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되는 비결, 바로 ‘최선’이다(고전4:2)
저는 신문이나 영상편집자들에게 영화
‘벤허’의 100번 시사회를 자주 거론합니다. 벤허라는 불멸의 명작이 나온 것은 100번 시사회를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목회에도 이런 명작정신이 필요하기에 누가복음 16장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는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요즘 아침마다 잠언의 말씀을 문자로 보내는데, 저는 이것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어떤 말씀으로 영혼을 살릴까 고민하고 글을 씁니다. 사진하나 고르는 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매사 최선을 다하십시오. 경기에 임하는 씨름선수가 샅바 줄을 단단히 잡듯이, 사자박토(獅子搏兎), 밀림의 왕인 사자가 팔딱팔딱 뛰는 토끼를 잡을 때 최고의 스피드로 혼신을 다하듯이, 집중력과 열정으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도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아니겠습니까?
성경의 인물들도 그저 앉아서 기도만 했던 것이 아닙니다. 매사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 열과 성을 다해 간구하여 성공하고 승리했습니다. 야곱은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라고 고백할 정도로 외삼촌 집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는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보디발의 가정에 충성했습니다.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더니 보디발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얻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들어간 옥에서도 그는 최선과 성실함으로 일해 제반 사무를 다 처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다시 성으로 모셔올 때 너무 기뻐 춤을 추다 그만 옷이 흘러내렸습니다(삼하6:14). 그런 그에게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칭호는 당연한 것입니다. 늘 말씀 드리는 마가복음 2장에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온 네 친구는 병든 친구를 고치기 위해 예수님 곁에 가려하였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근처에도 갈 수 없자 지붕을 뚫어 병든 친구를 매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차선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모습을 주님은 ‘믿음’이라 하시고 병든 그 친구를 고쳐주십니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면 길이 보이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일생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살기 전까지 목수의 아들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의 기간에는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셨고(눅22:44), 귀신을 내쫓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13:32)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에도 자기 곁에서 죽어가는 강도까지 구원하시고, 최선을 다해 자기 사명을 이루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로, 누가복음 19장에는 므나로 최선을 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는 칭찬과 상을, 그렇지 않은 자에는 질타와 저주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해당됩니까?
우리 삶에 있어 ‘대충’이란 균은 암적인 존재입니다. 이 ‘대충’이란 균을 잡지 않으면 우리 삶은 망하게 됩니다. 대충이란 균 때문에 망한 경우가 아이성 전투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가 큰 성인 여리고성을 함락하고는 작은 아이성을 공격했는데 그만 참패를 당했습니다.아이성이 작은 성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대충 준비하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대강했는지 볼까요?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수7:3). ‘대충’, ‘설마’가 사람 잡은 경우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공격에는 여호수아가 최선을 다하기로 작정을 하고는 군사 3만 명을 뽑아 아이성 뒤쪽에 매복케 하고, 여호수아가 직접 다른 군사를 데리고 직접 아이성에 들어가 대승하게 됩니다(수8).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는 자를 쓰십니다. 하나님은 밤새 그물질을 한 베드로를 제자로 삼으사 ‘사람을 낚는 어부
(막1:17)’가 되게 하셨고, 예수의 도를 좇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까지 쫓아갔던 사울을 택하사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9).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사로잡힌 후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이 정신으로 그는 험한 파도를 넘어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엘리사도 처음 소명을 받을 때에 소 12마리를 끌고 최선을 다해 밭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왕상19:19). 그는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도, 후계자가 되어 선지자의 삶을 살 때도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하나님뿐 아니라 회사도, 사회도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아웃백이란 식당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장이 가만히 그 소녀가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 느리게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설거지를 하면 세제로 닦고 물에 헹구어 바로 선반에 올려놓는데, 그 소녀는 물기에 젖은 그릇을 꼭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저희 어머니께서 무슨 일이든 두 번 할 일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소녀가 비록 일의 속도는 느렸지만, 완벽한 마무리를 해놓으니 더 손댈 것이 없었습니다. 점장은 지사회의에 나가 이 사례를 보고하였고, 발표를 듣던 회장이 그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일개 아르바이트생을 아웃백의 교육담당관으로 채용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4:15).
그럼요, 세상일을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면 됐어’가 아니라 ‘이것이라야만 돼!’가 되어야 합니다. ‘대충’, ‘얼렁뚱땅’, ‘눈 가리고 아웅’을 버려야 합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2~23).
주의 일도 그렇습니다. 주의 종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보는 것에 전무하고(행6:4), 양떼의 형편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항상 소떼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잠27:23). 또한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마22:37),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며(마22:39), 예배도 얼렁뚱땅 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요4:24).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이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듯 충성된 자세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이 합해진 것이 충(忠)이니 곧 진심과 정성이요, 말씀 언
(言)에 이룰 성(成)이 만나 성(誠)이니 역시 곧 진심과 정성을 뜻합니다. 나의 진실한 마음과 자세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곧 ‘충성=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일을 대충하면 사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손자를 중국으로 유학 보낼 때,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너를 보낸 할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줬습니다. 혹시 당신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님을, 회사 사장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16:12). 성공하는 법, 부자 되는 법, 인정받는 법은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사업이든 혼적 사업이든 육적 사업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할렐루야!
공짜는 쥐덫에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너는 최선이냐? 차선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