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면 죄악과 이혼하라(히12:1~14)
우리 삶 속에서 최고의 축복은 무엇일까요? 돈을 많이 버는 것일까요? 입신양명하는 것일까요? 이것도 축복이긴 하지만, 최고의 축복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합니다.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성공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된다는 것을요. 가슴이 마구 뛰지 않습니까? 선생님께 인정만 받아도 대단하고, 부모에게 인정받아도 뿌듯하고, 목사님에게 인정받아도 솔직히 목에 힘이 조금 들어가는데, 유일하신 신이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얘기 끝난 겁니다. 제가 세상이 뭐라 하든 이렇게 당당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울 게 없습니다.
‘인정받는다’는 게 뭡니까? 인정(認定)이란 한문을 보면 말씀 언(言)변에 참을 인(忍)으로 이루어진 알 인(認)자와 집 면
(宀)변에 바를 정(正)이 합쳐 정할 정(定)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말뜻을 헤아려보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환난과 고통이 와도 참고 바르게 행하여 가정에서부터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먼저 인정을 받은 자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더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 옳습니다. 가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가 어찌 사회에서, 어찌 하나님께 인정을 받겠습니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겁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던 겁니다. 베드로전서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3:1)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려면 많이 참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할 때 남편에게 인정받고, 그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정받는다’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뢰입니다. 이왕 한문풀이를 했으니 이것도 해보자면 사람 인(人)변에 말씀 언(言)이 합쳐서 신(信)이고, 뢰(賴)는 묶을 속(束)변에 질 부(負)가 합해서 된 것입니다. 이 뜻을 보자면 ‘내 말을 사람의 등에 실어 보낼 만큼 믿을 수 있는 것’이 신뢰입니다. 내 모든 것을 맡겨도 걱정되지 않는 사람, 의심되지 않는 사람, 안심되는 사람이 인정받는 자요, 신뢰받는 자인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유혹되어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목적을 이루는 사람이 신뢰받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 신뢰받은 자의 삶은 어땠을까요? 아브라함을 실례로 볼까요? 백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조금의 갈등도 없이 산에 올라 아들에게 칼을 대려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칼을 거두게 한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너를 신뢰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7~18)고 하셨습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왜 최고의 축복이라고 하는 줄 아시겠지요?
이런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죄악과 이혼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죄악과 이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별은 다시 만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아예 죄와는 갈라서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데, 제일 싫어하는 것을 해서야 어찌 인정을 받습니까? 당신이 상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신 주님의 소망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24). 그래서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 기거하는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은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5:14)고 하셨고,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 붙들려온 여인에게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119:162~163).
여러분, 죄의 연(緣)은 질긴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를 악연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끊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엉킨 실타래 같아서 순리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과감히 무 자르듯 잘라내야 합니다. 삼손과 들릴라는 악연이었습니다. 삼손이 그 연을 잘라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나실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눈이 빠진 채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연이 그랬고, 여호사밧도 아합과 연을 맺음으로 겨우 죽음만을 면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에스라 9장에 보면 에스라가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 중 방백들과 두목들을 포함하여 어떤 자들이 이방 여인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도 느헤미야 13장에 이방여인과 혼인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인즉 이렇습니다.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느13:26~27). 솔로몬이 이방여인들을 첩으로 맞아 그로 인해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되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연을 잘못 맺으면 이런 신세가 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울과의 연을 끊지 못해 애달파할 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삼상16:1)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다윗은 사울과의 연을 잘라냈기 때문에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윗의 노래가 이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지금 대한민국의 사태가 잘못된 연으로 인해 시작되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당신도 잘못된 연인 줄 알면서 인정 때문에, 동정 때문에 그냥 지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그 연 때문에 죄 사슬에 얽힐 수 있습니다. 잘라내십시오.
하나님께 인정받기 원합니까?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허다한 하나님의 증인들처럼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십시오. 그리고 잘못된 연을 과감히 잘라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한 자가 되어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떨어져도 살아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불 가운데 들어가도 불이 사르지 못하고,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며, 나사로처럼 죽은 지 나흘이 지나도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2017년이 되십시오. 할렐루야!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자기 관리, 자기 경영을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