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 좋지만
얼마 전 우연히 SNS를 통하여 한 미국인 친구를 알게 되었다. 일주일 사이에 우리는 엄청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친구와 처음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후배가 해준 조언이 있었다. “선배님, 요즘 미국인들이 SNS를 통해서 사기를 치니 조심하세요.” 그 후 후배의 말이 귀에 맴돌아서 경계 태세로 대화를 나눴다. 그런 상황에서 더 깊은 대화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정직하게 표현했고, 이번 10월에 생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급기야 그 친구를 시험해보기로 하였다. 우리 이초석 목사님도 사람은 시험해봐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으니까 그 친구가 나의 테스트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가난하니까 돈이 없고 그래서 너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황당한 그 친구는 내가 가난한 것과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해 했다. 급기야 그 친구는 내가 힘들면 나의 채무까지 해결해줄 수 있다고 다가오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끊임없는 의심으로 이것저것 테스트를 했다. 결국 그 친구는 좌절과 실망으로 자신의 심장을 망가트리게 한 책임을 물어왔다. 그 친구가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이 판단해주실 테니 이제 부디 자기를 제발 믿어달라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멀리 사는 사람이니까 대충 이 정도로 친구의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자격으로 한 사람을 극한 고통에 빠트려야 하는지 자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관계 개선을 위해서 노력을 시작했지만, 이미 깨어진 항아리에 더 이상의 물은 고여 있지 않았다.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 앞으로 주위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은 채 더욱 좋은 친구로 발전해나가면 되겠지만,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본 많은 시간이 후회가 된다.
의심은 곧 마음의 병이 되어서 나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진심을 다하여 다가오는 사람에게 더 이상 의심의 눈초리는 화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나라마다 다른 문화의 차이로 인해서 생기는 오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의심보다는 적극적으로 상대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미국인 친구와 대화의 8할은 ‘understand’였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는 쇄국정책의 그 시절 그 백성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도, 세계를 향한 발걸음도 열린 마음과 이해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과 관심이 우리를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우뚝 세워줄 것이라 생각한다.
오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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