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代價)를 지불하라!
사람은 누구나 공짜를 좋아한다. 그리고 노력 없이 많은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상에 사기사건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저 얻고자 하는 것이 ‘구걸’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심은 만큼 거두기에 열심히 뿌려야 한다는 이 단순한 원리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우리는 흔히 다윗을 아랫도리가 들어날 만큼 하나님을 찬양한 왕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온몸을 던져 찬양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는가? 바로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와 희생을 감내했기 때문이다. 당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은 언약궤였다.
하지만 엘리제사장 시대에 블레셋과 전쟁 중 언약궤를 빼앗겼고, 이후 왕이 된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오고자 했다. 하지만 엄청난 무게의 언약궤를 수레로 편하게 옮기려던 그의 경솔함은 웃사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이를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거룩하게 구별된 레위인들이 금으로 된 엄청난 무게의 언약궤를 어깨에 짊어지고, 여섯 걸음을 뗄 때마다 소 한 마리를 제사로 드렸는데 이 여정은 자그마치 20km가량에 이르렀다.
상상해보라! 다윗이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오는 언약궤를 눈으로 확인할 때쯤엔 자신이 보낸 레위인들이 먼지와 피, 땀으로 온 몸이 얼룩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로 하나님의 임재가 점점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다가오는데, 다윗이 그 어떤 춤이라도 추지 않고 견딜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하나님은 어떠하셨는가? 우리는 흔히 구원의 은혜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기에 가볍고 쉬운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 무겁고 아픈 대가는 예수께서 대신 지불하신 것이지 값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죽기까지 순종하기 위해 통곡하는 겟세마네 기도가 있었고, 갈보리 언덕으로 향하는 피맺힌 걸음이 있었으며, 살이 찢기는 고통과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이처럼 죄로 막혔던 휘장을 찢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처절한 죽음으로 희생시키는 대가를 지불하셨건만, 우리는 그 은혜를 너무 가벼이 여기고 하나님께 너무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다윗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버린 예수님처럼, 우리가 이루고 얻고자 하는 모든 것에 앞서 우리가 심을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방울이 핏방울로 바뀌는 고통을 필요로 한다고 할지라도 수고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 아니 일한 것보다 더 큰 열매로 화답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대가를 지불하라!’
하인명
renming@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