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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호 목차 › 성경에서 배운다

왕을 태운 나귀

894호 · 2017-04-15

해마다 4월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종려주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우릴 위해 받으신 고통을 묵상하는 고난주간,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선포하는 부활주일을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은혜를 되새김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중 종려주일을 묵상하다 보면 의외의 동물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태웠던 어린 나귀이다.

당시 어린 나귀는 메시아, 즉 왕이신 예수님께 어울리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슥9:9)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아무 짐도 메어본 적이 없는 순결한 어린 나귀를 선택하셨는데 이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나귀는 평생 멍에를 메고 주인이 이끄는 대로 짐을 지고 살아가는 숙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죄와 고통의 멍에를 짊어지고 사단의 세력아래 신음하며 사는 것과 닮았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죄의 멍에를 벗기러 오셨고 이제는 온전히 예수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이 가시는 길을 함께 나설 순결한 나귀를 원하신다.

더불어 아무리 약하고 어린 나귀여도 내가 태운 분이 왕이라면 나도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근사한 말이 아니면 어떠한가? 여리고 작아도 순전한 마음으로 왕을 모신다면 왕의 나귀, 즉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가난하거나, 병들었거나, 나약해도 상관없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을 모신 특별한 존재이기에 가난에서 해방되고 병에서 자유를 얻고 나약함이 강함으로 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특권을 가진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새끼 나귀는 예수님을 향해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을 결코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세상의 환호’를 자신의 것인 양 자만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배우라’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모신 왕을 향한 함성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그리고 옆에서 지르는 환호성이나 박수에 눈과 마음을 뺏기지 않아야 내가 모신 예수님의 목적지를 흔들림 없이 바라볼 수 있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4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자문해보자. 우리가 모신 분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온전히 예수님의 영광을 짊어진 어린 나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막11:9).

하인명

renm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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