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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현대판 선악과다 (말3:7~12)

701호 · 2013-08-02

‘돈과 삶’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거지 아이가 하나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를 ‘르 갈뢰’(불어로 더러운 사람이란 뜻)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푸줏간에서 배달을 해서 돈을 모아 고리 대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그의 별명이었던 갈뢰를 넣어 ‘마르탱 갈뢰’라고 불렀고, 그가 더 돈을 많이 모으자 ‘마르탱 씨’라고 불렀으며, 더 부유해지자 ‘마르탱 님’이라고 했고, 마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 되자 ‘마르탱 나으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인격이고, 돈이 힘이고, 돈이 선(善)이고, 돈이 신(神)입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가 됩디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 돈, 돈 하고, 돈 벌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게 돈이 쉽게 벌립디까?

그런데 오늘 저는 부자 되는 법을 가르쳐드리려 합니다. 눈이 번쩍 뜨이지요? 그 비결이란 바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란 말 그대로 수입의 10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라는 말이 처음 성경에 나오는 곳은 창세기 14장 20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에게 노획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드려 그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히브리서 7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7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의 소산물, 나무와 과일, 소와 양의 10의 1을 바치라고 말씀하셨고, 신명기 14장 22절 이하에는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8장 21절과 24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주라고 말씀했고, 레위인은 그들이 받은 것 중에서 10의 1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곧 십일조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민18:26).

그렇다면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해주시는지 봅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3:10~12).

십일조를 하면 내가 복을 주는지 직접 시험해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꼭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천국의 창고를 열 수 있는 키가 (key)가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구원과는 별도로 우리의 소유가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선악과가 하나님의 주권의 상징이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현대판 선악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현대판 선악과를 딸 것이냐, 말 것이냐는 온전히 여러분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보면 십일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유 중 10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 중 10의 9를 우리가 얻고 누리는 것이라고요. 더욱이 하나님의 것에서 10의 1만 돌려드리면 하나님의 축복이 플러스된다고요.

그리고 하나 더, 십일조를 드리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박하나 회향 같은 중요 소산물의 10분의 1은 엄격히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의(義), 사랑(仁), 믿음(信)은 온데간데없이 형식과 의식만 지켰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주님이 호되게 야단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의 말씀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는 만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습니다. 가끔 지교회나 기도처의 주의 종들이 헌금에서 십일조를 떼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차피 다 주의 일을 하는데 새삼스레 십일조를 뗄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자칭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월권입니다.

제 목회 초창기인 1991년 어느 날, 깊은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상 중에 갑자기 소가 나타나더니 저에게 “도둑놈”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제가 “누가?” 하고 물었더니, 소가 “네가” 그러는 겁니다. 이상을 본 저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적이 있나 없나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올림픽 공원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가 파한 후 귀빈실에서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더러는 예물을 들고 오기도 하고, 더러는 개인적인 용돈을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옆에서 김종일 장로가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도움을 요청하러 오는 개척교회 목사님들도 많아서 제게 용돈으로 쓰라고 준 돈을 그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주의 종들을 돕는 것도 주의 일인지라 십일조를 떼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깨닫고, 지교회 모든 목사들이 저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철저한 십일조를 명령했습니다.

그 후 우리 교단은 물질적인 어려움에서 해방되었고, 큰 전대를 차고 세계를 복음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일본의 심목사가 노숙자를 상대로 목회를 하면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있었답니다. 십일조를 드리자니 당장 쓸 것은 많고, ‘내가 하는 일도 하나님의 일인데…’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꿈을 꾸었는데, 자기가 동전을 손에 쥐고 아까워서 바들바들 떨고 있다가 손을 펴니 글쎄 돈에 666이라고 쓰여 있었다지 뭡니까? 깜짝 놀라 꿈을 깬 그는 ‘666은 마귀 숫자 아닌가?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악한 마귀구나’ 하고 깨닫고는 바로 하나님께 회개했답니다. 그러더니 그 후로 동경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모든 물품과 먹거리를 풍족하게 대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 중에도 풍족한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십일조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매달 십일조를 떼서 보내는 자들은 다 교회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지원금을 받고도 여전히 쪼들립니다. 교회 재정이 힘듭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하십시오. 스스로 하나님이 되지 마십시오. 또한 아들이 목사라고, 동생이 전도사라고 기도처나 지교회로 십일조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데, 아닙니다. 영의 양식을 먹는 곳에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인천의 정광훈 장로님은 아들이 이천 교회의 목사인데도 십일조는 꼭 인천교회에 드립니다. 옳은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이천 교회의 정재일 목사가 자기 손으로 짓지 않은 건물을 인수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본부에서 돈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교회나 기도처가 복 받도록 하기 위함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십일조는 축복의 종자입니다. 이 종자를 하늘에 심으십시오. 할렐루야!

십일조는 현대판 선악과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자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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