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복음, 부활
한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며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가에서 한동안 떠들썩했다. 그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이 경의를 표하는 가운데 시가행진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부복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 친구에게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했다. 기독교는 그들처럼 죽은 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고 살아있는 예수를 믿는 종교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인들이 향품을 예비해가지고 예수님 무덤에 찾아가 예수님을 찾을 때,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24:5)라는 천사의 책망을 들었다. 만일 기독교가 예수님의 부활을 허위로 선전했다면 기독교가 2천 년 후인 오늘까지 존재할 수도 없고 부흥 성장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파스칼은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해서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냈다고 가정해보자. 그중 한 사람이라도 본심으로 돌아갔다면 예수의 부활은 붕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교하면서까지 입증한 제자들의 진실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온전한 복음이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만이 복음은 아니다. 죽으신 것은 반쪽에 불과하다. 한 청년이 “목사님, 저는 예수의 죽음은 얼마든지 믿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부활이 안 믿어져요.”란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만 믿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라고 기록되어 있기에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지 못한다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도 없을 거라고 외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오늘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스스로 구별하는 삶
저명한 모 잡지에 8인의 성공한 CEO가 매일 새벽마다 하는 일에 대해 소개된 적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애플, 펩시코, 제너럴 일렉트릭과 같이 세계 정상을 달리는 기업 총수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새벽 일찍 일어나 신문이나 책을 보고 운동한 후 아침 일찍 업무에 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른 첫 시간을 활용, 하루를 지배할 밑천을 마련하여 그날 하루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다.
‘저 사람은 뭘 하든 성공하는 것 같아’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은 한 번 마음먹고 시작하면 마음과 시간, 물질 등을 철저히 구별하여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구별한다는 것은 결단과 절제를 동반한다. 먼저는 목적을 향해 뜻을 정해야 하고 그 다음은 먹고 싶고, 쉬고 싶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생리까지도 이겨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야 목적한 바에 다다르거나 그 경지를 뛰어넘게 된다.
믿음의 선친들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구별하는 시간과 행실을 통해 대업을 이루었다. 하루 세 번 하나님 앞에 기도 시간을 구별하여 드린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지기까지도 요동치 않았더니 왕과 온 국가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고, 믿음의 여인 에스더가 3일 금식을 결단하고 행하자 하나님은 풍전등화에 놓인 전 유다를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셨다. 바울과 실라 역시 옥에 갇힌 중에서도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올리자 땅이 진동하고 매였던 착고가 풀리며 감옥 문이 열리는 역사를 경험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열 명의 자녀를 기르면서도 매일 한 시간여의 기도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바쁜 일상 가운데 하나님께 시간과 마음을 구별하여 드렸기에 자신의 영성 유지는 물론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철저히 경외하는 삶을 교육시킬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존 웨슬리라는 걸출한 기독교 인물이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역시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특별기도의 시간을 가지셨다. 그리고 인류 구원의 대업을 이루셨다. 신년 목적한 바를 재점검하여 내 마음과 시간, 스스로를 구별하는 하루하루를 지속한다면, 목적한 경지에 넉넉히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나는 못해’라는 독
내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여성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지금까지 연애를 해보지 못한 모태솔로이다. 옆에서 상담을 해주는 내가 봐도, 상대방도 분명히 마음이 있어서 다가가면 연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러지 못한다. 갑자기 상대방의 이런저런 조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내가 보았을 때는 ‘사귀었다가 내가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두려움을 만든 것 같았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도 그 친구의 두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을 안심시키거나 설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안다. 그 친구가 무엇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단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친구는 ‘나는 못해, 잘못되면 어떡하지?’ 라는 독을 품고 있다.
상상하면 현실이 되고 말을 뿌리면 그것은 이루어진다. 말은 생각으로부터 나오므로 생각을 고쳐야 말도 바뀌고 결국엔 결과도 달라진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거기에 계속 매달리다보면 현실에서도 부정적인 결과가 오기 마련이다.
두려움은 우리가 약한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 아닐까. 두려움이 몰려들 때엔 두려움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에 집중하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고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인생에 풍랑이 찾아온다. 좋은 것들은 자아로부터 오지 않는다. 일어나 열심히 기도하며 세상의 빛인 예수님께 의지하자.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14:27).
김성일
cre8to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