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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는?

878호 · 2016-12-24
평신도 묵상노트

사람들이 부와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신문을 매일 같이 도배하고 있는 부와 권력의 핵심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사람, 즉 친구를 몇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들이 코너에 몰려 있을 때, 진정으로 자신들을 염려해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

부와 명예와 권력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바울에게는 정말로 많은 친구가 있었다. 그의 원대한 비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함께 동역하는 친구, 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친구, 집과 재산을 내놓는 친구, 그가 세웠던 교회를 사심 없이 이끌어가는 친구 등 마음을 같이 하여 그의 인생 여정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그의 열정과 지혜의 근원인 예수님이 늘 함께 계셨다. 홀로 외롭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투쟁할 때도 예수님은 담대한 마음을 주시면서 그와 함께 하셨고,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도 소망을 주시면서 옆에 계셨다. 그는 누구도 생각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선구자적인 사명자의 길을 걸어갔기에 극심한 환란과 고통이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늘 그의 오른손을 잡고 힘주시는 예수님이 계셨고, 뜻이 맞는 친구들이 그의 길에 분량만큼 동참했기에, 참으로 견딜만했고, 풍성했고, 행복한 삶이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힘든 회사 생활을 견딜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친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존재다. 현대는 지나치게 가족(그것도 일촌 위주)과 이성간의 사랑만 중시하여, 우정, 충성, 의리 등의 소중한 가치를 등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타자들과 교감을 하고 소통을 해야 행복해지고 건강할 수 있는 존재다. 일촌 가족이나 배타성을 전제로 사랑하는 이성은 타자가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나다. 오직 또 다른 나와의 관계에만 집중하여 나의 세계에만 머문다면, 외부와는 소통이 안 되고 단절되어 나는 병들고 만다. 그래서인지 온 세상이 가족과 이성간의 사랑만을 중시하며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건만, 지금처럼 솔로가 많았던 때도, 무너진 가족이 많았던 때도, 외롭다고 난리치던 때도 없었다. 이런 때에 우리 믿는 자들이 바울처럼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깊이 연대하고 우정을 나누는 삶을 살아간다면,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세상은 너무나 부러워하며 우리에게 비결을 물을 것이다. 그때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 열매 맺는 삶이 어떤 것인지 눈과 몸으로 보고 느끼지 않을까.

박소향

bp650624@naver.com

오늘의 메시지

끝은 또 다른 시작!

수 년 동안의 혹독한 수련 끝에 마침내 검은 띠를 받는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다. “너에게 마지막 시험이 남아있다.” 제자는 마지막 대련이 있는가보다 생각했으나 그 시험은 대련이 아니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묻는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냐?”, “수련과정의 마침이며, 스승님의 모든 것을 전수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아직 검은 띠를 맬 자격이 없으니 내년에 다시 오라고 말한다. 일 년 후, 스승이 똑같은 질문을 하자 제자는 “스승님의 뛰어난 무술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문파의 명예를 더욱 빛내라는 의미입니다.”라고 답했다. 스승은 다시 내년에 오라고 했다. 일 년 후의 답이다. “검은 띠는 시작을 의미합니다. 고난도 무술을 위한 기본 자격을 갖추었다는 의미합니다.”, “옳다. 검은 띠는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을 맞는다. 그러나 실상 한 해의 끝은 새로운 해의 처음과 맞물려 있음을 잊으면 안 되겠다. 잘했든 못했든, 성공이든 실패든, 우리는 마지막을 통해 새로운 처음을 맞는 것이다. 그러니 끝이라고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끝이라고 방심하거나 자만하지도 말 것이다. 바울처럼 뒤엣것은 잊고 앞에 있는 부름의 상과 푯대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빌3:13~14).

이제 새롭고 원대한 비전을 품어보자. 그리고 첫발을 잘 떼기 위해서는 마무리를 잘하자.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잘못한 것은 회개하며 고치고, 잘한 것들은 더욱 발전시키면 된다. 실패는 넘어진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머무는 것이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생명의 말씀

아름다운 마무리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선종’이란 용어를 접했다. 선종이란 죽음을 뜻하는 카톨릭 용어이다. 이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로서, ‘착하게 살다 복되게 죽는다’는 뜻으로, 좋은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란 뜻이다.

캐나다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예수를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할머니는 자신과 조금이라도 서운한 감정이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불러 서로 용서하며 화해를 하시고 소천하셨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셨다.

2016년이 저물어간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마무리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서로가 용서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일이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예수님,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채찍에 맞고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이 땅에 마지막으로 하신 것은 용서였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 이 예수님의 용서를 배워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를 했으면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이고, 가장 값진 것은 사랑이다.

각자무치(角者無齒)란 사자성어가 있다.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재주나 복을 한꺼번에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뿔이 달린 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호랑이는 날카로운 이가 있으나 뿔이 없다. 날개달린 새는 다리가 둘뿐이고, 날 수 없는 고양이는 다리가 네 개다. 예쁘고 아름다운 꽃은 열매가 별로고 열매가 귀한 나무는 보통 꽃이 별로다. 사람은 장점도 있지만 반드시 단점도 있으며 때로는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장점이 단점 되기도 한다.

은혜와 불평도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해득실을 따지니 감사가 없고 불평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먼저 생각하면 감사는 저절로 고백되어 진다. 죄인을 의인되게 하신 하나님, 늘 생명의 말씀을 주신 목사님, 낳아주신 부모님, 부족한 나와 결혼해준 사람…. 이렇게 생각하면 감사하게 되고, 그 결과는 반드시 아름다운 마무리뿐 아니라 이후의 삶이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To Be Succeeded

우리가 순종해야할 이유

몇 년 전, 한 일간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능력은 있지만 회사방침에 비판적이고 수용하지 않는 직원보다는 회사 방침에 최대한 따르고자 애쓰고 순종하는 직원이 인정받아 회사 내 중추적인 위치에까지 오르고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통계가 있다.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여서 순종이 있는 가정이 그렇지 않는 가정보다 5배나 더 행복하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하나님도 성경 전체를 통하여 순종하여 받는 축복을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낳은 자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곧장 모리아 산으로 향했고,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문전박대에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고 나오는 결단과 실행력을 보였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자손이 번성하고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 받을 것을 약속 받았으며, 나아만 장군은 나병 걸린 몸이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되어 깨끗함을 입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순종함에 인간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우를 범하곤 한다. 하나님은 그저 성 둘레를 빙빙 돌고 나팔을 불기만 하면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리고, 삼만 명이 아닌 단 삼백 명 만으로 미디안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하시지만 인간의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당신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여호수아와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에 길이 남을 대역사를 이루셨다. 반대로 초대 왕으로 세움 받았지만 순간의 인간적인 계산으로 불순종한 사울왕은 그 즉시 버림받고 말았으니 순종과 불순종의 결말은 말 그대로 천지차이다.

순종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것은 힘써 행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미워하고 비판할 수 있고 원망 불평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용서하고 사랑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곧 순종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음을 기억하여 힘써 순종하자. 눈물로 순종의 씨앗을 뿌린 자,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둘 날이 반드시 온다.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참된 깨달음

왕으로 나신 이는?

어떤 심리학 교수가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 40명에게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백화점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 선물, 데이트, 공휴일, 캐롤송”이라고 답했으며, 예수님이라고 대답한 학생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오늘날 성탄절이 상업주의, 감상주의, 쾌락주의에 밀려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존 데이빗(John David)이라는 사람은 12월에 두 개의 크리스마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예배하는 Merry Christmas와 다른 하나는 X-Mas 라고 합니다. 이 X라는 기호는 그리스도의 약자이기도 합니다만, 오늘날 이 땅위에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X-Mas로 지키면서 돌잔치에서 주인공인 아이가 소외되듯이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가 아닐까요?

우리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기쁜 소식 ‘Good News’ 라고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한 개인의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기쁨이며 온 인류의 기쁨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이 아기예수의 탄생이 나의 복음 우리의 복음이 되기 위해서 그분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해보십시오. “주 예수여! 당신만이 그리스도시며 구주시며 소망이시며 우리의 행복이십니다. 이 행복과 평화를 소유한 모든 분들께 성탄의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Merry Christmas!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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