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과 게으름의 정의를 알라 (잠12:24)
우리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게으름이 그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전도단 본부가 강남 고속터미널 부근에 있을 때, 본부에 노숙자들이 많이 기거했었습니다. 어느 하루, 저는 그들을 데리고 길 건너 목욕탕에 갔었습니다. 목욕탕 주인은 그들의 방문에 질색했지만, 저는 그들과 함께 목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깨끗이 씻고 난 다음에 그 더러운 옷을 다시 입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 옷을 장만해서 그들에게 입히고 정신교육을 시켰습니다. 왜 멀쩡한 사지육신을 가지고 빌어먹고 사느냐, 왜 일할 수 있는데 그렇게 사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노숙자로 만든 것은 세상도, 환경도 아니고 게으름에 젖어 있는 그들 자신 때문이란 걸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여러분, 게으름은 무책임의 다른 이름입니다. 무책임하기 때문에 게으른 겁니다. 가장이 되면 정말 열심히 뛰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아내와 자식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멋만 내던 여자도 결혼하면 앞치마 두르고 부지런 떨지요? 주부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를 소유한 자는 게으른 자요, 무책임한 자입니다. 어느 주인이 세 사람에게 각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돌아와 회계했는데, 다섯 달란트 가졌던 자는 그것을 기본으로 부지런히 장사해서 다섯 달란트 이득을 남겨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마찬가지로 밤낮 일하여 이득을 주인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그는 주인이 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놓으며 뻔뻔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이 말에 주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는 “악하고 게으른 자의 것을 빼앗아 열 달란트 남긴 자에게 주어라”고 했습니다.
맡겨진 일에 무책임한 결과입니다. 그것은 곧 악(惡)이며, 그는 악한 자임을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이란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으로, 잠언 10장 26절에는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고 말씀하셔서 게으른 자가 왜 악한 자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또 성경은 계속 게으른 자의 종말이 어떠한지, 게으름의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그럼요, 게으른 자가 잘 살고, 잘 된다면 놀고 쉬지 뭣 하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뛰겠습니까?
게으른 자들의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핑계입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늘상 지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 말이 없을 것 같지요? 아니요, 다 핑계가 있습니다. 오늘은 알람이 안 울려서, 오늘 버스가 늦게 와서, 오늘 길이 막혀서 등등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말도 잘합니다. 하긴 성경도 게으른 자가 핑계로 일관함을 일찍이 말씀하셨으니 제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26:13).
남미에 가면 사람들은 다 순진하고 좋은데, 너무 게으른 것이 흠입니다. 회사건 정부청사건 점심 먹고 나면 한두 시간 문을 닫고 오수를 즐깁니다. 한참 일해야 할 시간에 다 문을 닫고 자니…. 또 그들은 약속 시간을 1시간 정도 넘기는 것은 예사요, 일 하나 시키면 세월아 네월아 합니다. 우리는 정말 복장이 터지지요. 그러니 회사 꼴이 뭐가 되고, 나라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들도 잘 살고자하는 소망과 꿈은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의 꿈은 그저 백일몽에 불과한 겁니다. 왜요? 노력도 행동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자를 쓰시고, 부지런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선친들을 보면 하나같이 부지런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누워 있었던 자가 없었고, 무책임한 자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갈등하는 가운데서도 새벽에 일어나 모리아 산을 찾았고, 야곱 역시 외삼촌 집에 가서 일할 때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을 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했음을 시인했고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왕상19:10), 엘리사도 부름을 받을 때에 부지런히 일하던 중이었습니다.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왕상19:19). 다윗 역시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8).
사도 바울도 일생동안 부지런했습니다. 사도행전 후반부를 보면 바울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지역의 지명이 계속 나옵니다. 수리아, 에베소, 가이사랴, 갈라디아 등…. 이것으로 바울이 얼마나 부지런히 복음을 위해 달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감히 사도 바울의 신들메도 감당할 수 없지만, 사도 바울처럼 부지런히 열심을 다해 복음전파를 위해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름 간격으로 해외집회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가 한 번에 3천여 명을 구원했듯이, 저도 만선을 기대하며 오지에서 오지로 달리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의 이름을 모르는 자를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부지런한 것은 아마도 내력인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부지런한 분이셨습니다. 부지런하다 못해 바지런하셨지요. 농사를 지을 때보면 우리 집 것은 여느 집 것과 달랐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해가 뜨기 전부터 나가 밭이며 논이며 얼마나 열심히 가꾸셨는지…. 그리고 틈나는 대로 밭에서 나온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다시 땅을 사고 또 사서 대농(大農)을 일구셨습니다. 80이 넘은 지금도 새벽같이 약수터에 가셔서 약수를 받아오시는 걸 보면 천성이 부지런하신 분인 게 분명합니다. 제가 그 어머니의 아들이고요.
인생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서 끌려 다녀서야 되겠습니까? 당연히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지요. 시간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압니까? 부지런히 사는 겁니다. 부지런하면 시간이 남습니다. 부지런하면 시간에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해놓으면 시험시간이 돌아와도 자유롭지 않습니까? 숙제를 미리 해놓으면 저녁에 시간이 남지 않습니까?
그러나 게으른 자는 무슨 일이든 닥쳐서 하니 시간에 쫓기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대충대충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잘될 리가 없지요. 잠언 31장에 보면 현숙한 여인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부지런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아내는 남편과 자녀를 잘 살피고 거두며 살림도 반질반질, 알뜰살뜰 하지만, 게으른 아내는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 있고, 남편이나 아이들 꼴도 지저분하고, 살림도 앉아서 배달이나 시키고 있으니 집안 꼴도 말이 아니고, 살림도 엉망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부지런은 열심과 동일어입니다. 그러니 삶도, 신앙생활도 열심히,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열심의 반대어는 차갑거나 냉정이 아니라 뜨뜨미지근이며 게으름으로, 그런 자를 하나님은 질색하시어 토해버리신다고 했습니다(계3:16).
사람들은 큰일에는 열심을 내며 부지런을 떨지만, 작은 일은 ‘나중에 하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법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곧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매사 게으름을 떨치고 부지런하게 삽시다. 그런 자가 성공하고, 그런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것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할렐루야!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