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관절 장애
18세 A양은 오른쪽 턱관절이 아프다. 뒷목이 당기고 어깨도 잘 아프다. 만성피로증후군이 있고 경도의 척추측만증으로 허리와 오른쪽 다리도 자주 아프다. 소화불량과 설사, 변비가 반복된다. 가족들은 A양의 증상을 고3 수험생의 심리적 압박에 의해 생긴 꾀병정도로 여기고 도무지 이해해주지 못한다. 턱관절 전문병원을 찾아 교정치료를 상담하다 이 모든 증상이 턱관절 장애로 인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의 머리는 투구와 같은 형태의 두개골과 그 밑에 하악골이 그네처럼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머리뼈와 아래턱을 연결시켜 주는 부분은 마치 경첩과 같은 턱관절이 있어 우리는 마음대로 음식을 씹을 수 있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또 울고 웃고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품을 하고 잠든 후에도 숨을 쉬고 침을 삼키는 행위조차 턱관절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밤낮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턱관절이 고장이 나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고통스럽고 심각한 상태가 될 것이다. 하루에 수천 번씩 사용하기 때문에 정작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살고 있는 듯하다.
인체의 골격은 마치 가늘고 기다란 탑과 같이 생긴 척추위에 4.5~6kg의 볼링공만큼 무거운 머리를 얹어 놓은 것 같은 불안정한 형태의 구조로 되어있다. 척추는 26개의 척추뼈로 쌓아져 있어서 조금만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구조 위에서 머리가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머리의 무게 중심은 아래턱의 저울추와 같은 역할에 의해 결정되며 턱관절이 움직일 때 중심축은 제1경추와 제2경추가 맡고 있다. 그러므로 턱관절이 한쪽으로 틀어지면 당연히 제1경추와 제2경추가 틀어지게 되며 그 밑에 있는 척추들도 도미노처럼 서서히 틀어지게 되어 결국은 척추 전체가 휘어지게 되는 척추측만증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인체의 대들보라고 하는 척추가 휘어지게 되면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기게 되어 여러 가지 전신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턱관절은 전신건강의 초석이 되는 아주 중요한 기관이다. 따라서 턱관절에 외상을 입거나 이를 악무는 습관, 턱 괴는 습관, 한 쪽으로만 씹기, 지나친 스트레스는 턱관절 장애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므로 유의하자.
Dr. 조희경
pearl9230@naver.com
상처에서 나는 향기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가끔씩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상처로 인해 마음속에 독기와 분노가 자리 잡기도 하고, 또한 절망과 분노, 원망이 쌓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처가 없다면? 상처를 이기고 얻은 행복은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거저 얻은 행복은 그 소중함을 잊는다. 실패 뒤에 얻은 성공은 귀하고 오래도록 유지하지만, 실패 없이 얻은 성공은 감사함과 소중함을 몰라 오래가지 못하듯이.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없다면 내 주변에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할 것이다. 시련과 상처를 겪어야 비로소 인생에서 향기가 난다.
식물들은 상처를 받으면 진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난다. 풀은 상처에서 그저 조용히 향기를 내뿜을 뿐이고, 향나무는 자신을 찍은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그런 존재이다.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 오신 예수님을 유다는 배신하고, 베드로는 부인하고, 백성들은 모욕하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의 죄를 사하셨다. 예수님이 남긴 향기는 진하여 지금에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엡4:26).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상처를 딛고 밑거름삼아 향기를 뿜어내는 것, 그리고 상처를 곱씹고 매몰되는 것 중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은 자유이지만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 사람들에게 사랑의 향기를 전하도록 하자.
김성일
cre8tor@naver.com
뚫어!
얼마 전부터 세면대에 물이 더디게 내려가 사용하는데 많이 불편했다. 임시방편으로 가는 철사로 갈고리를 만들어 점검해보아도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주 쉬운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동네 슈퍼에서 트래펑 1.5~2L을 사다 세면대에 붓고 8~10시간 정도 기다렸다 물을 부으면 뻥 뚫린다는 것이다. 솔직히 반신반의하며 시도해봤는데 어찌나 시원스럽게 물이 내려가는지 답답한 마음이 뻥 뚫렸다.
내가 어릴 적 골목을 돌아다니며 ‘뚫어!’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막힌 하수도나 굴뚝을 뚫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굴뚝이나 하수도 막힌 것을 전문적으로 뚫어주었다. 막힌 것을 뚫게 되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막혀있다는 것, 불통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와 가정이, 어떤 단체가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통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단순히 한 부분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부부간에도 소통이 잘 되어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고, 회사에서도 사주와 사원들 간에, 국민과 대통령이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듯이 말이다. 더 나아가 소통의 문제는 신앙인들에게 더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과의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복 있는 성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어 예비하신 은혜도, 축복도 받지 못하고, 그 결과 쥐엄열매나 먹으며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사야서 59장 2절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불통의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소통 될 때만 복 있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가족들과 이웃과 더 나아가 하나님과 막혀있음으로 삶이 답답하다면, 막힌 것을 뚫어야 한다. 영·혼·육의 건강한 나를 만들려면, 뚫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막힌 것을 뚫으려고 손을 내밀어야 하고,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한 번 더 버텨낸다면
몇 년 전 부모님과 함께 10km 마라톤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줄곧 마라톤을 해오셨지만, 저는 당시 운동을 자주 하지 않아 처음 뛰어보는 거리였습니다.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당연히 끝까지 한 번도 안 쉬고 뛸 수 있다고 호기롭게 대답하였는데, 뛰어보니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는 말을 뱉어버렸으니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끝까지 간다는 생각으로 몸을 내맡겼더니 죽을 만큼 힘들다고 느꼈던 순간을 이겨내고 결국 목표점을 찍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버텨보았더니 생각보다 제 다리와 심장이 강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삶은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극복할 때 보통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정하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조금 더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버티는 힘을 잘 길러 나가려면 더 이상 못하겠다고 싶을 때 딱 한 번만 더 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힘들 때 그만두거나 그전에 지레 그만두게 되면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늘 발전도 없는 삶을 살게 되거든요.
2015년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이례적으로 뇌성마비 2급의 여학생이 졸업 연설을 위해 강단에 올랐습니다. 생후 11개월에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일평생 장애인으로 살며, 늘 자신은 할 수 없을 거라는 편견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글씨도 느리게 쓸 수밖에 없는 신체적 제약이 있지만, 편견에 맞서 한 번 더, 두 번 더 재활과 공부를 버텨내었더니 결국 서울대 졸업장을 얻었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몸의 근육이 힘든 근력운동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도 고난을 통과하며 단단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일평생 함께 가야할 문제와 수고로움 속에서 매번 한 번 더, 두 번 더 적극적으로 버텨낸다면 심적 영적 근육이 단단해져서 환란, 인내, 연단, 마침내 소망을 이루는 삶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고난을 통해 고난을 다룰 줄 알았던 바울처럼 말입니다.
김고은
khjc77@hanmail.net
남기는 삶!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황금률 중에 하나는 ‘대접받고 싶은 만큼 먼저 주라’(마7:12)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웃을 잘 보살피거나 도움을 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장수한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미국 미시간대학 교수팀이 423쌍의 노인부부를 대상으로 5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이웃에게 도움을 주거나 배우자를 정성껏 잘 돌봐준 노인에 비해 이웃의 불행을 보고도 돕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의 사망률이 2배나 높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브라운 교수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상당한 가치가 있음이 입증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을 위한 배려나 봉사가 곧 나의 건강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놀라운 덕목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엄청난 유산을 자녀가 아닌 사회에 기증하고 일생동안 선한 일에 투자한 록펠러(1839~1939)가 53세에 중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위기를 맛보고도 치유함을 받아 99세를 살았고,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의 수명이 90세였습니다. 주는 사랑에는 출구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어온 사랑이 쌓여 가득차면 그 사랑의 온도에 온도가 더해져 더 따뜻한 사랑으로 나에게 쏟아져 내리기 때문 아닐까요?
탈무드에서 말하기를 “사람이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잘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남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평균수명의 증가로 이제는 백세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목전의 이익을 좇지 않고 약자를 보살펴주는 삶! 바로 그 삶이 남기는 삶이 아닐까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