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물을 제거하려면 파이프를 교체하라(약1:19~25)
집 안의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녹물이 흘러나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앙에서 깨끗하게 정화해서 내보내는데도 계속해서 녹물이 나온다면 나라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내 집 수도파이프를 교체해야 깨끗한 생수가 콸콸 쏟아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영혼의 생수 되시는 생명의 말씀을 보내시는데, 문제는 내 마음이 병들어 썩었단 겁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그 입술에서 부정의 말, 근심걱정의 말, 괴롭다, 못살겠단 불평이 나옵니다. 이러한 사람은 미련하여 자기 길을 굽게 하고는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는 자(잠19:3)와 같습니다. 유독 내 집만 녹물이 나온다면 내 집 파이프를 갈아야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동일하시니 내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해야지요.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아파트로 이사했어도 내 생각이 단칸방에 살던 때와 같으면 그 팔자가 그 팔자입니다. 내 마음에 녹이 슬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혈기를 내고 분을 내고 난리입니다. 그러다 주변 사람 다 떠나가고 버림받지요. 그 뿌연 녹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냔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꾸어 의복만 깨끗하고 멋진 것으로 갈아입어도 자연히 깨끗한 자리를 찾아 앉게 됩니다. 세상 말로 노는 물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시편 1편에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 인생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이 없어 자기의 영혼과 육체, 남편과 아내, 자녀에게 투자하지 않습니다. 주일, 철야 때마다 봉사하시는 안내 권사님들을 보세요. 아름다운 의복을 갖춰 입고 성도들을 맞으니 어느 누가 이분들을 6,70대 할머니로 봅니까? 다른 이가 해준 것이 아닙니다. 권사님들 스스로가 ‘난 이제 늙었는데 뭘’이란 생각을 바꾸어 자신에게 투자하여 아름답게 단장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변화를 두려워하지요? 그러나 장사가 안 된다면 과감하게 신장개업해야 삽니다. 애플, 도요타, 삼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을 보세요. 자사 제품의 질적 향상을 위해 불량품은 과감히 회수(recall)하고 점검하여 새로 내놓습니다. 그네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사니까요. 세상의 기업들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구태의연해서야 되겠습니까? 베드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래로 내려가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건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변화가 두렵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일 4부 은사집회도 기존 예배와는 구별되도록 획기적인 변화를 주려합니다. 온 성도가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찬양할 때 악귀가 떠나간다고 했습니다. 또 바울 사도도 항상 기뻐하라고 했고요(빌4:4). 춤추며 찬양하고 오순절 마가 다락방처럼 전혀 기도하며, 또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선포될 때 성령의 대역사가 일어나 이 성전에는 몰려드는 영혼들로 차고 넘칠 것을 확신합니다.
더불어 여러분, 우리는 웃어야 합니다. 옛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엊그제 지인과 이태원에 있는 한 식당에 갔는데, 글쎄 손님이 바글바글 끊이질 않더란 말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손님들을 살피고는 연신 밝은 표정으로 “뭘 더 드릴까요?”하며 손님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옛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방글방글 웃으니 손님이 구름떼처럼 모여들 수밖에요. 이는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마냥 걸핏하면 분을 내고 성을 내는 남편과 아내, 목사, 장로, 권사에게 누가 가까이 가고 싶겠습니까? 전도자가 말하기를 ‘지혜로운 자는 그 얼굴에 사나운 것이 변하여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했습니다(전8:1). 또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이 땅에서 잘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5). 여러분, 씨가 아무리 좋아도 밭이 옥토여야 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아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제 아무리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도 내 마음의 밭이 좋아야 내 삶에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니 여러분,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세요. 자고로 혈기는 일체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욥34:14).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도 마귀요, 혈기내고 분 내게 하는 것 또한 악한 마귀의 전략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관상이란 것도 봅니다. 암요, 얼굴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정신, 신앙 모두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격증을 딴다, 유학을 간다, 뭐한다 하며 소위 ‘스펙’이라는 것을 쌓는다고 합디다. 그러나 저는 그들에게 최고의 스펙 쌓기는 바로 ‘표정관리’라고 조언합니다. 웃는 얼굴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나운 남편, 아내, 며느리, 목사 좋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얼굴이란, 내가 스스로 나쁜 환경을 바꾸고 옛 구습을 완전히 버릴 때 비로소 온화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입니다(민12:3). 그런 그도 이전에는 사람을 때려죽일 만큼 혈기 충만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께 훈련받고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더니,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대역사에 지도자로 쓰임 받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합니다. 듣기는 속히 하되 성내기는 더디 하라고요. 성을 내서는 절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약1:19~20). 저도 예전에는 인상 좋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으며 노력하니 결국에는 됩디다. 예수님과 닮아가더란 말입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내가 먼저 생각을 바꾸고 변하면 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듣고 이제 제발 주 안에서 웃으며 사세요.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짠 법, 배움의 끝은 실천이니까요. 웃는 가정, 교회, 단체에서는 감히 악귀가 견디지 못하고 일곱 길로 떠나가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깨끗한 양도 돼지의 오장육부를 가지면 돼지와 같이 더러운 하수구를 찾아다니지만, 양의 오장육부를 가진 돼지는 양처럼 푸른 초장을 찾아 거닌다는 이야기가 있습디다. 사실입니다. 우리의 병든 생각과 마음으로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울 수도, 성내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을 때(엡4:23~24), 비로소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허물어져 기도하는 것마다 상달되고 들리지 않던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 옛사람을 벗어버립시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지요. 분내는 것과 탐심, 음담패설과 우상숭배의 강은 이제 완전히 뒤로 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품어주고 용서하여 천국가정, 교회, 단체를 세웁시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까지 내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요, 또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다가오는 2016년, 시편1편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베터리가 떨어진 전화기
어찌 받을 수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