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정의는 무책임이다 (잠6:6~11)
‘I like diligent people(나는 부지런한 사람을 좋아한다).
I don’t like lazy people(나는 게으른 사람을 싫어한다).’
전국 중고등부 연합수련회에서 내가 청소년들에게 한 말입니다. 정말이지 저는 게으른 사람 꼴을 못 봅니다. 게으른 목사, 게으른 직원, 게으른 자식 꼴을 못 봅니다.
여러분, 하나님 자녀의 첫 번째 덕목은 부지런함입니다. 성공의 첫 번째 덕목도 동일하게 부지런함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
‘미국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입니다. 그의 업적을 보자면 ‘참 위대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는 미국 최초의 철학자였으며, 정치인이었고, 과학자였으며 최초의 미국대사였습니다. 그는 하모니카를 발명했고, 가로등을 발명했습니다. 그는 최초의 정치 만화가였고, 당대 최고의 수영선수였습니다. 그는 피뢰침을 발명했고, 썸머타임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네 번이나 역임했으며, 우편을 통한 신문배달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그는 미동북부 지역 태풍 경로를 처음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는 거리 청소과를 처음으로 창설했습니다. 그는 1776년 독립 선언서의 초안도 작성했고, 현재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병원을 세우는 등, 사회문화 사업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프랭클린이 어떻게 이런 업적을 남기게 되었을까요? 부지런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루 24시간이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그것은 인생의 자본금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이 자본금을 늘려 쓰는가 하면, 어떤 자는 줄여 씁니다. 전자는 부지런한 사람이요, 후자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자본금은 많을수록 큰 사업,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 26장 14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침상에서 이리 눕고 저리 누워 자본금을 허비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월을 아끼라”(엡5:16). 세월은 아낀다고 아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부지런을 떠는 것입니다. 시간을 쪼개서 쓰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갈아서 쓰면 세월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을 덜 떨어서 그런 겁니다.
부지런함과 게으름은 마치 빛과 어두움처럼 극과 극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잠언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 중 하나가 다 부지런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벽에 일어나 모리아 산을 찾았고, 야곱도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라고 고백할 정도로 부지런히 외삼촌 집에서 일을 했으며, 요셉도 풍년시기에 부지런히 창고를 채워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엘리야도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왕상19:10) 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했고, 다윗 역시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시119:148). 사도 바울의 사역도 기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전2:9).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동안 쉬신 적이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날이 밝으면 나가서 복음을 전하시고 귀신을 쫓으셨으며 밤이 되면 다시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자의 문 앞에 누워 헌데나 핥고 살던 나사로 같이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각 분야에 성공하고, 넉넉해서 남을 도와주며 사는 예수중심교인들이 되기를 소망하고 소원합니다. 나사로처럼 주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천국에 가야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거부였었다’는 말처럼, 이 땅에서도 잘 살며 나눠주는 삶을 살았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구하고, 부지런히 찾고, 부지런히 두드리고,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전도하고, 부지런히 연구하고, 부지런히 장사하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운동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자만이 꿈에게 기회를 주기에 그렇습니다.
부지런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늦게까지 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쉬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의식적으로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부지런을 떨다보면 무의식속에서도 부지런해집니다. 처음에는 알람을 여러 개 틀어놓고 새벽에 일어나야 하지만, 이것을 반복하다보면 나중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자꾸 반복을 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습관이며, 그 습관이 바로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둘 다 즉시 장사했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안 움직인 겁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핑계를 댑니다. 예나 지금이나 게으른 자들은 핑계를 잘 댑니다. 오죽하면 잠언 22장 13절에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러나 부지런한 자들은 핑계나 변명 대신 방법을 찾습니다. 그에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을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으라’고 합니다. 곧 게으름은 악이라는 결론입니다.
여러분, 게으름의 원래 뜻은 ‘돌보지 않는다.’ 랍니다. 한 마디로 ‘게으름은 무책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하기 때문에 게으른 겁니다. 게으른 부모가 자식 잘 키우는 것 못 봤습니다. 게으른 주의 종이 목회 성공하는 것 못 봤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고 하셨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1~13)고 하셨습니다. 제가 72개국에 복음을 전하면서 백여 개가 넘는 국내교회를 돌볼 수 있는 것은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 양떼가 행여 다칠세라, 아플세라, 누가 채갈 세라 살펴야 하기에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가르치고, 부지런히 먹이고, 부지런히 살피는 것입니다. 때론 몸이 두 개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뜁니다.
부자로 살고 싶습니까? 성공하고 싶습니까? 밑천이 없습니까? 배움이 없습니까? 부지런한 것보다 큰 자산은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도전하면 분명히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배워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의 독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