하게 했다는 거지요. 꼰대라고 생각했던 그의 행동도 배려의 하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과거를 되돌아보니 저를 회식에 데리고 갔던 선배들 역시 어쩌면 저런 좋은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듣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역지사지는 ‘내가 만약에 그 사람이라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내 경험, 내 생각, 내 환경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나라면 저렇게 말하지 않을 텐데’, ‘나라면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저와 제 직장 동료가 인턴에게 했던 행동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똑같이 좋은 마음에서 시작한 배려인데, 행동은 정반대입니다. 그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저는 그를 꼰대라고 결론지었을 거고, 그는 저를 아랫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왜 저렇게 행동하지? 왜 저렇게 말하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대화하다 보면 의외로 내게 상처를 줬던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너무나 다르지요. 말하는 방식뿐만이 아니라 배려하는 방식, 친근함을 표현하는 방식, 위로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 다른 방식에서 때론 오해가 발생하지요. 그 오해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신은혜

dopal0203@naver.com

From Internet

어느 멋진 유언장

상속자가 없는 미국의 한 노인이 죽기 전 변호사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새벽 4시에 장례를 치러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유서 한 통을 남기며 장례식이 끝나면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뜯어달라 부탁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뜨고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새벽 4시에 치러진 장례식엔 불과 네 사람만 참석했습니다. 이미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단 네 사람만이 장례식을 경건하게 치렀습니다.

드디어 변호사는 유서를 뜯어 읽었습니다. “나의 전 재산인 40만 달러를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유서의 내용이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네 사람은 10만 달러나 되는 많은 유산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유산으로 고인의 이름을 딴 도서관과 고아원을 건립하여 친구에게 보답했습니다.

당신이라면 과연 그 장례식에 참석하셨겠습니까?

탐방 소식

지혜의 샘터를 찾아

지난 주일예배 후에 ‘지혜의 샘터’를 찾았다. 지혜의 샘터는 염상섭 장로가 경영하는 볼펜제작회사이다. 이 지혜의 샘터가 최근 확장이전을 해서 총회장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다.

염상섭 장로는 현재 3부 성가대장을 맡아 충성봉사하고 있다. 볼펜에 관하여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그는 오직 기도와 열정으로 오늘의 사업을 일궜다. 단돈 천원이 없어 울었던 가난을 딛고 오늘날 명품 볼펜을 제작하는 명실 공히 세계적인 볼펜회사가 된 것이다.

염상섭 장로는 목사님의 말씀에 ‘아니요’가 없다. 부도직전에 이르렀을 때 성가대장 직분을 내려놓고 싶었으나 목사님의 ‘계속하라’는 말씀을 듣고는 어려운 가운데도 성가대장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했다. 또한 구아나사가 와서 입이 돌아갔었는데 그 와중에도 목사님이 기도원 집회에 단에 올라 간증을 하라고 했을 때 하나님과 목사님께 누가 된다며 사양했지만, 목사님이 간증하면 하나님이 네 입을 돌려놔주실 거라고 말씀하자 그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단에 올라 간증을 했다. 그 후 그의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목사님은 이 날 “세상을 살아가는데, 또한 사업을 하는데 지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데 그 지혜가 어디서 오느냐 하면 바로 정직함에서 온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에게 완전한 지혜를 주신다고 했다. 사업을 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정직하면 하나님이 네게 지혜를 주실 것이다. 물건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정직과 진실을 파는 기업이 되라. 또한 사람은 자고로 의리가 있어야 한다. 돈 몇 푼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는 자가 되지 마라. 히브리서 3장 14절 말씀처럼 처음 것을 끝까지 잡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만큼 사업체가 커졌으니 이제는 남도 배려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라. 직원들의 복지에도 신경을 써서 진정 하나님의 사람임을 나타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못하시는 게 하나 있다. 거짓말이다. 그래서 그분은 약속을 기업으로 주셨고, 당신 스스로 맹세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 우선으로 살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약속대로 그 말씀이 염상섭 장로에게 이루어진 것이다. 어디 염상섭 장로에게 뿐이랴. 이를 행하는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이뤄질 것이다.

부디 지혜의 샘터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업.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기업이 되기를 바란다,

“종이 왔다간 자국이 남게 하소서.” 목사님이 이 기도가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기자 신묘수

jesus7857@gmail.com

신앙에세이

당황하셨나요?

못 마친 학업을 위해 결혼 직후 첫 직장을 퇴사하고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입사한 두 번째 직장은 꽤 괜찮았다. 급여가 그리 높진 않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흔하지 않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칼퇴근도 가능했고 집에서도 가까웠다.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던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다 이직한 세 번째 직장은 더욱 괜찮았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물질이 더 필요했는데 급여가 높아져 딱 알맞았다.

옮기는 직장마다 더 좋은 곳을 경험하니 나중에는 욕심이 생겼다. ‘이번엔 하나님께서 신의 직장을 주시리라!’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이직을 위해 야심차게 퇴사를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빨리 직장이 구해지지 않아 금식기도도 했고, 때마침 기도원 집회기간이어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참석하여 작정기도도 했다. 역시나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결국 오라는 곳이 나타났다.

그렇게 기도 응답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신의 직장을 기대하며 네 번째 직장에 들어왔는데…. 지옥을 경험했다고 해야 하나? 많이 당황했다. 아니 기도 응답을 받고 왔는데 어찌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있단 말인가! 너무 괴로워서 기도하면 눈물만 났고, 한숨만 절로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전 세 번째 직장에 다시 돌아와 감사함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 내 인생 최악의 직장이 금식기도와 작정기도, 그리고 예배 때 받은 응답으로 들어간 곳이어서 정말 많이 당황했었는데, 지금에야 돌이켜보며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을 주실 때는 당시 내가 원하는 응답보다 내게 필요한 응답을 먼저 주심을, 그리고 그 다음에 더 좋은 것을 허락하심을.

만약 지금의 내가 이전에 ‘기도하고 받은 응답대로 행동했는데 도대체 왜 이러지?’라고 당황하며 번민하고 있던 과거의 나에게 격려 한마디 전해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그렇게 보이진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잘 되고 있으니 너무 낙심 말고 조금만 더 힘내서 버티라고.

박찬영

post.naver.com/imsofr

95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객원컬럼
성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