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버려라
영국의 미켈란젤로 마니아들은 로댕을 무조건 싫어한다. 이 사실을 안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어느 날 파티를 열고 미켈란젤로 마니아들을 초청했다.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에 그는 말했다. “여러분! 제가 귀한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로댕의 작품입니다.” 그러자 다들 혹독한 비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버나드 쇼가 당황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아!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것은 로댕의 작품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그러자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것이 편견(偏見)이다.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균형감각을 잃게 하는 것이고, 내 눈에 색안경을 쓰는 셈이다. 그래서 편견을 갖게 되면 사실과 다르게 잘못된 시각으로 남을 정죄하게 되고, 손가락질 하게 된다.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시선이 그랬다.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요1:46)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렇다.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 만물이 다 빨갛게 보인다. 내가 빨간 안경을 벗기 전에는 절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네 눈 속에 들보를 빼고 그 후에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라”
(마7:5)고 말씀하신 것이다.
치우칠 편(偏), 이것은 좋지 않다. 편애가 싸움을 일으킬 수 있고, 편식이 몸을 망가뜨릴 수 있고, 편파적인 판정이 정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 아닌가. 한쪽으로 기우는 편향적인 성향을 버려야 한다. 이는 노를 한 쪽 방향으로만 젓는 것과 같고, 날개 한 쪽이 부러진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기생의 아들이란 편견을 깨니 입다로 인해 전쟁에 승리했고, 고아라는 편견을 벗고 에스더는 왕후가 되어 국가를 건졌다. 이렇듯 편견을 깨면 세상은 달라진다.
매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눈을 갖자. 그러면 잡초도 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