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은 숨기는 것이 지혜다(잠25:1~2)
몇 해 전 성도 간에 큰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 일로 한 집사님이 억울하다며 제게 상담을 왔습니다. 판결을 내려달라는 것이었지요.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이 집사님이 장사 터가 좋은 곳을 알아냈는데, 그걸 가장 친한 집사에게 자랑삼아 얘기했나 봅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보증금을 구하는 사이에 친구 집사가 그만 먼저 가서 계약을 해버린 겁니다. 이 일로 ‘그럴 수가 있느냐?’ 하면서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졸지에 몫 좋은 장사터를 빼앗긴 집사님은 내심 제가 당신의 편이 되어 싸워주기라도 바라는 듯 눈물까지 흘리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집사님에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집사님, 그건 집사님 잘못입니다. 왜 일이 성사도 되지 않았는데 먼저 자랑을 합니까? 그런 건 누설하면 안 되지요. 아무리 친해도 말해야 할 것이 있고, 말하지 않아야 될 것이 있는 겁니다. 이번 일을 교훈삼아 앞으로는 입단속을 잘하십시오. 집사님이 깨달았으니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25:2).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큰 축복을 예비해놓으시고, 그것을 꿈이나 이상을 통해 계시하십니다(고전2:9). 하나님이 이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으시고 개인에게 비밀로 붙이시는 것은 그것을 가로채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동네방네 나발 불고 다닌다면 어찌 되겠습니다. ‘다 가져가쇼~’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옛말에 ‘아는 놈이 도둑질한다’는 말이 있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다 말하니까 알고 훔쳐가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다 보여주다가 발등 찍히는 겁니다. 고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속까지 다 보여주지는 말아야 하고, 다는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집사님만 이런 실수를 한 게 아닙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나발 불어 고생한 사람이 많습니다. 먼저 요셉입니다. 요셉은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을 맘속에 조용히 간직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요셉은 곧바로 형제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아버지의 총애를 듬뿍 받는 요셉이 미워죽겠는데 꿈 이야기까지 하니까 형제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해서 애굽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창37:8).
히스기야도 그랬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왕하20:15). 곧 죽으리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에 대성통곡하며 기도하여 수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은 히스기야가 신이 났나 봅니다. 그만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의 사자에게 군기고와 내탕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며 자랑합니다. 그 결과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왕하20:17~18)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삼손도 그랬습니다. 나실인 삼손은 소렉에 사는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들릴라는 삼손의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 블레셋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한 거짓 사랑이었습니다. 그걸 알 리 없는 삼손은 들릴라가 힘의 근원을 계속 묻자 죽을 만큼 번민하다 결국 하나님과의 비밀을 누설하고 맙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삿16:15~17). 이 비밀누설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은 여호와의 신이 떠나자 힘을 잃고 블레셋 사람에게 잡혀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삿16:18~22).
그러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백세에 준 아들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는 아내에게조차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말했다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어느 어미가 자식을 죽인다는데 순순히 허락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혼자 사흘 동안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삭을 묶고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급히 이를 만류하셨고, 이에 탄복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넘치는 복, 곧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22:17)는 대복을 주십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서 품삯대신 앞으로 낳을 얼룩덜룩한 양을 갖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발설하지 않고 조용히 실행에 옮겨 거부가 되었습니다(창30).
하나님도 함구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양하신 그 하나님이 예수님에게조차 말씀하지 않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마태복음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우연히 엄청난 보화가 숨겨진 밭을 발견했다면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아무 일 없는 듯 그 밭을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저도 교회 일을 할 때 오픈해놓고 할 때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행정목사도 모르게 저 혼자 해결할 때가 있습니다. 일을 그르칠까봐서요. 제가 늘 말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면 동시에 악한 것들도 역사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끔 친구에게 여자 친구를 자랑하다가 빼앗겨 이를 득득 가는 자들을 봅니다. 누구 탓할 게 없습니다. 본인이 어리석어서 그런 겁니다. 내 여자가 되기 전까지는 나보다 잘난 친구에게 보여주면 안 됩니다. 회사에서도 몇 년 동안 고생해서 개발하고 연구한 것을 회식자리에서 슬쩍 한 마디 했다가 순식간에 도둑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 정보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회사마다, 국가마다 기밀사항으로 분류하고 철통보안을 하는 겁니다. 아이디어나 꿈, 정보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일을 이루기까지 숨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하셨습니다. 뱀의 특성 중에 하나가 뼈가 있으나 뼈가 없는 듯 행동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을 입방정으로 남의 것이 되게 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일은 숨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지혜가 최고의 병기와 전술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마귀도 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