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가 있습니까?
한 미국인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백인 아이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자신의 답안지를 가리려고 한 반면, 같은 반에 있던 인디언 아이들은 함께 둘러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인 어린이들에게 시험은 ‘다른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었지만, 인디언 어린이들에게 시험은 ‘함께 둘러앉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도 간혹 이 학교의 백인 아이들과 같은 오류를 겪곤 한다. 하나님께 더욱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앞서다 보니 정작 하나님께서 함께 사명을 완수하라고 보내주신 동역자들과 협력하고 사랑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세배대의 두 아들들, 즉 야고보, 요한과 제자들의 관계도 그러했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시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12명의 제자들은 3년간 사역지를 함께 돌며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하지만 막상 예루살렘이 가까워지고 예수께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백성들을 구원하고 왕권을 얻게 되실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께 요직을 달라 요청했고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분노했다(마20:20~28). 그들이 분노했다는 것은 야고보, 요한과 마찬가지로 복음전파를 위한 공동체의식보다 자기가 더 높은 자가 되길 원하는 마음들이 숨어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대로 바울은 그 누구보다 동역자의 중요성과 그들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사도였다. 비록 자신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복음전파의 사명을 함께 이루기 위해 부름 받은 동역자인 디모데와 디도, 두기고를 서슴없이 형제라고 칭하며 그들을 높여주고 존중해주었고(고후1:1, 고후8:23, 골4:7), 심지어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에게도 사랑 받는 형제라고 부르며 신분, 물질, 환경을 뛰어넘어 동역자들을 섬기고 세워주며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하나님은 바울에게 더 많은 동역자들을 붙여주셨는데 목숨까지 바치길 원했던 브리스가와 아굴라(딤후4:19, 롬16:3~5), 오랜 옥살이로 병든 바울을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돌보았던 의사 누가, 빌립보 교인들을 대신해 바울에게 쓸 것을 공급하다 죽을병에 걸렸음에도 오히려 자신을 걱정할 다른 동역자들을 염려했던 에바브로디도 같은 귀한 자들이었다. 바울에게 그들이 함께 있었기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할 수 있었고 지구를 돌아 지금 우리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해진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도 성경을 교훈 삼아 복음전파의 목적을 함께 이루어 나갈 신실한 동역자를 간구함과 동시에 그들이 웃을 때 함께 웃어주고, 울 때 함께 슬퍼해줄 수 있는 귀한 동역자로 바로 서야겠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복음이 막힘없이 전파되고 우리의 삶도 더욱 따뜻하고 기쁨이 풍성히 넘치게 될 것이다.
하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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