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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분내는 것은 스스로 무덤 파는 일이다(창4:3~15)

905호 · 2017-07-01

‘오 모래여, 오 모래여, 내 사랑 모래여/ 나만이 아는 당신의 희생의 사랑에 할 말을 잊었다오/ 이것이 파도의 고백이라오/ 당신은 모래, 나는 파도/ 당신은 배요, 나는 노라오/ 우리는 예수가 맺어주신 영원한 천생연분이라오/ 오 사랑, 오 사랑, 우리는 사랑뿐이라오/ 지치고 상한맘 안식이 있다면 오직 당신의 품이라오/ 영원히 당신만을, 당신만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이것은 ‘모래와 파도’라는 저의 자작시입니다. 훗날 ‘모래’ 대신 ‘예수’를 넣어 우리가 자주 부르는 ‘오 예수여 ’라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이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목회 초기,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였습니다. 마음도 식힐 겸 혼자 제주도에 갔습니다. 제주 바닷가에서 상념에 잠겨 있는데,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위에 부딪치니 파도가 자지러지게 소리를 내고 아파하며 물러가고 받아친 바위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반면에 눈을 돌려 모래사장을 보니 같은 세찬 파도가 몰려와도 모래는 그것을 다 안아 잠재우고 물방울을 만들며 방글방글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 나는 세찬 파도에 분노하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안는 통 큰 자가 되리라.’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겼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가끔 나를 화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분노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세찬 파도가 다가와 한 방 때리듯 말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바위처럼 받아칠 것이 아니라 모래처럼 그것을 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분내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입니다. 살인하게 된 원인이 바로 분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5~8).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자 화가 나서 동생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동생 아벨은 일찍 세상을 떠난 억울함은 있지만 하나님이 그를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분노하여 살인한 가인은 어찌 되었습니까? 간신히 생명표를 얻어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 되는 꼴이 없이 유리방황하는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까?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1~12).

성경은 분노하는 자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찌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겔21:4~5). 분노하는 자들을 다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분을 내는 것은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것과 같고, 공든 탑을 무너트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모세는 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하여 그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물론 반석에서 물은 솟았습니다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리도 갈망하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민20:24). 고생고생하며 가나안에 거의 다다랐는데, 분낸 것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다보는 것으로 족해야 했습니다.

요즘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자들입니다. 얼마 전에 고층건물 외벽청소를 하고 있는 사람의 생명줄인 밧줄을 잘라 죽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청소하면서 틀어놓은 노랫소리가 시끄럽다고 분노하여 순간 저지른 일입니다. 분노는 이렇듯 잔인한 것입니다.

자제력 부재현상은 사고의 원인입니다. 분을 내면 이성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 홧김에 사표 내던지고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홧김에 불질러놓고 옥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요, 홧김에 이혼도장 찍고 고생하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오죽하면 분이 창수와 같다고 하셨을까요(잠27:4). 홍수가 나면 그간 애써 가꿔놓은 집이고, 가축이고, 사람까지 다 쓸어가듯, 분노로 인해 순간 다 잃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유다가 대제사장을 비롯한 무리와 함께 다가와 입을 맞추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들어 ‘말고’라 하는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잘라 떨어뜨리자 예수님이 그의 귀를 다시 만져 낫게 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눅22:51).

이 말씀대로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 맞받아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그래서 결국 승리하셨고,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으라는 거예요?” 하고 질문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오른 뺨을 치거든 욱 하지 말고 왼 뺨까지 내주세요. 겉옷을 달라하거든 ‘미친 놈’ 하며 멱살 잡지 말고 속옷까지 내주세요.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미쳤냐?’ 하지 말고 간 김에 십 리까지 가주세요. 예수님 말씀처럼 이것까지 참으세요.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격이 콜라 같은 분들, 조그마한 일에도 화부터 내는 분들, 정신과에 가실 필요 없습니다. 그 성격 죽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온유’요, ‘오래 참음’이기 때문입니다(갈5:22~23).

사도 바울은 예수를 뵙기 전에는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행9:1). 그런 그에게 성령이 임하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핍박과 환난과 모함에도 참고 이겨냈고, 더는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 한 그의 편지가 그의 변화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니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자가 됩디다. 제 얼굴에서 사나움이 없어지고, 제 마음에 노가 사라집디다. 누가 저에게 욕을 해도

“안 보는 데서는 임금님도 욕하는데.” 하며 허허 웃게 됩디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지요.

여러분, 스스로 무덤 팔 일은 하지 맙시다. 분을 내는 자와는 동행도 하지 말고

(잠22:24~25), 혹시 분을 내었더라도 해지기 전에 풀어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합시다(엡4:26~27).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마5:5)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심비에 새겨 마음을 다스리는 현명한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천하를 다스리는 자보다

나를 다스리는 자가 더 위대하다

콜라 같은 자가 되지 말고

생수 같은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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