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사후는 아름답다 (고후4:16~5:3)
지난주일, 사랑하는 박진수 목사가 하나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병으로 기도원에서 지내던 박 목사가 향년 51세의 나이로 소천한 것입니다. 저는 그 소식을 미국 시카고 집회 중에 듣고는 급거 귀국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지켜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박진수 목사, 그는 짧지만 굵게 살다간 멋진 주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달란트대로 신학교 학장으로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여 주의 종으로 배출했고, 일본 선교사로도 8년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15년 전, 차가 다 부서지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몸 하나 다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덤으로 사는 인생을 온통 하나님 앞에 드린 아름다운 종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께 받은 유산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고, 욕심도 없이 선량한 인품으로 많은 성도들의 사랑을 받은 종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박 목사는 건강을 걱정하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삶에 한 치의 후회도 없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저는 그의 말을 되새기고 되새겼습니다. ‘그래, 박 목사는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았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나니 인간적인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제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바쳐졌는가’ 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헌신이, 우리의 헌금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졌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배드린다고, 헌금 드린다고, 봉사한다고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모두 하나님이 받으셨나요?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다 상달되었나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물과 두렙돈을 드린 과부의 헌금 둘 다 하나님이 기뻐하셨나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곧 공력을 시험하는 날이 옵니다.
그날 공력이 무익하여 불탄 사람은 아무 상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고전3:13~15). 자기의 의나 신념으로 드린 예배나 헌금, 헌신은 공력이 불에 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된 신앙, 거룩한 산제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산제사’란 바로 ‘지금 살아 있는’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애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 산제사이며, 이것이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 곧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상 중에 늘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사는 것이 산제사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억지로, 의무로, 습관적으로 봉사하고, 헌금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과 신령을 다해야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것입니다.
제가 찬양할 때, 설교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칫하면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이끌고 버림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박진수 목사처럼 온통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후회함이 없고, 죽음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9:27). 우리의 육체, 곧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12장에 전도자가 표현한대로 겉사람은 날로 낡아져서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장막이 무너지면, 곧 죽으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히 썩지 않을 부활의 몸을 다시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 앞에 탄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롭게 되어 가고, 새롭게 되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듭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워지며,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갈등하지만, 또 속사람이 새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늘 겉사람과 싸우지만, 속사람이 새로워져 질그릇 속에 보화를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박진수 목사는 삶에 후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겉사람은 병으로 힘들고 고통 받았지만, 그의 속사람은 일평생 산 제사를 통해 보화를 소유했기에 비록 장막은 무너졌지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이 지으신 장막을 소유한 것입니다.
요즘 이런 말들을 합니다. 준비되지 않는 노후는 저주라고요. 그럼요, 갈수록 수명이 늘어나는데 노후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노후는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노후에는 마침표가 있습니다. 만일 사후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거기에는 마침표가 없는데요. 그것은 영원한 저주일 것입니다.
유럽에 하인을 많이 둔 어느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족은 많은 하인 중에서 조금 모자란 듯한 한 하인을 무척 아꼈습니다. 그는 비록 남들보다 모자라지만, 정직하고 착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귀족은 이 모자란 하인을 놀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인을 불렀습니다.
“너에게 이 지팡이를 줄 테니 온 마을을 다 둘러보고 너보다 어리석은 자가 있거든 이 지팡이를 그에게 주고 오너라.” 그러자 그 하인은 알겠노라 하면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 마을, 저 마을을 둘러보아도 자기보다 어리석은 자는 없어보였습니다. 할 수 없이 하인은 지팡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주인님, 아무리 돌아다녀도 저보다 어리석은 자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귀족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귀족은 죽을 때가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늦은 나이에 얻은 아직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를 누구에게 맡길까 생각하다가 모자라지만 정직하고 착한 하인에게 맡기기로 작정하고는 그를 불렀습니다. “내가 이제 아주 먼 나라에 아주 오래오래 살러 간단다. 그러니 너는 이곳에서 내 재산을 잘 관리하다가 도련님이 크면 넘겨드리도록 해라.”
그러자 이 하인은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제가 도련님을 잘 보살피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제가 주인님 가시는 곳에 필요한 물품만 짊어다드리고 오겠습니다.” 하인의 말에 귀족은 “그 곳에 갖고 갈 것이 뭐 있겠니? 아무 것도 없단다.”라고 말하자, 이 하인이 갑자기 자기 방으로 뛰어가 예전에 귀족이 준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는 “주인님, 이제야 저보다 모자란 사람을 찾았습니다. 바로 주인님이십니다. 세상에 그렇게 먼 나라에 그토록 오래 살러 가는 사람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니요. 이 지팡이 받으세요.”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그는 사후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출세하기 위해, 돈 벌기 위해, 아름답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정작 죽음 다음의 세상은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는 천하에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별거 아닙니다. 저도 세상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려봤는데 정말 별 거 아닙디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이 맞습디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법, 그것에 연연한다면 천하에 어리석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겉사람을 가꾸는 일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속사람을 가꾸고 채우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곧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육체가 중요함은 육체가 있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있을 동안에 우리는 사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바쳐 속사람을 새롭게 하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장막을 소유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할렐루야!
화환만 보지 말고 꽃씨를 보고
이생을 보지 말고 내세를 봐라
번데기가 기한이 차면 나방이 되고
구더기가 기한이 차면 파리가 된다
