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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함정

645호 · 2012-07-06

정보의 홍수시대라고 하지만, 사실 정보수용자 입장에서 그 모든 정보들을 섭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일부 적극적인 수용자들은 정보의 바다 인터넷 웹서핑을 통해 많은 정보를 흡수한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차피 현장에 있지 않는 바에야 정보 제공자의 시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처음 멕시코 싼루이스를 방문했을 때,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사실 멕시코에 대한 정보라는 것이 별로 없는데다가 그동안 접한 것이라곤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멕시칸 갱단의 모습뿐이었기 때문이다. 마약과 살인의 대명사처럼 묘사되곤 했던 멕시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즉 멕시코에 대한 나의 정보 채널은 미국 영화였던 셈이고, 은연중에 멕시코의 이미지는 그렇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 선교 10년이 넘은 지금 시점에서 멕시칸처럼 정겹고 사랑스런 민족은 없다. 이방인에게 늘 넉넉한 웃음과 소탈한 자세로 대해주는 멕시칸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역으로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지 아는가? 그들은 한국이 늘 전쟁 위험 속에 있는 나라인 줄 안다. 또한 늘 데모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도 생각한다. 8, 90년대 극심한 노사분쟁이 늘 뉴스를 통해 보도된 까닭이고, 북한정권의 핵위협이 이슈화된 결과다. 그들은 그 뉴스를 통해서 한국을 이해하고 있는 거다. 국가 이미지가 좋을 수 없다.

한 때 디폴트, 곧 국가부도사태에 놓였던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일이다. 당시 아르헨티나에 폭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상태라 매우 긴장하며 갔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너무나 평온해보여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았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건이었다고 답해주었다.

이것이 저널리즘의 함정이다. 뉴스를 좇는 언론의 생리가 어쩔 수 없이 낳게 되는 불가피한 결과라는 측면도 있고, 또 하나는 보도자의 시각으로 사건이 침소봉대(針小棒大)될 수도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국가 이미지,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문화콘텐츠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러한 저널리즘의 한계를 역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불란서 영화하면 막연한 동경으로 심취하던 시절이 있었다. 파리, 세느 강, 샹젤리제 거리 등등 아름다운 영상과 시적인 대사들로 우리 젊은이들을 매료시켰었다. 그래서 프랑스 하면 동경의 세계로 그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 역시 과대포장이다. 프랑스가 갖고 있는 문화적 역량이야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 어디 그리 낭만으로만 이루어져 있겠는가? 어디를 가나 사람은 살고 있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사랑도 미움도, 시기 질투와 분쟁도, 사건 사고와 범죄도 다 있기 마련이다.

액션스릴러물 중에 세계 언론 재벌이 국제적 테러범죄를 뒤에서 사주하고 그것을 독점 기사화하여 언론계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가 있었다. 말하자면 독점기사를 내기 위해 사건사고를 조작한다는 말이다. 저널리즘의 폐해가 극으로 치달으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시사였다.

오늘 굳이 저널리즘의 한계 내지는 그 함정에 대해 말하는 까닭은 우리의 시야를 좀 넓혀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는 인간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동일하게 제기되는 문제이며, 곧 선입관, 편견의 문제로 압축된다. 우리가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하고 정의함에 있어, 너무 좁은 정보에 고착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해를 낳고 그 오해가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성경 잠언에도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잠18:17)는 말씀이 있다.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어차피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가 갖고 있는 오감이라는 것도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나마 경험을 능가할 지식은 없기에 좀 더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통해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는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좀 더 폭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도록 부단히, 그리고 겸손히 마음을 여는 것이라 믿는다.

내가 맛보고 경험해야 한다. 남의 말에 춤추고 휘둘려서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고착된 사고나 관습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물, 그리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따라서 오늘의 우리에게 늘 요구되는 자세라 믿는다.

Henry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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