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의 친구요 하나님의 자녀다(요15:13~17)
2008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집회 첫날, 집회를 주관한 필립 목사가 저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목사님은 21세기의 사도며, 하나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십니다. 그러나 이는 그분을 이해하는데 1%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의 친구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의 친구 되시는 이초석 목사님이 나오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필립 목사가 저를 제대로 소개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제자인 동시에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제가 교만하다고요? 아닙니다. 저는 정확히 저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뿐입니다. 저만 그럴까요?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성경말씀으로 정확히 짚어드리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4~15).
여러분이 누군지 이제 아셨습니까? 아셨다면 크게 말씀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나는 예수님의 친구다!” 그렇다면 모든 게 끝난 거 아닙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송장을 살리시고, 하갈이 울부짖자 사막에 생수를 터지게 하시는, 즉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시며(롬4:17), 해 그림자를 10도 물러나게 하시고(왕하20), 홍해를 순간 가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시136:13).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눅18:27). 바로 그 분이 우리가 믿는,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까?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넘겨받은 예수님이 우리의 맏형이 되시고, 더욱이 허물없는 친구까지 되어 주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안 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마28:18)? 우리는 정말 대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범사에 그렇게 담대했던 것입니다.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다’ 라고 할 수 있는 것, 올림픽공원에서 태양이 작열할 때 ‘구름아, 태양을 가려라’ 라고 했던 것, 교단에서 제명되었을 때도, KGB에 끌려갔을 때도, 매스컴과 언론의 가차 없는 공격에도 좌절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4명이나 살리며,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을 눈뜨게 하며, 에이즈 환자도 손수건으로 닦아내어 살렸던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저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아들딸이면서, 예수님의 형제요 친구이면서 왜 그러지 못합니까? 조그만 일에도 두려워하고 걱정근심하고 있으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건 하나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맏형이시며 친구이신 예수님은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말씀하시건만 속을 끓이고, 좌절하고 있는 건 무슨 일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건 주위 사람들의 동정의 말이나 위로의 말이 정작 나를 죽이는 말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디가 아플 때 가족이나 친구가 걱정하는 말로 “병원 가봐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 놔두면 큰 병 돼.”라든지 “고칠 수 없는 병이라니 어쩌니~” 라며 걱정하는 말을 할 때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말이 당신을 둘러싸고 굴레를 씌워서 현실로 들이닥친다는 겁니다.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그야말로 손 쓸 수 없는 병이 되고, 그 병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위로가 아닙니다. 그건 부정적인 말이고, 여러분을 죽이는 말입니다. 이 때 과감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내가 누군지 압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내가 예수님의 친구인데 이런 병이 무슨 대수란 말입니까?” 해야 악한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는데, 위로랍시고 하는 부정적인 말을 받아들이면 마귀는 날뛰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쩔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가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던 남편이 어느 날부턴가 자기를 때리고 폭언을 퍼붓는다며 이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제가 ‘뭔가 원인이 있을 거다’라고 했더니, 그가 한참 생각하더니만 “아! 제가 조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저의 구역식구 중에 한 사람이 남편이 자꾸 자기를 때린다고 하길래 제가 위로하느라 ‘우리 남편도 그래.’ 라고 했는데, 그게 원인이라면 원인일까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거다.’ 라고 했습니다. 위로하느라 한 말이지만, 그 말을 타고 악한 것이 들어와 말 그대로 된 것입니다.
또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오랜 시간 상담하고 축복기도도 실컷 받아놓고는 “그런데, 목사님, 요즘 경기가 안 좋은데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아~ 그런 사람은 정말 때려주고 싶습니다. 그때 제가 “그렇죠? 요즘 경기가 정말 안 좋긴 해요. 그래도 기도하면서 노력하세요.” 라고 하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봐요. 그러려면 뭣 하러 상담하고 기도를 받습니까? 시편 91편의 말씀처럼 ‘천인이, 만인이 안 돼도 나는 된다.’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나는 예수님의 친구니까.’ 알겠습니까?” 라고 야단을 칩니다. 부정은 부정을 몰고 옵니다. 그 부정은 부정의 큰 파장을 낳아서 결국 부정의 결말로 치닫게 합니다. 요즘 언론과 매스컴에서 세계 경기가 안 좋다느니, 수출이 저조하다느니, 헬조선이니 하는데, 이 나라가 잘 되려면 그런 부정적인 말부터 고쳐야 합니다. 그 말이 국민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철야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늦은 식사를 하는데, TV에서 퇴행성관절염에 대해 의사가 나와 말하고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맞는 말이라 “맞아, 오래 썼으니 닳겠지.” 하며 수긍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기도를 하려는데 멀쩡하던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고 3시간을 기도했더니 다리가 괜찮아졌습니다. 의사의 말에 수긍하는 순간 그것이 저를 에워싸고 짓누른 것입니다.
여러분, 현실에서 떨어진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위기가 왔을 때가 바로 믿음을 발휘할 시기입니다. 다윗이 아들에게 쫓기고 장인에게 쫓기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위기 앞에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사업이 어렵습니까? 병이 들었습니까? 자식이 속을 썩입니까? 걱정근심하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의 동정소리, 위로 소리에 귀를 닫고 한나처럼, 히스기야처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십시오. 우리의 친구이신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어느 날, 불평불만 많은 친구를 데리고 저의 절친한 친구 행운이를 찾아갔습니다. 저는 행운이에게 불평불만이 많은 친구를 소개하며, ‘여보게 행운, 이 친구가 자네를 만날 수 없다며 욕을 하길래 데려왔네. 이 친구 좀 만나주게.’ 했더니, 행운이가 하는 말이 ‘나는 믿음과 실력 있는 자만 만나준다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과 행운은 믿음 있는 자를 찾아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입술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그러니 부정적인 말은 하지도 말고, 부정적인 말에 귀를 열지도 맙시다. 그러면 행운이 찾아올 것이고,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나는 예수님의 친구다!”, 이런 자를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할렐루야!
기도의 열도와
기적은 정비례한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