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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828호 · 2016-01-08

우리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16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린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합니다. 지난 2015년은 또 다른 30년을 시작한 한 해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희망이 더 컸고 기대가 더 큰 해였습니다. 특별히 총회장님께서 시작하신 은사집회는 우리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셨고, 우리에게 다시금 성령의 역사를 기대케 하셨으며,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2016년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 관심을 집중시키는 기회를 주신 총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시편 128편 1~2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는 네 손으로 하는 것마다 복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고한 대로 먹기란 쉽지 않습니다. 농사를 위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리 수고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결코 풍년이 될 수 없습니다. 때에 따라 비가 오고 햇볕이 적당히 비추어 주어야 곡식이 풍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엄청난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부모님들의 믿음의 피 뿌림이 있었고, 우리가 예수에게 집중했기에 받은 복입니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 등 가난한 나라를 보면,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해도 하루 한 끼를 먹기 힘든 사람들도 있고, 어떤 이는 백배로 일을 해도 하나를 얻기 힘들 정도로 고통 받는 이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네들은 부모도, 자신들도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예수께 있습니다. 총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천문천답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면 우리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마산교회를 개척했을 때 동네를 다니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 믿을 사람은 우리 교회로 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밤마다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로 마산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예수에게 집중할 때 길이 열렸고 부흥이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인천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새벽을 깨우는 기도와 성도들의 자손들을 교회로 다시 인도하는 운동을 하고 있고, 조금씩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에게 집중하면 교회도, 가정도, 나라도 홍해가 갈라지는 축복이 열립니다.

올해 총회장님께서 선포하신 교단 표어가 ‘나에게 정직하고 남에게 진실하자’입니다. 저는 이렇게 살려고 각오하고, 결심하고, 실천하려합니다. 또 하나님께 진실하고 집중하려 합니다. 저뿐 아니라 예수중심교단의 모든 성도들이 2016년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예수께 집중해서 우리 교회와 가정에 주님의 축복하심이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인천예수중심교회 장영국 목사

24년 개근했습니다

사람팔자 시간문제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대통령 낳았다, 재벌 낳았다, 박사 낳았다, 목사 낳았다’ 하지 않습니다. 단지 ‘아들 낳았다, 딸 낳았다’라고 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누구에게 붙잡혔느냐에 따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992년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우리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 주의 종의 부르심을 받고 교단 신학교에 첫발을 내디딘 때입니다. 비천한 계집이 주의 종이 되다니 천지가 개벽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 때 우리 학년의 신학생 수가 200명이 되었습니다. 교실이 차고 넘쳤습니다. 수가 많다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에서 놀던 동생들이 찾아와 ‘행님’ 하는 자도 있었고, 기도원 식당에서 매일 칼질만 하는 자도 있었고,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자가 수두룩했습니다. 그중의 한분이 대전교회를 담당하시는 이역사 목사님이십니다. 그분도 저처럼 예수 ‘예’자도 모르고 신학교에 들어왔으니 총회장 목사님을 목사님이라 부르지 않고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먹고 못가면 지고라도 갈 정도로 술 좋아하고 못 먹어도 ‘고’ 하시고 놀기도 좋아하셨던 그런 형님(총회장 목사님)이 예수를 믿고 나서 180도로 돌변했으니 믿어지지 않는 겁니다. 신학교 2학년 때까지도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충성스런 목회자가 되었고 세분(총회장 목사님, 이시대 목사님, 이역사 목사님)중에서 제일 정도 많고 사랑도 많은 분이십니다.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 졸업할 때는 40명 정도 되었습니다. 문제는 괜찮은 사람들, 쓸모 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고 저를 비롯해 별 볼일 없는 자들만 남았습니다. ‘하나같이 빈 깡통 구둣발로 확 밟아 뭉개 찌그러진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주의 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중국 노자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자주하시는 말씀이지요. 곧고 쭉 뻗은 좋은 나무는 나무꾼의 눈에 띄어 일찍 베임을 당하지만, 굽은 나무는 오래 남아 선산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주변을 돌아보니 그 말이 어찌 그리 맞는지요. 사람 팔자 시간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문벌이 좋고 똑똑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모가 아름답다고 쓰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들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이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6~29).

광명 철산리에서 한명을 놓고 시작한 목사님의 사역이 전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30년 만에 이루어진 놀라운 성장입니다.

“한 알의 민들레 씨 철산리 길가에 눈물로 싹 띄워 꽃피더니 바람을 타고 인천을 거쳐 서울을 덮고 한반도를 아우르고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 북미, 남미, 아프리카, 유럽, 중국대륙 등 오대양 육대주에 아름답게 피어났네.” -목사님의 시 ‘민들레’ 中-

목사님은 다시 30년을 뛴다고 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놀라기도 했고, ‘와,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꾸벅 조는데 “다시 뛰는 30년이 너에게 희락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꿈속에서도 너무 기뻐 웃다가 잠을 깼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30년을 다시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그대로 목사님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왠지 모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 고독…. 자다가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서 벌떡벌떡 일어났는데 그 증세가 싹 사라지고 평강이 넘쳤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하루도 빠짐없이 변함없이 목사님을 따라와 24년을 개근했습니다.

2016년에도 변함없이 앞으로 30년,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개근상 바라보고 따라가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서울예수중심교회 전미자 전도사

25년 동안 내가 본 목사님

저는 처음 가정사의 문제로 아내를 따라 1989년 늦더위로 뜨겁던 어느 가을날, 인천 숭의동 한국예루살렘교회에 처음 가보았습니다. 하얀 양복에 백구두를 신은 채 바짝 마르고 머리는 장발인 모습의 이초석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믿음이 없던 당시 제 생각에 ‘참 성깔 있게 생기셨네!’라고 느꼈습니다. 관심 없이 예배를 보는데 순간 보면서도 믿지 못할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목사님이 땀을 비 오듯 흘리시며 설교하시는데 웬 젊은 청년이 싸우려고 작정한 듯 맹렬하게 강단위로 목사님을 향해 돌진하는데, 목사님은 전혀 당황치 않으시고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떠나라!”고 명령하시니 그 청년이 당시 1층 높이는 더 됐던 것 같은 강단 2/3부분에서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목사님 근처도 못가서 말입니다. 저는 속으로 ‘저거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요! 그 청년이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나 자리로 돌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뵌 목사님은 강렬한 모습으로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후 1년 정도가 지난 1990년 가을부터 다시 잠실학생체육관을 찾아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고, 그때의 그 말씀과 기도의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급하고 강하게 성령을 받고 새로이 거듭났습니다. 1991년 안양집회 때, 주의 길을 갈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에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목사님께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주의 길을 가리라’ 다짐하고 일어나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25년을 지금까지 목사님을 따라왔습니다. 어린 믿음이었을 때는 때로는 아파하며, 때로는 좌절하며, 때로는 시험에 빠져 허덕이며…, 목사님을 실망시킬 때도 있었지만, 목사님은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으신 말씀으로 “죽어라, 그래야 산다.” 하시며 강하게 채근하시는 목사님. 그러시면서 몸소 행함으로 믿음의 삶을 본이 되어 보여주시는 목사님. 오늘도 고희를 앞두신 연세임에도 힘들다 내색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얻고, 구원을 얻을 양 무리를 위해 당신은 없다 하시는 목사님!

올해 9월의 어느 날, 하나님의 성산 장성 기도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도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비를 다 맞으시며 끝까지 작업을 함께 하셨습니다. 속옷까지 흠뻑 젖은 상황에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이제 오늘 일과는 끝났네’ 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비가 그치니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야! 들어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다시 나와라.” 하시는 겁니다. 아이쿠나! 세상에…. 결국 그날 야간 조명등까지 켜고 작업을 모두마무리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기까지 연장을 놓지 않으시는 목사님. 역시나 목사님 가까이에 있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며 깨닫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한 성품이 당신의 모든 것, 재산이든, 혈연이든 상관치 않으시고 다 내려놓으시며 포기하실 줄 모르는 믿음으로 오직 예수만을 향하시니 전국과 전 세계를 이끄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래에도 여전히 살리는 사역을 감당키 위해 30년을 다시 시작하자며 스스로 일을 만드시는 목사님. 서울 4부 예배를 오후 3시로 변경하시고, 죽도록 충성하시며 땀 흘리시는 모습에 또 한 번 감동과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러한 목사님이 계시기에 예수중심교단은 부흥하는 것이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과 성도들이 있기에 더욱 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갈 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01년 일본에서 사역할 당시 목사님께서 일본집회를 마치시고 귀국길에 오르시며 여러 가지 목회의 권면과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신 후에 제 손을 꼭 잡으시며, “상욱아!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진정 목사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염려, 근심, 걱정하지 않으렵니다. 오직 사명 감당키 위해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하겠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목사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목사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건강, 또 건강, 다시 한 번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늘 쉬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인천예수중심교회 김상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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