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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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축복

905호 · 2017-07-01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20대 초반의 어느 힘든 날, 일기장에 10년 후 30대 초반이 된 제가 이루었으면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30대에 제가 다니고 있었으면 하는 회사, 받았으면 하는 연봉, 독립해서 나만의 집을 갖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며,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 등과 같은 것들이요. 당시 집안 형편은 막막하고 취업난은 한창 심해서 일기를 쓰면서도 이것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일까, 그런 괴로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30대가 된 제가 옛날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그 10년 전에 적은 일기를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이 일기장에 적었던 대로 이루어져 있었고, 또10년 전의 제가 감히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10년 후의 제가 이루어냈더라고요. 하와이에 와서 이렇게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는 것 또한, 20대의 제가 결코 생각지도 못했던 미래였지요.

저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게 하나의 강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네, 감사를 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감사를 잘하는 성격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지죠.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상황들, 마음속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괴로움과 분노, 불평들을 막을 순 없지요. 하지만 그 불평들을 입 밖으로 꺼내느냐 마느냐, 적어도 그것만큼은 노력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마음엔 불평이 있지만 입으론 억지로라도 감사하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제가 품었던 목표를 바르고 빠르게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 불평을 누르고 감사하려고 노력한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으로 주셨지요. 애굽에서 약속된 땅으로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과 장애물을 만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불평들이 가나안으로 가는 도착시간을 지체시키지요. 마치 고속도로에서 다른 자동차들이 자꾸 끼어들면 도착시간이 지연되는 것처럼, 불평은 약속된 축복으로 가는 길을 지연시키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걸어서 열흘이면 갈 수 있던 가나안을 그 앞에서 돌고 돌아 40년이나 헤매였다는 사실은 문득문득 저를 정신 차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가나안처럼 약속으로 주신 것들, 그러니까 취업, 결혼, 출산, 사업, 장막등과 같은 것들을 지체시키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의 불평이 아닐까요. 혹시 나의 불평이 약속된 물질의 축복을 5년 뒤로 지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혹시 나의 불만이 예정된 장막의 축복을 10년 뒤로 지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살펴봐야겠습니다.

10년 전 일기장을 본 그 다음 날, 저는 다시 제가 이루고 싶은 여러 가지 목표들을 적었습니다. 그 목표들은 10년 전보다 더 과감하고, 이전의 저라면 바랄 수 없던 것들로 가득합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절대 감사, 절대 긍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이 예정된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거라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신은혜

dopal0203@naver.com

겨자씨만한 믿음

일어나 잡아먹으라

사도행전에는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나온다. 백부장이라는 자리는 백 명의 병사들을 통솔할 수 있는 자리이다. 고넬료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경건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나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을 청하라고 한다. 한편, 하나님은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셨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그릇 안에는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짐승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일어나 잡아먹으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부정한 짐승은 먹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남긴다. 베드로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오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넬료를 찾아간다. 그리고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해 구원을 받아 이방인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베드로는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로마군인과 유대인이라는 벽을 허물었다.

나는 불교 집안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내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 서로 벽을 허문다는 것은 서로의 희생이 뒤따르는 일이며, 이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개입 없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자신의 생각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자.

김성일

cre8tor@naver.com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식약동원 율무편

율무는 의이인(薏苡仁)이라는 약명이며, 맛이 달고, 담백하면서, 독성이 없는 약초로 알려져 있다. 비(脾)장, 폐(肺)장, 신(腎)장으로 가서 설사를 멈추고, 소화기와 기관지를 튼튼하게 하며, 근육의 혈액순환을 돕고, 염증을 배출하며, 사마귀를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 효능이 완만하기 때문에 죽이나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 가루로 사용하기도 하며, 떡, 엿, 과자 등의 원료로 사용될 뿐 아니라 술을 빚는데도 이용된다.

특히 다이어트에도 율무차를 마시면 도움이 되는데, 주로 물살이 찐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이뇨효과가 좋아서 체내의 수분대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몸에 물이 배출이 되지 않아 물살로 갈 때, 물살을 빼주고,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며, 기미, 주근깨, 여드름을 예방하기도 한다. 한번에 12~20g을 물 3컵으로 끓여 반으로 줄면 2~3회에 나누어 마신다. 단맛을 좋아하는 경우에는 설탕보다는 꿀을 소량 타서 마시는 것도 좋다. 또한 설사가 잦은 경우에는 율무와 까치콩을 30g씩 달여 먹으면 도움이 된다. 설사를 할 때는 율무를 볶아서 쓰는 게 좋고, 다이어트용으로는 생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율무가 특히 잘 맞는 경우는 몸이 조금 찬 태음인(太陰人)에게 효과적인데, 한성 태음인들 중에는 몸에 수분이 많아서 피부가 희멀겋고 살이 물컹거리며, 변이 묽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며, 몸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이다. 속설로 율무를 먹으면 정력이 감퇴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한성 태음인들에게는 몸에서 수분이 배출되어 오히려 정력이 좋아지기도 한다.

거꾸로 율무가 잘 안 맞는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 몸에 수분이 거의 없어서 빼빼 마르거나, 물살이 거의 없고 근육질인 사람의 경우에는 율무를 장복하지 말아야하며, 몸에서 수분을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다 보니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는 변비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소량 음식으로 복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오랜 기간 차나 약으로 장복을 할 경우에는 내 몸 상태에 맞도록 복용을 하여야 율무가 우리 몸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복부비만 중에서도 아랫배에 복부비만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면, 율무차를 복용하면 아랫배가 줄어들고 몸이 가벼워지게 된다. 실제 다이어트 한약에서 율무가 많이 활용이 되기도 한다. 포만감을 주어 식욕을 줄여주고, 허리둘레도 줄여주니 일석이조인 것이다.

이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율무차, 이제는 내 몸의 수분을 잘 배출시켜주어 복부에도, 관절에도, 피부에도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음식이며 약임을 알 수 있다.

Dr. 설재현

kseolmed@hanmail.net

신앙논객

우리 신앙과 인생의 나침반

최근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해적에 관한 판타지 영화였는데, 이번이 전체 시리즈 중에 다섯 번째 편이더군요.

영화 속에서 특별히 제 이목을 끈 것은 해적선장이 가지고 있던 나침반이었습니다. 그 나침반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가장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 또는 물건을 생각하고 덮개를 열면, 나침반의 바늘이 그것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신기한 나침반이더군요. 나침반의 주인이 당장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어떤 물건이 꼭 필요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그 물건이 있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물론 영화이고 판타지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우리가 보통 실생활에서 쓰는 정상적인 나침반은 항상 북쪽을 가리키니까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저 해적선장이 가지고 있던 나침반 같은 것이 있다면, 그 나침반은 과연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간절히 원하는 것, 소유하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사람, 그 때 그 때 상황마다 다르겠지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 나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하나님, 난 지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동서남북

(東西南北)만 가리키던 그 나침반의 바늘이 하늘 위를 가리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봤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또 소유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분주하고 치열하게 살다 보면 하늘을 쳐다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신을 구하고 찾으며 도움을 청하기만을 기다리시지요. 하지만 우리 마음이 하나님 대신 이 땅의 부와 명예, 썩어 없어질 것들, 사람의 힘과 도움만을 계속 원한다면 우리 인생의 항해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택함 받은 천국 백성인 우리의 갈망과 소원은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저 천국에 있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나침반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듯, 우리 신앙과 인생의 나침반은 항상 이 땅의 동서남북이 아닌 하늘 위를 가리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참된 깨달음

나의 가이드러너!

“나는 시각장애인 스키선수다. 그녀는 나의 가이드러너다. 그녀의 목소리만을 믿고 나는 달린다.” 최근에 나온 어느 통신회사 광고입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국가대표 시각장애인 스키선수입니다.

‘가이드러너(Guide Runner)’, 종목과 관계없이 장애인 선수들의 경기 참여를 돕는 비장애인들을 말합니다. 출발신호에 맞춰 시속 100km의 속도로 무섭게 활강하는 스키선수(양재림, 27세) 앞에는 큰 소리를 외치며 내려가는 또 한명의 선수(고운소리, 21세)가 있습니다. 이 둘은 시각장애인 스키선수와 곁에서 눈이 되어 주는 가이드러너입니다. 이 경기의 특징은 자신의 힘이 아닌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육안으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 신앙인의 가이드러너는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이끄심이 아닐까요? 마음과 무릎을 낮추는 것 또한 겸손한 자는 높이시나 교만한 자는 대적하신다는 말씀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 속에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는 말씀에 사로잡혀 믿음으로 행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냐’며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는 모세에게 ‘너 혼자 보내지 않고 내가 함께 할 것’이니 믿고 따라오라는 하나님, 여호수아에게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그 분은 기꺼이 그들의 가이드러너가 되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충만함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내 인생의 가이드러너로 모시고 살아가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의 소리를 듣고 따라갑니까?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10:4). 우리 주님만이 최고의 가이드러너입니다. 그 분의 음성만을 따라가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악한 것들로부터 지켜 마침내 금메달의 골인지점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사랑& 행복

인생의 지침서, 성경

물건을 사용할 때 사용설명서의 주의사항을 무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우리 삶도 창조자 되신 하나님께 받은 사용설명서가 있는데, 바로 성경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무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인생은 없을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이 잘 되는 첫걸음이요, 영혼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에 대해 증거하고, 누구든지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과 마음이 합한 자를 기뻐하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성경의 위인들은 세상의 위인들처럼 태생이 다르거나 흠이 없는 사람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비열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추악한지 보여줍니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아내를 내어준 아브라함, 장자권을 시샘하여 빼앗은 야곱, 자랑쟁이 요셉, 간음과 살인을 일삼은 파렴치한 다윗 등, 인간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하면 거듭날 수 있기에 이들을 보며 우리도 동일한 소망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근세에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뉴턴, 아인슈타인, 링컨, 에디슨, 록펠러, 루즈벨트의 공통점은 모두 성경 애독가라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성경을 지침서 삼아 탐독하고, 가족 모두 성경을 필독하며 가문 대대로 가까이 두고 지냈습니다. 삶의 지침서를 그토록 애독했으니 그와 그 자손들이 잘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이처럼 성경은 우리의 내세와 현세를 책임지는 유일무이한 책이고, 삶의 교과서입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 삶의 올바른 지침을 삼는다면, 우리 삶이 하나님 안에서 윤택하여 질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김고은

khj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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