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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두려움은 우리 삶의 암적 존재다(사43:1~25)

828호 · 2016-01-0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이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인간을 당신 형상대로 지으시고 처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다 너희 것이니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366번이나 지속적으로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담대함을 강조하셨을까요? 두려움은 인생의 암적 존재요, 신앙의 암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암이 우리를 죽이는 존재이듯,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피폐해지고 신앙이 고갈될 수 있는데, 그 두려움을 주는 것이 마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담대할 이유는 이들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둔 밤길을 가자면 무섭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간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악한 마귀의 궤계가 악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간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 뒤에는 항상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 의지해서 다니엘이 과감히 사자굴에 들어갔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담대하게 들어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약속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다니엘은 사자를 베게 삼고 누워 잤고, 사드락와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고 불이 너를 태우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어린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골리앗을 향해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삼상17:45). 사도 바울이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에도 담대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느4:14). 그렇습니다.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라는 말씀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담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세상의 핍박과 모함을 어떻게 이겨냈겠습니까? 바로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51:7~8)는 말씀을 부여잡았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또 제가 귀신을 쫓을 때 안 나가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 한 적이 없음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에 중부교회라는 곳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병든 자들을 안수하는데 귀신이 저더러 “야! 너는 못 쫓아.” 그러는 겁니다. 순간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런데 순간 제 입에서 “그래, 나는 못 쫓아. 그런데 너 예수 알아? 예수 이름으로 나가.” 그랬더니 귀신이 소리를 지르고 나가며 성도가 뒤로 자빠졌습니다. 그 말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제 입술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명령권자가 책임도 진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제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쫓으니까 책임도 그 분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 담대하게 귀신을 쫓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을 감동시킨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려울 때, 그들이 두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우셨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왜 갈등하지 않았겠습니까만, 순종하여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하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다급히 부르셨습니다. 감동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창22:16~17). 당신도 하나님을 감동시킬 순종을 드려보세요.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동이 난 사르밧의 과부는 조금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먹고 아들과 죽으려 했습니다. 그 무렵 사르밧을 지나던 엘리야가 그 집에 들러 먼저 그 떡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배고파 눈이 퀭한 아들을 쳐다보면서 갈등했으나 결국 선지자에게 그 떡을 넘겼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에 복이 임했습니다(왕상17:14). 여러분도 하나님을 감동시킬 예물을 드려보세요. 당신의 염려가, 당신의 두려움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순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기도를 해보세요. 히스기야처럼 눈물이 강을 이루도록 기도하면 생명이 연장될 것이고, 엘리야처럼 땅에 엎드려 가랑이 사이로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간절한 기도를 하면 마른 땅, 메마른 삶에 단비가 내릴 것입니다. 두려워한다고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보이던 길도 안 보이고, 들리던 것도 안 들리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세요. 당신 곁에서 늘 당신을 지키시는 그 하나님을 감동시키세요.

제 둘째 아들 녀석이 특수부대에 있을 때, 낙하훈련을 하고 받은 수당으로 제게 붉은 카디건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생명수당으로 받아 선물을 사온 것입니다. 진짜 감동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감동시킨 며느리 룻으로 인해 가문이 살아난 일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입다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서원, 스데반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용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랑, 그리고 돌아온 탕자나 다윗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회개를 해보세요. 하나님의 임재가 당신 삶에 임하는 것을 깨닫고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담력은 필요합니다. 한 시대의 맥을 그은 인물들은 담대함으로 거사를 도모하고 이뤘습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 에디슨을 비롯한 발명가들, 허영호 같은 에베레스트, 남극점 탐험가들….

시험을 봐도, 면접을 봐도, 사업을 해도, 연애를 해도, 담대해야 승리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자가 두려운 자는 사업을 하지 말고, 이혼할까봐 두려운 자는 결혼하지 말고, 맞는 것이 두려운 자는 챔피언의 꿈을 버리라.” 두렵거든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사세요.

권력자나 지력자, 돈이 있는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듭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실 말씀이 있답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사51:12).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그럼요,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입니다. 그 분이 항상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도 사라지지만, 아울러 나에게 정직하고 남에게 진실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주눅 들어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한 나라의 공주나 왕자가 두려워 떠는 것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담대하게 하늘과 땅, 땅 아래의 것을 명령하고 호령합시다. 예수 이름으로. 할렐루야!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공포가 있는 곳에 행복은 없다

전쟁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심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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