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자들이 되라
“얘들아! 수련회 하느라 수고했어.
나는 너희들이 통 큰 자들이 되기를 원한다. 사울같이 통이 작은 자가 아니라 다윗처럼 통 큰 자가 되었으면 한다. 사울에게 있어 다윗은 은인이지. 그런데 민심이 다윗에게 기울자 사울은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 다윗을 품을 만큼 통이 크지 못했던 거야. 그러나 다윗은 세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살려줬단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생각할 부분이 있단다. 아버지는 재산을 다 탕진한 아들이 돌아온 것만도 고마워서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잔치를 배설했지. 자고로 부모는 자식에게 통이 크지. 그런데 형은 그런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고, 못마땅해서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단다. 속이 좁은 게지.
주님은 우리에게 통 큰 자가 되라고 하셨단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는 통 큰 자, 일흔 번에 일곱 번도 용서하는 자가 되라 하셨지.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하셨고 제자 삼으셨으며, 죄인인 우리를 다 품으신 거란다. 바울도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6:13)고 했다. 소인배는 대업을 이룰 수 없거든.
얘들아! 참 목회자는 선한 목자 자세를 가진 자란다. 그것은 주님이 주신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는 자세지. 사랑에는 희생이 따른단다. 먼저 높여 주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낮아지며 섬겨야하거든. 그것은 통 큰 자만이 할 수 있어. 그러면 나중에 너희가 섬김을 받고 높아지게 된단다. 정말 수고했다. 사랑한다.”
이것은 이번 수련회에 수고한 모든 자들에게 보낸 나의 메시지다. 여러분도 통 큰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