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벽
17세기 아름다운 소녀 에반젤렌은 마을의 일등총각 가브리엘과 열렬히 사랑한 끝에 약혼하여 온 마을의 축복을 받았으나, 다음날(1755년) 영국군이 갑자기 나타나 강제이주를 명하고 마을을 불태워 버린 후 남자들만을 강제 연행하여 캐나다로부터 멀리 남쪽의 미국으로 이송시키게 된다. 해안에 있는 수송선으로 끌려가는 가브리엘을 발견한 에반젤렌은 “건강하세요. 두 사람의 사랑만 굳으면 어떤 불행이라도 이길 수 있어요.”하며 사랑을 다짐한다. 그 후 아버지를 여윈 에반젤렌은 가브리엘을 찾아 방랑을 시작한다. 가브리엘도 나름대로 소문을 따라 에반젤렌을 찾아 방랑하지만 자꾸 길이 어긋난다. 일평생 그들은 미국대륙을 방랑하며 애인을 찾아 헤매는 동안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모습은 어느덧 나이 늙어 백발이 성성하다. 에반젤렌은 필라델피아의 어느 교회에서 봉사하며 사는데 마침 그 마을에 흑사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병자들을 돌보는데 문득 침대에 초라하게 병들어 누어있는 죽음직전의 백발노인 가브리엘을 발견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이미 입도 움직일 수 없이 에반젤렌의 팔에 안긴 채 숨을 거둔다.
이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는 미국의 19세기 시인 롱 펠로우의 장편 서사시 의 이야기다.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이 잘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요”
(신28:30) 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큰 저주인가!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99% 다 된 것 같았는데 그만 투명한 벽에 걸려서 하루아침에 좌절과 패배를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경험하는가! 이 모든 보이지 않는 벽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모든 일이 다 잘된 듯 했는데 왜 마침내 실패하고 마는 것일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 곧 내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아놓은 죄의 담이다. 투명한 벽에 막혀 육신이 병들고 사업은 실패하여 가정은 파탄 직전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남모르는 슬픔과 불안으로 홀로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직 예수만이 이 투명한 벽을 뚫어 버리실 수 있다.
회개란 나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그분의 도움으로 살려는 태도를 말한다.
회개하라! 그분이 눈에 보이지 않던 투명한 벽을 허물어 주실 것이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32:3~6).
신기류 목사
abba7777@naver.com
무지개의 참된 의미
최근 인터넷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들어가 보니 이용자들의 프로필 사진이나 게시된 사진에 일곱 색깔을 띤 무지개가 많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무지개가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들의 성적 다양성과 그들의 인권이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지난달에 서울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퀴어문화축제(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이들이 벌이는 축제)와 그에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 단체들의 집회가 큰 사회적 이슈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덕분인 것 같습니다. 때마침 지난 6월 26일에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는 바람에 이 문제는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무지개가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약자)의 상징처럼 쓰이게 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단순히 색깔이 다양하니까 다양성을 부각시키려고? 성경에는 무지개에 대해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찾아보았더니 다음 두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9:16),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겔1:28).
성경은 무지개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대홍수로 땅을 심판하실 때 방주에 올라타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들과 육축들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의 증거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 무지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무지개가 하나님께서 로마서 1장을 통해 ‘부끄러운 욕심’이라고까지 표현하신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상징처럼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원인도 성경의 같은 장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비롯한 온 천지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지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짐승과 벌레의 우상으로,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알고 보면 마귀의 주특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구별하신 선악과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속여서 최초의 인간을 타락시킨 것도,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를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라고 속인 것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만드신 입술로 온갖 저주와 비방과 욕설을 퍼붓도록 속인 것도 다 보이지 않는 악한 영적 존재, 마귀의 전략인 것입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마치 그것들이 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마귀의 활약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아직도 무지개를 동성애(자)의 심벌(Symbol)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혁주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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