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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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기적을 만든다

915호 · 2017-09-09
세상을 보는 창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불평일까? 원망일까? 아니면 무관심일까? 기도의 자리에서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한 것’임을 깨달았다. 식사대접이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게 되면 대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현하지만, 날마다 필요를 채워주는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고맙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가족에게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모든 것을 채워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게다. 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야 우리 일상에서 감사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당연함을 보석 같은 특별함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니엘의 삶은 일상의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꾼 삶이었다.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된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 다락방에 들어가서 매일 반복하던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를 세 번씩 드렸는데(단6:10), 이 기도의 핵심은 ‘감사기도’였다. 감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처럼 내가 손해보고 힘든 상황에서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감사를 나에게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체질화시켜야 한다. 이 감사기도 때문에 다니엘은 천사의 도움으로 사자 굴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감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게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낸다. 감사는 내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돕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되게 한다.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라고 말했고, 마르틴 루터는 “마귀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할 뿐,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감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불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불평은 나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나태하게 한다.

큰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진정한 감사를 제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시69:30~31)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감사가 우리 인격에 체질화되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꿀 줄 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하나님 편에 서는 삶

믿음으로 견디는 것

조금 힘들고 삶이 버거울 때, 욥기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욥은 애초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고,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화목한 가정과 넉넉한 재물까지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선 사단은 하나님께 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욥의 믿음을 칭찬하시던 하나님께 사단은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욥을 축복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부터 욥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철저한 고독과 소외를 맛봅니다. 욥은 자신의 가족과 모든 소유물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 견디기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은 안쓰럽게 바라보고 계셨고, 사단은 마치 하나님의 명예가 작고 연약한 욥에게 달려있는 것 마냥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욥은 욥대로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믿음으로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큰 아픔이 따르기는 했지만, 욥은 잘 견뎌냈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의 고난은 욥에 비할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마귀와 귀신들 좋아라 박수 칠 일은 안할 겁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때론 처절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믿음으로 견뎌내어 끝끝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김경현

kyunghyunjudy.kim@gmail.com

사랑& 행복

때를 기다리는 지혜

저는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배우려 많은 육아서적을 읽곤 했습니다. 책 속에서 양육에 관한 좋은 정보를 얻기도 했지만, 동시에 책에서 제시된 아이발달의 가이드가 어느새 아이를 판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아이와 몸으로 부딪치며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는 절대 가이드대로 크지 않더군요. 아이들은 제각기 성향과 환경에 따라 빠르고 느리게 성장하기에, 이에 일희일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이 부모의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때가 되면 기대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아이 양육에 부모의 욕심이 앞서면 아이의 때를 제대로 알고 인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일생에도 모두 때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필요를 구하고 인내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주님은 정하신 때와 기한에 맞춰 분명히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그러나 조급과 욕심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결국 일을 그르치게 만들곤 하죠.

성경에 노아가 처음 방주를 만들 때 하나님은 그에게 정확한 때를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사람의 연수가 길었다 한들 노아가 처음에 120년이나 기다릴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그러나 노아는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마지막까지 기다린 끝에 대홍수에 유일하게 살아남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살다보면 모두들 앞으로 내달리고 있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과일도 제철에 최고의 맛을 선사하듯, 내 삶이 가장 맛있고 값진 열매를 낼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밭의 농부가 자신의 역할을 다 한 후에는 자연이 자신의 역할을 해주길 잠잠히 기다리고 마침내 추수 때 많은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우리도 때를 기다리고 인내로 일을 마친다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3:1~8).

김고은

khjc77@hanmail.net

참된 깨달음

꾸준한 전진!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합니다. 토끼는 민첩하고 빠른데 비해 거북이는 느리고 무딥니다. 누구든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자체를 놓고는 게임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뒤엎고 승리했습니다. 자기의 주력을 믿고 낮잠을 잔 토끼와는 달리 거북이는 시종일관 최선을 다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꾸준하게 전진하는 사람이 결국에 승리한다는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노력을 이기는 장사는 없습니다. 꾸준히 노력하면 그 노력은 항상 어떤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평탄한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남보다 더 노력하고 땀을 흘린 결과 성공에 이른 것입니다. 운동선수도 하루아침에 금메달을 따는 게 아니라 꾸준한 훈련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땀 흘려 손에 쥔 트로피가 진정으로 값진 것은 최선을 다하고 목에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것은 거저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패배자는 눈물을 흘리고, 불평가는 침을 뱉고, 노력가는 땀을 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화학 성분은 비슷하지만 어떤 액체를 배출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품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하는 막연한 꿈입니까? 그렇다면 그 꿈은 백일몽이 되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꿈도 부지런한 자, 꾸준한 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힘 있게 박차고 일어나서 ‘나는 이겨 낼 수 있다. 나는 더 노력할 수 있다.’ 라고 외쳐 보십시오. 이 마음의 외침이 중요합니다. 우리 삶에 높은 돌산이 나타나더라도 중단하지 않는 꾸준한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구한다면 그 돌산이 금광으로 변화할 것을 믿습니다.

From Internet

또 25달러네!

다음은 김동길 교수님이 실제 비행기 안에서 겪은 감동적인 실화입니다.

미국 방문 중 비행기에 올라타서 내 자리를 찾아 짐을 머리 위 짐칸에 올려놓고 앉았습니다. 한참을 날아야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책을 한 권 갖고 오기를 잘했지! 책 읽다가 한숨 자야겠다!”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직전, 군인들 여럿이 일렬로 서서 복도를 걸어오더니 내 주위 빈자리에 모두들 앉았습니다. 군인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로들 가시나?” 바로 내 근처에 앉은 군인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페타와와란 곳으로 갑니다. 그 곳에서 2주간 특수훈련을 받은 후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배치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날았을까. 기내 스피커에서 점심 박스를 하나에 5달러에 판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동쪽 해안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기에 시간도 보낼 겸 점심 박스를 하나 사기로 맘먹었습니다. 돈을 꺼내려고 지갑을 찾는데, 근처에 앉아있던 군인 한 명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점심 박스가 5달러라니 너무 비싸다.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냥 참고 가야겠다!” 딴 군인들도 동의하면서 점심을 안 사 먹겠다고 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군인들 중 아무도 점심 박스를 사 먹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비행기 뒤편으로 걸어가서 승무원에게 50달러짜리 돈을 건네주곤 “저기 군인들에게 모두 점심 박스를 하나씩 나눠주세요!”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감싸 잡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제 아들도 이라크에 가서 싸웠습니다. 손님께서는 내 아들에게 점심을 사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승무원 아주머니는 점심 박스를 열 개 집어 들고 군인들이 앉아있는 쪽으로 가서 점심 박스를 한 개씩 나누어줬습니다. 그리곤 내 자리에 오더니, “손님은 어떤 걸 드실래요? 쇠고기 아니면 닭고기?” 이 아주머니가 왜 이러시나 의아해 하면서도 나는 닭고기를 먹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비행기 앞쪽으로 걸어가더니 1등석에서 나오는 저녁식사 쟁반을 들고 내 자리로 왔습니다. “이것으로 손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가려고 비행기 뒤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떤 남자가 저를 막았습니다. “좀 전에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저도 돕고 싶으니 이것을 받으시지요!” 그 사람은 저에게 25달러를 쥐어 주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기장(機長)이 좌석번호를 둘러보면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앉았는데, 기장은 바로 내 자리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기장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님과 악수하고 싶습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서서 기장이 내민 손을 잡았습니다. 기장은 큰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전에는 군인으로 전투기 조종사였습니다! 오래 전 어떤 분이 저에게 점심을 사주셨는데, 그때 고마웠던 기억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구, 이를 어쩌나’ 하면서 쑥스러워하고 있는데 기내 모든 승객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더 날아가고 나는 다리를 좀 움직이려고 비행기 앞쪽으로 갔습니다. 앞에서 6번째 줄인가 앉아있던 승객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더니, 나에게 또 25달러를 건넸습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꺼내 비행기 문으로 걸어 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내 셔츠 주머니에 무언가를 쑤셔놓고 부지런히 걸어가 버렸습니다. ‘이런~ 또 25달러네!’

비행기에서 내려 터미널에 들어가니까, 아까 그 군인들이 한 곳에 모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걸어가서 승객들로부터 받은 75달러를 전했습니다. “당신들 기지까지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이 돈으로 샌드위치나 사먹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가호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군인 열 명이, 비행기에 동승했던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느끼며 떠났습니다. 나는 내 자동차로 다가가면서 이 군인들을 위하여 무사히 귀환하라고 빌었습니다. 이 군인들은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점심 박스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작아도 너무 작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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