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進退兩難)의 기적(출14:10~31)
진퇴양난(進退兩難), 사면초가(四面楚歌), 풍전등화(風前燈火), 속수무책(束手無策)
…, 이런 말들을 들어보셨지요? 이 말들을 한 마디로 말하면 ‘아이고, 죽겠다’, ‘어떡하나~’입니다.
살다보면 이럴 때 있습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해결책이 없는 경우, 바람 앞에 촛불 같이 아슬아슬한 상태, 전혀 대책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떡하셨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 이런 상황이 닥쳤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의기양양하게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애굽을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변심한 바로의 군대가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추격해오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도망했으나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파도가 넘실대는 홍해였습니다. 그야말로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하고, 절망은 원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냥 애굽에서 살게 놔주지….’ 이랬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손가락질 할 것 없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우리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러실 수 있나.’ 우리도 이랬습니다.
그러나 그것 아십니까? 진퇴양난이란 앞으로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지만, 위로는 갈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즉 하늘과 통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절호의 찬스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모세의 말인즉 문제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출14:15). 그랬더니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건지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미니 홍해의 물이 갈라져 벽처럼 세워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지처럼 홍해를 건넜습니다. 다 건넌 후에 모세가 다시 손을 내미니 갈라졌던 물이 하나 되어 홍해를 건너던 애굽 군대를 수장시켰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14:31).
여러분, 진퇴양난이나 사면초가의 상황은 속수무책인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시고 영광을 나타내실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도 하늘로의 길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우리는 원성을 뿜어낼 것이 아니라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여
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1:7).
그렇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그 힘든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숨 쉬는 것조차 아시는 하나님이 죽을 지경이 된 우리의 상황을 모르실 리는 없지만, 그 분이 원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의 간구입니다. 우리의 통곡하는 기도를 그 분이 원하십니다. 간이 끊어질 정도의 애끊는 부르짖음 말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겔36:37).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새벽을 틈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한으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변변한 무기 하나 없던 우리 군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서울은 함락되고 낙동강까지 밀리게 됩니다. 그 때 이승만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떨리는 음성으로 전 국민에게 호소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금식하고 기도해달라고. 그 호소에 하나님을 믿는 자도, 안 믿는 자도 다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세계 16개국이 연합한 UN군이 조직되어 한국전쟁에 긴급 투입되었고, UN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인천상륙작전을 감행, 북한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마침내 서울을 수복하는 놀라운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히스기야도 사면초가의 상태가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포위했을 때입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는 하나님이 도울 수 없으니 손들라고 야유를 퍼붓고 능욕의 서신도 보냅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서신을 펴놓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사37:14~ 15).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사37:21). 큰일을 이루십니다(사37:33~34). 그날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침으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온통 시체뿐이었습니다(사37:36).
앗수르가 물러간 후에 히스기야에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삶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말을 듣고 벽을 향하여 통곡하면서 여호와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사38:3). 그랬더니 하나님이 수한을 십오 년 연장시켜주셨고, 그 증표로 해 그림자가 뒤로 십도 물러나게 하셨습니다(사38:5~8).
욥처럼 최악의 상황에 처한 자가 있을까요? 그의 고백입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욥10:1). 살 이유도, 살아갈 방도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로 그의 처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 때 그는 기도했습니다. 애통하며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욥10:2). 그 기도에 어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도움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께로 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그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라 간줄기가 떨어질 정도의 기도, 애통하는 기도입니다. 하갈이 자식이 목마르다며 죽게 되었음을 하나님께 아뢸 때 하던 그런 기도 말입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샘물이 터지게 하십니다. 우리 삶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나라에 샘이 펑펑 솟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8장 말씀입니다.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눅8:22~23). 예수님 제자 중에는 어부출신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힘이나 경험으로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다. 소리 지르며 야단법석을 떨며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풍랑이 이는 상황에 왜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을까요? 너무 피곤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제자들이 깨울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깨워야 합니다. 깨울 때 조용히 깨웁니까? 소리 지르며 깨웁니다. 통곡하며 부르짖는 기도만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십니다.
4월 2일부터 춘계산상집회가 있습니다. 이 집회는 그냥 봄나들이 하라고 여는 것이 아닙니다. 진퇴양난의 상황, 사면초가에 싸인 일들, 풍전등화의 삶, 속수무책인 것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며 통곡하고 부르짖어 그 상황에서 탈출하라고, 하나님의 이루시는 큰일을 경험하라고 배설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십니다. 이번 집회에 꼭 참석하여 하루 4시간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할렐루야!
통곡의 기도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문제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