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절대 도피처가 아니다 (마27:1~8)
알고 계십니까?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매일 평균 39명씩 자살한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하긴 이유는 다양하지만 누군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자살 사이트까지 인터넷 검색창에 버젓이 뜨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게 남의 동네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 교단 중에도 자살한 사람이 있고, 자살을 결심했던 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떤 경우든 자살은 안 됩니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자살을 생각해본다고 합니다. 인생이 녹록치 않다는 말이겠지요. 하긴 자살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의 선친들조차도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위로가 될까요? 하늘 문을 연 불세출(不世出)의 엘리야도 사는 게 힘들어서 죽음을 생각했고(왕상19:3~4),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도 그랬습니다(민11:15). 그리고 사나 죽으나 오직 주만을 위해 살았던 사도 바울조차도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고후1:8~9).
힘드니까, 억울하니까, 길이 없으니까 죽어버릴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 죽으면 이 세상에 자살 안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는 사람보다 산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살다보면 살 방법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두 편의 영상을 봤습니다. 하나는 중국에 사는 ‘임길미’라는 여인에 관한 것이었죠. 그녀는 두 팔이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의 엄마는 그녀를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차마 버릴 수 없어서 얼룩강아지 하나 키운다는 심정으로 키웠답니다. 그러니 무슨 보살핌을 받았고, 무슨 교육을 받고 자랐겠습니까? 이 여인이야 말로 자살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발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발로 모든 생활을 하기에 이릅니다. 비록 두 팔은 없지만, 그에게 있는 두 발로 인생을 억척스럽게 개척했습니다. 두 손을 가진 자보다 두 발로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도 해서 아이 셋이나 낳았고, 남편과 아이들의 식사는 물론 육아까지 다 감당했습니다.
다른 영상은 여러분도 익히 잘 아는 천상의 목소리, ‘레나 마리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녀 역시 정상적인 육체를 갖지 못한 채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두 팔도 없을뿐더러 다리 한 쪽마저 성치 않게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사람노릇을 하는 데까지는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걷는 데 4년, 혼자 옷을 입는 데까지 12년. 그러나 그녀는 스웨덴 명문 음대를 졸업했고, 국제 장애인 수영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4개나 땄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화장도 하고, 운전도 하고, 뜨개질도 합니다. 그리고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성가 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개개인을 다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맞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저는 두 팔은 없지만 목소리를 주셨습니다.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 꿈을 향해 달릴 줄 모르는 자가 장애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신이 처한 환경, 당신의 형편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두 팔이 없이 태어난 저들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적어도 당신은 두 팔이 있고, 두 다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낙담하고 좌절합니까? 왜 생명을 포기하려 합니까? 사지가 없는 자도 꿈을 향해 달려 이루어내는데, 온전한 육신을 가지고 돌부리에 한 번 넘어졌다고 주저앉고, 더는 삶 자체를 포기합니까? 저들이 거저 되었겠습니까?
여러분, 꿈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희망도, 믿음도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더더욱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꿈을 버리고, 희망도 믿음도 하나님도 버린 것입니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다 당신의 것입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대학에 못 들어갈까 봐 미리 죽은 겁니다. 말이 됩니까? 대학이 인생이 전부입니까? 대학 안 나오면 사람구실 못합니까? 아닙니다. 대학 안 나와도 성공한 자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자는 자기의 결백을 입증한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자들입니다. 결백을 주장하려면 살아 있어야죠. 요셉을 보십시오. 노예로, 성추행범으로 몰렸지만 꿈을 놓지 않고 달렸더니 하나님이 신원해주지 않습디까? 어떤 자는 연애에 실패했다고, 이혼당했다고 자살합니다. 아니 그 사람이 내 생명보다 중합니까? 세상에 남자가, 여자가 그 사람 밖에 없습니까? 룻을 보십시오. 꿈을 버리지 않은 그녀가 누린 더 아름다운 인생을 보십시오.
저도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의 길을 30년 걸어오면서 정말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오늘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자살은 절대 도피처가 아닙니다. 죽어서 모든 게 끝난다면 도피처가 되겠지만,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존체로 영원히 산다는 사실입니다. 자살은 스스로를 살인하는 것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죄도 크지만, 더 큰 문제는 회개할 틈 없이 죽기 때문에 100% 지옥으로 갑니다.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22:15),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세리인 마태를 제치고 회계를 담당할 정도로 똑똑한 인물이었던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스승을 팔아먹고는 가책을 느껴 자살했습니다(마27:5). 밧세바의 조부인 아히도벨, 그는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하여 밧세바를 취한 다윗을 없애려고 했으나 후새의 반대로 그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채택되지 못하면 압살롭의 반란은 100%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살해버립니다(삼하17:23). 사울 역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중상을 입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블레셋 군인들에게 당할 모욕이 두려워 자살했습니다(삼상31:4). 과연 이들이 제대로 도피했을까요? 죽어서 명예가 회복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요? No. 그들은 분명히 시쳇말로 여우 피하다 곰을 만난 격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글지글 끓는 불못이었습니다.
자살케 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하나라도 더 지옥의 자녀를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한 귀신을 투입하여 자기가 죽은 모습 그대로 자살케 하는 것입니다. 제가 LA에 갔을 때 한때 잘 나가던 연예인을 만났는데, 그가 자살하고 싶다 하길래 귀신을 쫓았더니 그 귀신이 하는 말, “내가 자살시키려 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살은 절대 피난처가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라도 자살하면 지옥 갑니다. 그래서 에스겔서에 보면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겔16:6)고 한 것입니다.
돈이 없어 살 길이 막막합니까? 사업에 부도나서 대책이 없습니까? 대학에 떨어졌습니까?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결혼에 실패했습니까?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줄 압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돈보다, 명예보다, 학벌이나 가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지킬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혼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불못에 던지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말처럼 이 모든 것 또한 곧 지나갑니다. 기도하며 생명을 부여잡고 살아갑시다. 분명 옛말할 날이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다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생긴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
하늘이 부르는 날까지 지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